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함석헌(咸錫憲) 명언
“정치란 가장 덜 나쁜 놈들을 뽑는 과정이다. 더 나쁜 놈들이라고 투표 안 하면 어차피 가장 나쁜 놈이 당선된다.”
사상가, 민권운동가. 잡지 ‘사상계(思想界)’ 주필을 역임한 그는 ‘씨알의 소리’ 잡지를 창간해 민중 계몽운동을 폈다. ‘폭력에 대한 거부‘, ‘권위에 대한 저항’ 등 평생 일관된 사상과 신념을 바탕으로 항일·반독재에...
이날 간담회에는 함석헌 제이아이테크 대표이사가 직접 사업 내용과 핵심 경쟁력, 성장 계획 등을 소개하고 질문에 답했다.
함 대표이사는 “제이아이테크는 프리커서와 포토마스크케이스를 기반으로 계속해서 매출 성장을 이뤄온 회사”라고 소개했다. 프리커서는 반도체 공정 중 ‘증착’ 과정에서 사용되는 소재로 원하는 물질의 박막을 웨이퍼에 얇은...
2014년 함석헌 대표이사가 설립한 제이아이테크는 반도체 소자 제조 공정 중 박막 증착의 핵심 재료인 전구체(프리커서)를 주력으로 디스플레이용 포토 마스크 케이스, OLED 소재, 반도체용 희귀 가스 등도 함께 다룬다. 반도체 시장의 성장과 함께 탄탄한 실적 위에서 꾸준히 매출 증대를 이루고 있다.
디스플레이용 포토 마스크 케이스는 액정소자 핵심 재료인 FPD...
마지막으로 'Together' 오페라 갈라 콘서트 주제에서는 함석헌 베이스와 최수안 소프라노가 영화 노팅힐 OST인 She 등 9여 곡을 들려주며 고객들에게 일상에서 벗어난 치유의 시간을 제공했다.
하이투자증권 관계자는 "코로나 19의 영향으로 피로가 누적된 상황에서 고객님들께 힐링의 시간을 선물해드리고자 DGB대구은행과 함께 이번 행사를 진행하게 됐다...
구축되고 있는 새만금의 물류 기반시설이 기존 공장과 거래처와의 접근성을 높이고, 항만을 통해 수출 길을 도모할 수 있다는 점 등을 고려해 투자를 결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함석헌 제이아이테크 대표는 “지역경제 활성화와 고용창출에 도움이 되고,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기초소재의 국내 공급망 안정화에도 힘을 보탤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백 소장은 문맹 퇴치를 위해 야학을 이끌던 중 1960년 4·19혁명에 참여했고, 1964년 함석헌, 장준하, 계훈제, 변영태 등 재야 운동가들과 함께 한일협정 반대운동에 참가했다.
백 소장은 여러 사회 운동을 주도하다 끊임없이 고문과 투옥 생활을 지내야 했다. 지난 1974년 유신 반대를 위한 100만인 서명운동을 주도한 긴급조치 위반으로 투옥됐다. 이후 1979년 ‘YMCA...
백 소장은 문맹 퇴치를 위해 야학을 이끌던 중 1960년 4·19혁명에 참여했고, 1964년 함석헌, 장준하, 계훈제, 변영태 등 재야 운동가들과 함께 한일협정 반대운동에 참가했다.
백 소장은 여러 사회 운동을 주도하다 끊임없이 고문과 투옥 생활을 지내야 했다. 지난 1974년 유신 반대를 위한 100만인 서명운동을 주도한 긴급조치 위반으로 투옥됐다. 이후 1979년 ‘YMCA 위장결혼...
이 무렵 그는 함석헌, 장준하, 계훈제, 변영태 선생 등과 함께 반일투쟁에 나서 구속됐다.
1972년에는 통일문제연구소의 모태인 백범사상연구소를 충무로에 개소했다. 백범 김구 선생의 기념사업을 추진하면서 민족사와 민족사상 등을 연구했다.
1974년에는 유신 반대를 위한 1백만인 서명운동을 주도하다 긴급조치 1호 첫 위반자로 장준하 선생과 함께 옥고를...
매번 속아도 이 나쁜 정치를 바꿀 수 있는 건 유권자들의 표밖에 없다. 저열(低劣)한 인간들의 지배를 받지 않기 위해서도 그렇다. 시대의 사상가였던 함석헌 선생은 “정치(선거)는 덜 나쁜 놈을 뽑아 쓰는 과정이다. 그놈이 그놈이라고 외면하면 가장 나쁜 놈들이 다 해먹게 된다”고 말했었다.
함석헌 선생의 ‘그대는 골방을 가졌는가’라는 시가 생각난다. 여기서 골방은 자기만의 시공간이다. 현대인이 네트워크 사회에 살다 보니 떨어져 있어도 휴가를 가 있어도 현장과 늘 연결되어 있다. 더구나 우리 사회는 1990년대 외환위기, 2000년대 금융위기를 겪으면서 뛰면서 생각하는 습관에 익숙해졌다. 그러나 정신없이 살아온 우리 세대가 새로운 미래를 개척하기...
