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계 헤지펀드가 삼성물산 합병안에 공식 반대한다며 지분을 취득, 삼성그룹 지배구조 개편 작업에 사실상 제동을 걸고 나섰다.
4일 미국계 헤지펀드인 엘리엇매니지먼트는 “금일 삼성물산의 지분 7%를 보유하고 있다”며 “최근 진행된 제일모직과 삼성물산 합병 계획안은 삼성물산 가치를 상당히 과소평가 했을 뿐 아니라 합병조건 또한 공정치 않으며, 소액주주들의 이익에 반하는 행동”이라고 공식 발표했다.
실제 이날 엘리엇매니지먼트는 경영참가 목적으로 삼성물산 지분 7.12%(1112만5927주)를 장내 매수했다고 공시했다.
1977년 설립된 엘리엇매니지먼트는 엘리엇어소시에이츠와 엘리엇인터내셔널 등 2개의 펀드를 운용하고 있으며, 운용자산이 미화로 260억 달러(한화 약 29조원)에 달한다.
증권가에서는 미국계 헤지펀드가 합병안을 반대로 갑작스럽게 지분을 취득하면서, 향후 다른 외국계 기관투자자들의 행보를 주시하는 모습이다. 그간 순탄하게 진행됐던 삼성그룹의 지배구조 개편 작업에 급브레이크가 걸릴 전망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익명을 요구한 증시 전문가는 “미국계 헤지펀드가 짚은 이슈는 한 번쯤은 누군가 짚고 넘어갈 것으로 예상됐던 문제였다”며 “돈을 잘 벌지만 가치대비 저평가 된 삼성물산이 시가총액 기준으로 제일모직과 합병하면서, 주주들 입장에선 중장기적으로 손해보는 느낌이 든다라는 생각을 가진 게 사실”이라고 전했다.
이 전문가는 이어 “합병 당시엔 주가가 급등해 국내 기관 투자자중엔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진 않았지만, 미국계 헤지펀드가 목소리를 높이면서 제2, 제3의 반대세력이 나타날 가능성도 크다”고 덧붙였다.
재계는 엘리엇매니지먼트의 이번 지분 매입이 제일모직과의 합병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고 있다. 현재 삼성물산의 우호 지분은 삼성SDI(7.18%),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1.37%), 삼성복지재단(0.14%) 등을 합쳐 13.65%에 불과하다.
반면 3일 기준으로 외국인 지분은 32.11%에 달한다. 만약 엘리엇매니지먼트를 포함한 외국·기관 주주들이 1조5000억원 규모의 주식매수청구권을 행사하면 합병 계획이 무산될 수 있다. 이는 삼성물산 보통주 지분 약 17%에 해당하는 규모다.
그러나 합병 계획이 무산될 경우 주가 측면에서 반대한 주주들이 볼 수 있는 이익이 뚜렷하지 않다는 점에서 합병 반대 세력의 결집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한편,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은 지난달 26일 각각 이사회를 열어 합병을 결의했다. 제일모직이 1대 0.35로 삼성물산을 흡수 합병하는 방식이며, 7월 주주총회를 거쳐 오는 9월 1일 합병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