대한민국 재계의 중추 조직인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가 한국경제인협회(한경협)로 이름을 바꿔 새로 출범한다. 새 수장(류진 풍산 회장)도 맞는다. 한경협은 1961년 조직 창립 때의 명칭(초대 회장은 이병철 삼성 창업회장)이다. 전경련이 22일 임시총회를 기해 1968년 이후 55년 만에 빛바랜 간판을 내리고 제 이름을 되찾는 것이다. 삼성전자, SK, 현대자동차, LG 등 4대 그룹의 복귀도 사실상 시간문제로 보인다.
전경련의 환골탈태를 진두지휘하는 김병준 회장 직무대행은 임시총회에 앞서 본지 취재진과 만나 “‘미국의 헤리티지 재단과 같이 만들어야 한다’고 하는데, 그걸로는 안 된다”면서 “(한경협은) 연구기능을 기본으로 한 플러스 알파의 역할을 해야 한다”고 했다. ‘싱크탱크+α’의 소명을 부여한 셈이다. 김 직무대행은 22일 임시총회에 대해서는 “큰 매듭이 풀릴 것으로 기대한다”고 했다.
한경협은 전경련 산하 한국경제연구원(한경연)을 흡수통합한다. 큰 시행착오 없이 곧바로 싱크탱크 기능을 수행할 수 있도록 한경연 역량과 경험을 기본 자산으로 삼는 것이다. 정부, 정치권력 등의 외압을 구조적으로 차단할 제도 개선안도 마련됐다. 명망 높은 인사들로 윤리위원회를 신설해 부당한 압력을 걸러내는 것이다. 주요 의사결정은 기능·산업별 위원회를 통하도록 의무화한다. 만시지탄의 감마저 없지 않다.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고 했다. 새 출범을 위한 준비가 아무리 치밀해도 성패는 결국 명쾌한 실행에 좌우되게 마련이다. 새 지도부의 어깨가 무겁다.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는 전경련은 한강의 기적을 이끌었다. 재계의 맏형 노릇도 든든히 수행했다. 그러나 아쉽게도 2016년 미르·K스포츠재단 파문 등을 거치며 동력을 상실했다. 외압이 이렇게 무섭다. 류 회장은 이제 옛 공과를 뒤로하고 ‘싱크탱크+α’ 프로젝트를 불가역적으로 추진해야 한다. 아울러 인공지능(AI) 등 4차 산업혁명시대에 걸맞은 변혁도 모색할 필요가 있다.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 원칙의 중요성을 알리고 법제적 개선을 도모해야 하는 역사적 책무도 엄존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두 헌법적 원칙을 토대로 피땀을 흘려 단기간에 선진국 반열에 올라선 국가다. 그런 나라에서 반시장, 반자유 색채의 선동이 난무하고 포퓰리즘 깃발이 나부끼고 있다. 개탄스러운 일이다. 이대로 좌시하면 번영도, 성장도 조만간 찾을 수 없게 되기 십상이다. 망국적 기류에 적극 맞서는 싱크탱크 역할은 다른 그 무엇보다 중차대한 소임이다. 기업과 개인의 자유, 작은 정부를 비롯한 정책적 지침을 명료하게 제시해 시민사회와 정부의 반향을 끌어내야 한다.
대내외 경제 상황은 녹록지 않다. 미중 갈등과 우크라이나 전쟁 등으로 수출국가의 설 자리가 날로 비좁아지고 있다. 첨단 기술을 둘러싼 국가대항전이 벌어지는 현실도 우려스럽다. 우리 재계의 맏형이 새로 힘을 내야 할 이유가 차고 넘친다. 한경협이 ‘기업보국(企業報國)’의 초심을 찾아 국민, 정부와 손을 맞잡고 새 활로를 열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