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국회의원의 머리카락

입력 2019-09-24 1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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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충현 정치경제부 기자

많은 학생들을 바다로 떠나보낸 5년 전, 전남 진도 팽목항에서 이주영 국회부의장을 처음 봤다. 취임한 지 갓 한 달을 넘긴 해양수산부 장관이었다. 침통함이 가득한 그곳에서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았다. 그는 자세를 낮췄다. “너 때문에 우리 애가 죽었다”는 애달픈 울부짖음에 “제 잘못이다. 죄송하다”고 고개를 숙였다. 136일 동안 현장을 떠나지 않았고 그동안 면도와 이발을 하지 않았다. 풀어헤친 긴 머리와 수염은 그의 상징과도 같았다. 많은 사람들이 그의 진정성을 의심하지 않았다. 진보 진영에서도 그를 높이 평가했다.

당시 조국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그의 낮은 자세와 묵묵한 모습을 배우고 싶다. 이런 사람이라면 유임해도 좋겠다는 생각”이라고 했다. 정치인으로서의 입지도 높아졌다. 보수 진영에서는 ‘팽목항의 영웅’이라는 별명을 붙여줬다. 세월호 참사와 관련된 많은 이들이 옷을 벗었지만 주무부처 장관이었던 그는 살아남았다. 2년 뒤 총선에서 그는 5선에 성공했고, 대한민국 의전서열 8위인 국회 부의장 자리까지 올랐다.

얼마 전 그는 반대로 머리카락을 모두 잘랐다. 자신을 칭찬했던 조 장관의 사퇴를 촉구하기 위한 자유한국당의 삭발행사였다. 한국당으로서는 ‘반(反)조국 투쟁’의 동력이 약해지는 것을 염려하던 시점에서 적절한 타이밍이었다. 현직 국회 부의장의 삭발에 화답하듯 다음 날에는 초선 의원 5명이 삭발에 가세하며 투쟁 분위기를 이어갔다. 당 안팎에서는 이들의 삭발이 총선 공천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이런 해석에 따른다면 그의 머리카락은 이번에도 정치적으로 유용하다.

삭발이든 장발이든 진심과 결기를 나타내기 위한 행위라는 점은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 문제는 ‘보여준 이후’의 행동이다. 해수부 장관 임기를 마친 뒤 ‘친박(친박근혜)’ 정치인으로 돌아간 이 부의장은 세월호 유가족과 멀어졌다. 세월호 5주기를 맞은 올해 4월, 희생자 유가족들은 ‘처벌 대상’ 정치인 18명을 지목한 바 있다. 여기에는 유족들을 향해 ‘징하게 해 먹는다’던 차명진 전 의원, ‘세월호가 징글징글하다’는 문자메시지를 공유했던 정진석 의원과 함께 이 부의장의 이름도 올라 있다.

이 부의장의 삭발에 대한 평가는 5년 전 머리를 기를 때와 사뭇 다르다. 사회적 약자의 저항방식인 삭발투쟁이 국회 부의장이라는 자리와 어울리지 않는다는 비판도 있고, 2015년 세월호 유가족들이 정부의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의미로 삭발을 했던 것과 비교되기도 한다. 지난 5년간 이 부의장의 정치적 행보가 팽목항의 장발에 부응했다면 이번 삭발의 파장도 크게 달랐을 수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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