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 1948년 채택된 세계인권선언에서는 누구도 빼앗을 수 없는 권리와 자유가 30가지가 명시되어 있을 정도로 인권 문제의 영역은 광범위하다. 과거 남녀 혹은 인종 차별, 종교적 박해, 제노사이드와 같은 인종 학살 등에서부터 강제구금, 노역, 인권 유린 등 우리는 이미 다양한 형태의 인권 침해 사례들을 접하고 있다. 더욱이 최근 미중 전략 경쟁에서 비롯된 국가 간 갈등 상황에서 ‘인권’ 문제는 국가 간 첨예한 대결의 선봉 역할을 하고 있다. 실로 진영 간 총성 없는 전쟁이 시작된 것이다.
지난해 미국은 위구르 강제노동금지법을 발효시켰는가 하면 바이든 대통령은 시진핑 주석 면전에서 중국 인권 탄압 사례들을 비판했다. 중국 정부는 내정간섭이라며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이러한 일이 가능한 이유는 인권문제의 속성 때문이다. 인류의 보편적 가치, 인간의 천부적 성격이라는 속성 때문에 인권옹호국이 인권탄압국을 정치적·도덕적으로 공격할 수 있는 수단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공격이 두려운 것은 그 주민들이 그러한 인권탄압 정권을 전복시킬 수 있는 계기를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멀리서 찾을 것도 아니다. 과거 우리나라 군사정권은 자유와 인권 탄압에 대한 국제사회의 지적에 대해 결코 자유롭지 못했다. 결국 국가의 인권 탄압은 민주화 요구로 이어졌고 정권의 변화를 이끌어 냈다.
북한 역시 계급이 존재하지 않고 모든 인민들이 자유롭고 평등하다는 대외적 선전에도 불구하고 조직적이고 광범위한 인권 침해 사례가 정부, 기관, 개인에 의해 이뤄지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유엔은 2003년 이후 매년 북한인권결의안을 채택해 왔고 미국에서는 2004년 북한인권법을 채택하여 북한 주민들의 인권신장을 위한 재정적 지원도 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2016년 북한인권법을 제정하였고 북한 인권 단체들은 인권보고서 발간 등을 통해 북한 인권 상황을 매년 추적하고 있다.
북한 인권문제에서 그동안 여야 간 대립각을 보여 온 이유는 하나다. 북한 인권이 북한을 자극하는 수단이 된다는 우려 때문이다. 북한인권법 제정 당시에도 이 부분에 대한 여야 간의 의견대립이 첨예했다. 보수진영에서는 북한에 대한 지원이 오로지 정권 유지에만 악용되고 있기 때문에 북한 정권이 주민들의 인권 개선에 노력하도록 압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진보진영에서는 북한에 대한 신뢰가 축적되지 않은 상황에서 상대방을 붕괴시키는 정치적 의도로 인권 개선을 압박한다면 북한은 더욱 빗장을 닫을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결국 양측의 의견 차이는 그동안 정치적 무관심 속에 가려져 왔고 북한인권법 시행이라는 현시점에서도 지속하고 있다.
우리는 이 시점에서 인권의 기본적 개념에 충실하여 북한 인권에 접근해 나갈 필요가 있다. 인권에는 국가가 침해해서는 안 되는 소극적 개념 즉, 자유권적 인권과 국가가 주민들의 인권 향상을 위해 적극적으로 해 나가야 하는 사회권적 인권이 있다. 우선 북한 당국의 자유권에 대한 침해에 대해서는 우리도 침묵해서는 안 될 것이다. 다만 북한 주민들의 삶을 증진하기 위한 우리의 지원 노력에 북한 당국의 참여를 유도하기 위한 신뢰적인 접근도 중요하다. 궁극적으로 북한 내 인권을 향상하는 것은 북한 당국의 노력 없이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서독은 동독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동독 내 인권 침해 사례를 축적했지만, 경제 상황을 향상하기 위한 동서독 관계 개선을 지속했고 동독에 대한 경제적 지원도 전개했다.
결국 어떻게 할지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없는 상황에서는 북한인권재단이 출범하더라도 서로 상충되는 주장을 반복하는 대결의 장이 될 가능성이 높다. 이래서는 한 발짝도 못 나간다. 새 정부는 국정과제 이행에 앞서 북한 인권의 실효적 증진 방안을 사회적 합의를 통해 우선 도출해 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