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DB산업은행 등 채권단이 17일 현대상선에 대한 자율협약 등 지원을 공식화한 것은 난항이 예상됐던 용선료 협상이 의외의 호조를 보인 것이 결정적으로 작용했다.
산은 관계자는 “현대상선은 이미 선주 한 곳으로부터 용선료 인하 동의를 받았다”며 “나머지 선주들과의 협상도 잘될 수 있도록 채권단이 먼저 나선 것”이라고 설명했다. 용선료 협상에 직접 나서고 있는 한 관계자는 “국내 선주들과 협상은 이미 끝났다”며 “외국 선주들에게도 1차적으로 긍정적인 답변을 받았다”고 전했다.
용선료란 배 빌리는 비용을 말한다. 용선료는 현대상선의 경영악화 주범으로 지목됐다. 현대상선의 용선료는 운임료가 높았던 4~5년 전에 계약을 맺었기 때문에 다른 해운사보다 5배가량 비싸다.
현대상선은 현재 용선료에만 1년에 2조원씩 쏟아붓고 있다.
일반 금융사 부채(1조1000억원), 사채(1조800억원), 선박금융 부채(1조9000억원)에 비해 큰 규모로, 이는 업황과 관련이 있어 일시적인 채무조정으로 해결이 안되는 면에서 현대상선 스스로 풀어야 할 최대 과제였다.
산은은 그동안 ‘先 구조조정 後 지원’ 원칙을 강조했다. 지원을 받으려면 용선료 인하, 비협약 채권자 채무조정 등 현대상선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해야 채권단이 채무유예, 출자전환 등으로 이어지는 지원을 해주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원칙은 깨졌다.
전일 열린 사채권자 집회는 성과가 없었다.
오는 4월 도래하는 회사채 1200억원의 만기 연장 합의에 실패했기 때문이다. 자율협약은 기본적으로 채권단 동의만 받으면 되지만, 형평성 차원에서 산은은 비협약채권자들의 동의도 받으라고 현대상선을 압박해왔다.
1차 협의이기는 하지만 사채권자 합의가 실패했음에도 산은은 같은날 이례적으로 채권단의 자율협약 개시를 추진한다고 공식화했다.
산은은 또 용선료 협상이 끝나야 자율협약 개시가 가능하다는 입장이었지만, 용선료 협상이 끝나기도 전에 자율협약 개시를 기정사실화했다.
채권단의 또다른 관계자는 "이변이 없는 한 오는 29일부터 현대상선에 대한 조건부 자율협약이 개시될 것"이라고 말해 채무 유예안이 어느정도 합의됐음을 시사했다.
산은이 원칙을 접고 먼저 채무조정에 나선 것을 두고 총선을 앞둔 정치적 행보에 가깝다는 지적이 나온다.
시장에선 현대상선과 유력 여권 인사와의 관계를 주목해왔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의 친누나 김문희 용문학원 재단 이사장은 현대증권과 현대상선의 주주다.
또한 어차피 법정관리가 불가피하다면 도와줬다는 명분을 남겨 앞으로 있을 잡음을 최소화하려는 포석으로도 읽힌다. 한 사모펀드 대표는 “용선료 협상 결과를 현재로선 누구도 장담하기 어렵다”며 “산은이 현대상선 살리기에 최선을 다했다는 구체적인 근거를 남기고 싶어하는 것 같다”고 추측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