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파방송 등은 저가시장 ‘안주’
시장 정상화 위한 정부정책 절실
2016년 넷플릭스가 한국 시장 진출을 발표했을 때, 학계는 물론 거의 모든 방송 관계자들의 반응은 회의적이었다.
당시 넷플릭스 글로벌 진출의 주 무대는 언어 장벽이나 문화적 할인(cultural discount)이 낮은 유럽과 남미 국가들이었다. 실제로 넷플릭스가 먼저 진출했던 일본에서의 성과도 기대에 못 미치고 있었다.
당시 넷플릭스 한국 시장 진출을 부정적으로 본 이유는 ‘초저가 한국 유료방송시장’과 ‘경쟁사업자인 다채널 유료방송이 통신사업자들이 소유한 IPTV라는 점’에 있었다.
무엇보다 월평균 7000~8000원 수준의 유료방송 시장에서 월 10달러의 넷플릭스가 가격 경쟁에서 실패할 것이라는 전망이 압도적이었다. 심지어 어떤 전문가는 “1~2년 애만 쓰다 조용히 철수할 것”이라고 장담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이런 전망은 넷플릭스 출범 초기에 빗나갔다. 물론 1개월 무료서비스, 계정공유 등의 초기 마케팅 전략도 작용했지만, OTT 주 시청자인 20~30대 세대에게 월 1만 원대 이용료는 결코 높은 것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이미 다양한 모바일 서비스에 익숙해져 있던 젊은 세대의 문화비용은 기성세대와 큰 차이가 있었다.
또 이 세대가 미드·영드 같은 글로벌 콘텐츠에 대한 선호가 높았다는 점도 간과됐었다. 이는 오랫동안 신규 미디어들을 효과적으로 압박했던, 배타적으로 콘텐츠를 공급하는 ‘콘텐츠 레버리지 전략(content leverage strategy)’이 무력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와 함께 넷플릭스는 한국 방송시장의 상류 시장을 우회 공격했다. 한국산 OTT 오리지널 콘텐츠 투자전략이다. 군사작전으로 치면 적의 후방에 대한 기습작전인 셈이다.
넷플릭스는 한국 시장 진출과 동시에 최초의 오리지널 영화 ‘옥자’를 제작했다. 이어서 ‘미스터선샤인’을 비롯해 한국형 오리지널 콘텐츠 제작에 투자했다. 이제는 많은 국민들도 tvn, jtbc 인기 드라마들이 글로벌 OTT의 투자로 제작된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특히 2021년 ‘오징어게임’이 대박 나면서 글로벌 OTT들의 국내 제작시장 진출이 급증하고 있다. 아마존프라임의 ‘파친고’, 디즈니플러스의 ‘카지노’ 등은 순전히 OTT만으로 큰 성공을 거두었다. 심지어 지난달 대통령 미국 순방 첫 이벤트가 넷플릭스 CEO와의 미팅이였고, 이 자리에서 3조 원의 투자를 약속받았다.
반면 이른바 토종 OTT들은 거의 사망 직전이라 해도 결코 지나치지 않다. 일단 가입자 숫자에서 넷플릭스가 1156만 명으로 독주하고 있다. 이는 티빙, 웨이브, 왓챠, 쿠팡 플레이 같은 국내 OTT 가입자를 모두 합친 것과 거의 비슷하다. 경영실적은 더욱 처참하다. 작년에 넷플릭스가 3500억 원의 순이익을 낸 반면, 티빙 1191억 원, 웨이브 1213억 원, 왓챠는 555억 원의 적자를 기록했다.
이처럼 국내 OTT들이 맥 못 추는 이유는 제작시장에서의 주도권을 상실했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한국 방송시장은 지상파방송을 비롯한 플랫폼사업자가 이용자들의 접근권을 전유하고 제작시장을 압박하는 구조가 고착돼왔다. 이로 인해 방송시장은 경쟁이 커질수록, 제작시장에 대한 약탈적 거래 관행들이 더 심화되는 형태다. 한국의 저가 방송시장은 이런 구조에서 형성된 것이다.
방송사업자들은 저가 시장의 리스크를 광고시장 확대, 결합 판매, 재송신 대가, 홈쇼핑 송출수수료 같은 B2B 수입을 늘려 충당해왔다. 그럴수록 저가시장 구조는 더 심화됐다. 넷플릭스는 이런 한국 방송시장의 가장 약한 고리 즉, 제작시장에 대한 투자를 통해 진출에 성공한 것이다. 제작시장에 대한 투자는 제작비를 급상승시켰고, 저가 구조에 익숙해져 있던 우리 방송들은 콘텐츠 독점력을 완전히 상실하게 되었다.
더구나 최근에는 넷플릭스가 광고를 포함하는 저가 가입자 상품을 크게 늘려가고 있다. 제작비 급증과 후발 OTT들의 추격에 위기감을 느낀 넷플릭스가 제작시장을 기반으로 방송광고시장까지 확장하겠다는 의도다.
전문가들은 넷플릭스가 매년 2500억 ~ 3500억 원 정도의 광고 매출을 올릴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광고재원에 크게 의존해온 한국 미디어 시장 전반을 위협할 수 있다.
가장 좋은 해결책은 국내 방송시장을 정상화시켜 선순환구조를 구축하는 것이다. 하지만 최근 몇 년간 이와 관련된 정부 정책을 거의 들어보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