☆ 함석헌 명언
“나라를 일으켜 세우는 것은 말하는 씨알밖에 없습니다.”
씨알은 민중, 민초를 뜻하는 순우리말로, 그의 사상의 열쇳말. 사상가, 민권운동가 겸 문필가. 명동사건, YWCA 위장 결혼식 사건에 연루돼 재판에 회부되는 등 많은 탄압을 받았다. ‘폭력에 대한 거부’, ‘권위에 대한 저항’ 등 평생 일관된 사상과 신념을 바탕으로 항일·반독재에...
칼럼에 따르면 ‘유신 반대 유인물을 돌린 경기고 학생 노회찬’은 그 무렵 씨알 함석헌(1901~1989)을 찾아갔는데, 씨알은 그에게 “눈에 눈물이 어리면 그 렌즈를 통해 하늘나라가 보인다”고 말해 줬다고 한다. 바로 뒤 문장은 “노회찬은 여성·장애인·비정규직·성소수자와 함께 눈물 흘리고, 힘겨운 삶을 개선하기 위해 입법에 전력을 다해 많은 성과를 거뒀다”이다....
해당 사진은 김사복 씨와 힌츠페터가 민중운동가 함석헌 선생님을 인터뷰하러 가기 전 찍은 사진으로 추정된다.
앞서 ‘택시운전사’가 개봉했던 지난달 초 김승필 씨는 자신의 SNS에 “저는 김사복 씨 큰아들입니다”라는 글을 올리는 것을 시작으로 꾸준히 자신이 김사복 씨의 아들임을 주장해왔다.
그는 “아버지가 1984년 12월 19일 6개월의 투병 생활 끝에...
캐나다에서 선교활동을 하면서도 북미주 한국민주회복통일촉진국민회의 의장을 맡았던 그는 1983년 귀국 후에도 함석헌(1901. 3.13~1989. 2.4) 등과 ‘재야원로간담회’에 참여했으며 ‘고 박종철 군 국민추도회 발기인’으로 활동했다.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은 지난해 김재준 목사에 대한 제명·파면을 철회했다.
함석헌은 그를 ‘일제강점기 일하기로 유명한 인물’로 평했다.
1894년 10년 만에 귀국한 이규완은 이듬해 명성황후 폐위 음모사건에 휘말려 주동자 박영효를 따라 다시 2차 망명을 했다. 박영효의 경호원 격으로 활동한 이규완은 국내에 잠입해 고종 폐위 쿠데타 공작을 추진하기도 했다. 이규완은 1910년 이전부터 조선인 참정권 운동, 자치권 운동을 구상하고...
인권운동가 함석헌 선생의 생애와 사상을 재조명하는 심포지엄이 열린다.
덕성여대 인문과학연구소 지역문화연구센터(소장 오헌필, 센터장 정요근)는 도봉구청(구청장 이동진)과 함께 24일 오후 2시 학내 대강의동 204호에서 ‘비판의 철학자 함석헌의 삶과 사상’을 주제로 공동 심포지엄을 개최한다.
이번 심포지엄은 함석헌기념관 개관 1주년을 기념해 마련됐다....
함석헌(咸錫憲)은 비틀어진 대한민국을 향해 쓴소리 듬뿍 퍼부은 참지식인이었다. 1980년대에 대학을 다닌 ‘응팔 세대’라면 누구나 그를 ‘진정한 어른’으로 존경한다. 물론 그의 좌편향성을 비판하는 사람도 있다. 1901.3.13~1989.2.4.
평북 용천의 기독교 가정에서 태어난 그는 3·1운동에 참여한 뒤 평북 정주의 오산학교에서 남강 이승훈, 다석 유영모로부터...
其將及] 송무백열은 시의 중간쯤에 나온다. “진실로 소나무가 무성해지면 잣나무가 기뻐하고/아, 지초가 불에 타면 혜초가 한탄하네.”[信松茂而柏悅 嗟芝焚而蕙歎]
“그대, 그런 사람을 가졌는가?”라는 함석헌 선생의 말을 빌려 묻는다. 그대, 소나무와 잣나무 같은 그런 우정을 가졌는가?
꿈이 많던 시절 대학은 함석헌 선생의 영향을 받아 서울농대 임학과에 가고 싶었고, 김찬삼 선생을 따라 지리학과에 가서 세계여행도 하고 싶었다. 축산학과에 가서 덴마크로 유학도 가고 싶었는데 결국 당시에 등록금이 제일 싼 신문학과에 들어갔다. 대학교 신입생 때 미팅을 했는데 티켓을 사서 번호뽑기로 짝을 지었다. 여럿이 모여서 포터블 트랜지스터를 틀어놓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