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 최악의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AI)로 닭을 비롯한 가금류 2000만 마리가 살처분 돼서야 정부가 백신을 만드는 항원뱅크 구축에 나섰다. 국내에서 고병원성 AI가 처음 발생한 지 13년 만이다. 해마다 반복된 피해에도 대비책을 마련하지 않은 채 늑장 대응만 되풀이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21일 농림축산검역본부에 따르면 항원뱅크는 백신완제품을 만들기 위한 전 단계로, 백신바이러스를 대량 생산해 냉동보관한 것이다. 검역본부는 긴급상황에 대비해 백신완제품을 만들 수 있는 항원뱅크 구축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앞서 국내에서 발생한 H5N1, H5N8형 AI 바이러스의 백신후보주는 구축된 상태로, 이번 H5N6형 백신후보주를 개발 중이라는 설명이다.
항원뱅크가 구축되면 접종결정 후 2주 안에 백신제조가 가능하다. 비용은 마리당 60원 수준으로 추산됐다.
그러나 항원뱅크 구축에는 3개월 넘게 시간이 걸려, 당장 AI가 창궐하는 겨울 동안에는 백신접종이 어려운 실정이다. 결국 방역당국은 올해도 피해 확산을 지켜보다가, 철새가 떠나면서 사태가 자연 종료되는 것을 속수무책으로 기다리는 셈이다.
검역본부는 백신접종이 큰 효과를 내기 어렵고 부작용도 커 신중을 기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백신접종을 하는 국가에서 공통적인 인체감염 사례가 발생하고, 중국은 광범위한 백신접종으로 변이된 다양한 종류의 AI 바이러스를 양산한다는 설명이다.
이에 축산선진국 대부분은 우선 살처분 정책을 사용하고, 살처분 만으로 박멸하기 어려운 경우 백신접종을 검토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해마다 찾아온 AI에도 정부가 만일의 사태에 대비한 차선책을 여태 마련하지 않았다는 비판은 커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