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안심대출과 미끼상품

입력 2015-04-03 10:32 수정 2015-04-03 1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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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영 정치경제부 기자

특정 상품을 비현실적으로 싼 가격에 제한된 수량으로 판매한다는 마트 판촉물 광고를 주변에서 쉽게 접할 수 있다. 소위 미끼상품이다. 더 많은 고객을 끌어모으기 위해 원가 이하로 판매하는 미끼상품을 사려면 상당한 노력이 필요하다. 평소 광고를 꼼꼼히 챙겨봐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판매 시간에 맞춰 서둘러 마트를 방문해야 한다. 그래도 치열한 경쟁으로 구매에 실패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정부가 가계부채 개선을 위해 출시한 연 2%대 중반의 은행 주택담보대출인 안심전환대출도 마트 미끼상품과 다르지 않다. 우선 연간으로 잡은 20조원의 한도가 4일 만에 소진될 정도로 흥행 돌풍을 일으켰다. 또 은행이 팔수록 손실이 날 정도로 금리가 낮다. 정부의 동향도 잘 주시해야 한다. 언제 판매가 개시되는지, 한도가 얼마나 남았는지, 추가 판매는 이뤄지는지 등을 연일 체크해야 한다. 심지어 안심대출 1차분은 선착순으로 이뤄졌다. 은행 창구에서 전쟁터 같은 광경이 펼쳐졌다는 것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안심대출 2차분도 선착순은 아니지만 5영업일간으로 판매기간을 못 박아 바쁜 일상에서 짬을 내야 하는 불편은 같다.

이런 상황에서 한 나라의 정책이 마트의 기획상품처럼 기회를 잘 엿본 사람들에게 그 혜택이 돌아가는 것이 정상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안심대출은 정책의 핵심 가치 중 하나인 형평성을 무너뜨렸다. 쪼들리는 살림 속에서도 성실히 빚을 갚아나가는 서민들과, 정부의 시책대로 고정금리 분할상환으로 전환한 국민이 상대적으로 손해를 보게 된 것이다. 더군다나 안심대출은 가계부채 위험을 낮추는 효과도 거의 없다. 진짜 어려운 사람이 아니라 빚을 잘 갚고 집까지 소유한 이들에게 혜택이 돌아갔기 때문이다. 더욱 문제는 안심대출의 형평성 비판이 정치권을 중심으로 안심대출과 같은 상품을 확대해야 한다는 주장으로 흐르고 있다는 점이다.

박근혜 정부는 안심대출뿐만 아니라 국민행복기금, 신용회복위원회의 ‘대학생·미취업 청년층 지원 프로그램’ 등 정책적으로 빚탕감 문화를 확산시키고 있다. 이제 누가 빚을 성실히 갚으려 하겠나. 정부가 미끼상품 같은 안심대출을 통해 낚을 수 있는 건 도덕적 해이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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