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초부터 금융권의 화두가 된 ‘핀테크’ 성패는 정부가 얼마나 적극적으로 빗장을 풀어주는가에 달려 있다. 거래액 650조원에 달하는 알리페이(알리바바 전자화폐)가 설립될 수 있었던 것은 중국 정부의 강력한 규제 완화 의지 덕분이다. 중국 첫 민영 인터넷 은행인 ‘위뱅크’ 출범식에 리커창 총리가 참석해 “금융개혁을 위한 큰 발걸음”이라고 평가한 것은 중국 정부의 시장 성장 의지를 상징적으로 대변한다.
세계에서 가장 복잡하고 많은 규제를 갖고 있다는 미국도 비용편익을 통해 비합리적 규제를 정비했다. 특히 비조치 의견서라는 면책 제도를 통해 ‘페이팔’ ‘구글월렛’ ‘애플페이’ 등 유수의 간편결제 업체들이 탄생할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을 마련했다.
이 같은 글로벌 규제완화 흐름 속에서 우리 금융당국의 의지만을 점수로 매기자면 일단 합격점이다. 금융위원회는 을미년을 ‘핀테크 활성화’의 해로 규정하고 규제 패러다임 개선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14개 은행과의 제휴를 통해 ‘뱅크월렛 카카오’ 서비스를 출시하고 외국인의 ‘천송이 코드’ 구입을 가로막는 공인인증서와 액티브액스를 없애 간편결제 시스템도 개선했다.
신제윤 위원장은 신년사를 통해 “핀테크산업이 낯선 금융규제 환경, 부족한 자본력 등을 이유로 시장에 적응하지 못하고 퇴출당하는 일이 없어야 한다”며 “핀테크산업 육성을 정부 차원에서 체계적으로 지원해 국내 금융산업 전반의 경쟁력을 확보하겠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금융당국의 의지만큼 규제완화 실효성 점수도 높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낙제 수준이다. 금융실명거래법 시행령 개정을 통해 ‘금융실명제’(금융회사 간 실명확인 업무 위·수탁이 가능)를 완화하고 IT회사가 인터넷 전문은행을 설립할 수 있도록 ‘금산분리’(산업자본의 은행자본 소유 4%로 제한)의 신축적 적용 방안을 검토하고 있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 특히 금산분리 정부와 전문가 사이에서도 이견이 많다. 2008년 이명박 정부 때도 인터넷 전문은행 도입을 추진했지만 관련 은행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지 못했다.
글로벌 플랫폼 및 결제 기업들의 국내 진출을 준비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번 핀테크 열풍이 용두사미로 끝나지 않게 하기 위해선 미국처럼 유연한 규제 적용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문병순 LG경제연구원 책임연구원은 “우리나라는 포괄적 금지 규정도 많고 법률상 근거가 없는 규제도 많다”며 “불확실한 규제 때문에 핀테크산업이 발전하기 어려운 환경”이라고 평가했다.
이어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들은 비용편익 분석을 통해 비합리적 규제를 최소화하고 있다”며 “우리나라도 글로벌 기업이 성장한 뒤 빗장을 푸는 ‘갈이천정’(渴而穿井)을 지양하려면 규제 비용과 소비자 효용을 감안해 개선이 필요한 영역을 우선 선정하고 이에 대한 적극적 제도개선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