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조 원대 손실이 예상되는 라임자산운용 사태에 각 은행이 내부적으로 꾸린 상품선정위원회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한 것으로 드러났다. 라임자산운용처럼 의도적으로 상품을 속여 판매한 경우 내부에서 상품의 위험성을 판단할 수가 없어서다. 현행 사모펀드 규제는 사실상 자산운용사의 ‘자의적 신뢰’에 기대야 하는 빈틈을 드러낸 셈이다.
25일 금융권에 따르면 국내 주요 은행은 내부적으로 상품의 판매 적절성을 판단하는 ‘상품선정위원회’ 등을 꾸려 운영하고 있다. 위원회의 명칭과 운영 기준은 은행마다 다르지만, 주로 소비자 피해가 우려되는 상품을 걸러내는 역할을 한다. 1·2차로 열리며 까다롭게 금융상품을 선정한다. 하지만 ‘라임사태’에서는 상품선정위원회의 거름망이 작동하지 않았다.
대표적 사례가 산업은행이 판매한 상품이다. 애초 산은이 지난해 7월 판매한 상품은 사모사채와 유동화증권으로 구성된 ‘확정금리형’이었다. 이때 산은은 내부 상품선정위원회가 상품 판매를 결정했다. 국책은행 특성상 산은은 상품 선정도 시중은행과 비교해 상대적으로 보수적으로 판단했는데도 해당 상품이 문제가 없다고 봤다.
그러나 실제 결과에선 라임이 플루토(라임플루도 FI D-1호)를 60%가량 편입시켰다. 해당 펀드는 부동산 구조화 채권 등 사모사채와 자산유동화증권 등 파생상품에 투자되는 것으로 기존 심의한 위험보다 컸다. 산은이 해당 문제를 두고 “우리도 속았다”라고 주장하는 이유다. 기업은행도 라임펀드를 판매하기 전 상품선정위원회의 심의를 거쳤다.
라임자산운용에 대한 금융감독원 검사 결과에 따르면 라임은 특정 펀드의 손실을 다른 펀드로 전가하거나, 펀드 간 우회해서 자금을 지원하는 행위를 한 것으로 드러났다. 당시 라임이 투자한 자산 대부분이 비상장 주식 등 ‘비시장성 자산’으로 구성돼 있어 투명하고 객관적인 평가가 쉽지 않았다고도 밝혔다. 각 은행은 “라임자산운용처럼 의도적으로 상품의 구성을 변경해 판매하거나 연체율, 수익률 등을 속이면 내부에서 확인할 도리가 없다”고 입을 모았다. 이럴 경우 금융당국의 사전 감독도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단지 자산운용사가 속여 판매하지 않을 것이라는 일종의 ‘신뢰’를 담보하고 상품을 검증·감독하는 셈이다.
이 같은 문제는 규제에 자유로운 사모펀드 상품이기에 가능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사모펀드는 공모펀드와 비교해 모집 인원(49인 이하)이 적고 상품 구성도 자유롭다. 포트폴리오 구성 목록을 투명하게 공개하지 않아도 된다. 사적 계약이라는 특징 탓에 금융감독 기관의 감시도 받지 않는다. 사고만 나지 않으면 산은의 사례처럼 속여 팔더라도 약정 수익률을 보장하면 그만인 것이다. 따라서 일각에선 자산운용사가 펀드 운용에 대한 정보를 판매사에 제공할 수 있도록 제도를 고쳐야 한다고 주장한다.
고동원 성균관대 교수는 “현행 규제는 판매사가 상품을 판매하면 자산운용에 관여할 수 없고 감시한다는 게 쉽지 않다. 그래서 (편입자산 비율 등) 정보 접근 권한을 열어주는 방식을 고민할 수 있다. 그러나 이를 넘기면 판매사가 책임 의무도 지는데 이에 대해 실효성이 있는지는 의문이 든다”며 “금융당국이 위험성을 빠르게 감지하고 사전 감독이 가능한 방향을 우선 고민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