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업계가 11년 전 IMF회환위기를 방불케하는 위기에 빠졌다. 2000년대 이후 부동산 붐을 맞아 공격적인 주택 마케팅을 펼쳤던 주택 전문업체들이 대거 워크아웃에 들어가는가 하면 업계 10위권내 대형사들도 유동성 위기와 함께 증시를 중심으로 온갖 악성 루머가 도는 등 홍역을 단단히 치르고 있다.
주택 공급과잉에 따른 국내 내수시장 상황도 처참하지만 해외 사정도 협조적이지 않다. 국제 원유가의 하락과 이에 따른 중동 오일 달러 약세는 건설업계의 위기돌파 해법 중 하나였던 해외 사업을 봉쇄해버린 악재로 꼽힌다.
여기에 우리 건설업계가 주택사업의 새로운 시험무대로 삼았던 베트남, 캄보디아, 말레이시아 등 신흥 개발도상국의 사정도 갈수록 악화돼 이미 5~6년 전부터 추진했던 사업도 손을 털고 나오는 실정이다.
이 같은 위기 상황 속에서 건설업계의 새해 각오도 비장할 수 밖에 없다. 이미 대부분의 업체들이 10%가량 인력 감축을 단행하는 등 군살 빼기와 이를 통한 위기 돌파 전략을 세우고 있는 상태다.
위기의 건설업계가 지난해 말부터 지속적으로 단행하고 있는 것은 인적 쇄신이다.
특히 정부가 뿌린 약 100조원 규모의 SOC예산은 건설업계의 새로운 일감이 될 것인 만큼 공공공사 수주전은 현 건설업계에 있어 당면과제인 셈이다.
건설업계의 인적 쇄신은 지난해 새정부 출범에 맞춰 서서히 단행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지난해 건설업계의 인적 쇄신이 정부나 주공, 토공 등 주요 공공기관장이 바뀜에 따라 불가피하게 이뤄진 것이라면 현재의 인적 쇄신은 사운을 걸고 추진하는 사안이란 점에서 무게가 다르다.
일감 가뭄과 건설업계 위기 속에도 소위 '잘나가는' 업체들은 상부구조를 튼실히 하는데 촛점을 맞추고, 위기 상황이 눈 앞에 있는 업체들은 CEO를 비롯한 지도부와 상하부 구조 모두를 쇄신하는데 역점을 두고 있다.
또한 정부와 코드가 맞지 않는 유관 기관장들도 쇄신 대열에 동참하고 있다. 무엇보다 새로운 건설시장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서라도 과거와 다른 마인드를 가진 지도부가 필요한 것은 건설업계나 건설업계를 지원하는 유관기관 모두에게 내려진 숙제이기 때문이다.
물론 CEO나 사장단 교체가 능사는 아니다. 특히 현대건설 등 어려운 시절에도 회사를 잘 이끌어나갔던 CEO에 대한 교체는 회사 내 인화를 뒤흔들 수 있는 악재가 될 수 있는 만큼 신중함이 요구되기도 한다. 하지만 현재의 건설업계 위기가 1~2년 사이 해결될 만한 것이 아닌 만큼 이에 대한 새로운 각오를 다지기 위해서라도 인적 쇄신은 필요하다는 것이 건설업계가 공통적으로 느끼는 사명감인 셈이다.
건설업계의 인적쇄신은 지난해 말 GS건설이 첫 포문을 열었다. GS건설은 그룹 인사를 통해 이휘성 국내영업본부장을 대표이사 부사장으로 선임하며, 그간 주택사업에 맞춰져 있던 사업 방향을 공공공사 수주로 변경했다.
GS건설은 '자이'브랜드로 주택사업 명문업체로 올라서는데 성공했지만 이에 대한 대량 미분양이란 후유증을 안고 있는 상황. GS건설의 이 같은 선택은 바로 '구태'와의 단절을 의미하기도 한다.
이어 신동아건설, 한신공영, 롯데건설 등도 공공수주전을 겨냥한 사장단 인사를 단행했으며, 벽산건설도 새로운 시대를 맞아 회사를 이끌어갈 사장단 인사에 착수했다.
워크아웃을 경험한 현대건설도 이종수 현 사장 대신 김중겸 전 현대엔지니어링 사장을 영입해 위기 상황 타개에 고심하고 있는 상태다.
건설업계의 인적 쇄신은 앞으로도 더욱 박차를 가할 것으로 예측된다. 우선 업계 20위권의 풍림산업을 비롯, 11개의 워크아웃 대상 건설사들은 어떤 형식으로든지 구조조정과 위기 타개형 CEO 선임이 불가피한 상태며, 신용위험성평가에서 B등급을 받은 업체들도 조기 진화를 위해 자연스런 세대교체나 인위적 쇄신이 요구되기 때문이다.
한 대형 건설업체관계자는 "건설 부동산시장이 이 같은 위기를 맞아 건설업계가 공멸의 위기를 맞게 됐는데 인적 쇄신이 없다면 이 것이 더 이상한 일"이라며 "과거의 경영마인드와 단절된 새로운 의지를 가진 인물들을 중심으로 건설업계가 위기상황을 타개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