숭실대학교는 한국기독교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대한민국임시정부 성립 축하문’과 ‘선언서’가 12일 국가등록문화유산으로 지정고시됐다고 12일 밝혔다.
해당 문서는 1919년 10월 31일 대한민족대표 30인이 발행한 활판 인쇄 전단이다. 3.1운동 이후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수립과 당시 독립운동의 전개 양상을 보여주는 자료라는 평가가 나온다....
강의 양옆에 펼쳐진 노트르담 대성당, 파리 시청 건물, 루브르 박물관, 오르세 미술관, 콩코르드 광장, 그랑 팔레 등 대표적인 명소들을 지나 에펠탑 인근에 도달하는 코스로 구성돼 그 자체만으로도 훌륭한 볼거리가 됐죠.
그러나 시작부터 문제가 불거졌습니다. 한국 선수단이 배를 타고 들어올 때 장내 아나운서가 한국을 '북한'으로 소개한 겁니다.
이런...
숭실대학교 한국기독교박물관은 최근 한국기독교박물관 설립자인 고(故) 매산 김양선 교수가 수집한 추사 김정희의 서찰첩을 탈초․번역 및 해제한 '한국기독교박물관 소장 완당수찰(阮堂手札)'을 발간했다.
이번에 공개된 서찰첩은 김정희가 제주도에 유배된 1840년 이후 유배생활을 담아 뭍으로 보낸 편지로 구성돼 있다. 편지 20편, 시고(詩稿) 1편, 기타 3편 등, 총...
숭실대 한국기독교박물관은 개교 120주년 맞은 2017년부터 숭실 출신 독립운동가를 발굴하는 사업을 하고 있다. 그 결과 최근 3년간 한국기독교박물관에서 독립유공자 발굴사업을 진행해 독립유공자 포상을 받은 동문이 10명이다.
2017년 광복절에 김양선(건국포장) 김태술(애족장) 김형두(대통령표창) 선생이 독립유공자 서훈을 받았다. 2018년에는 광복절에...
조선총독부 경찰이 ‘불령선인(不逞鮮人)의 소굴’이라 칭했던 숭실대는 시대적 사명감을 가지고 민족정신과 기독교신앙으로 무장한 수많은 항일 민족 운동가를 배출했다.
숭실대 한국기독교박물관에서는 숭실 출신 독립유공자 발굴 사업을 지속적으로 전개했으며 현재까지 파악한 숭실 출신 독립유공 포상자는 총 84명에 달해 국내 대학 중 최대인원이다.
숭실대학교 한국기독교박물관은 “서울 숭실대학 제3대 학장을 역임한 고병간 박사가 2018년 광복절 독립유공자 정부 포상자로 선정됐다”고 14일 밝혔다.
고병간 박사는 선천의 신성학교에 재학 중이던 1919년 2월 27일 3.1만세운동에 사용할 독립선언서와 태극기를 제작했다.
그는 3월 1일 선천읍에서 태극기를 앞세우고 독립 만세를 고창하며 독립선언서를...
황민호 숭실대 한국기독교박물관장은 “숭실의 역사를 보다 객관적인 시각에서 재조명하고 나아가 한국 근대의 지성사, 기독교사, 고등교육사 연구에도 활용하기 위한 목적”이라고 발간 취지를 밝혔다.
번역 책임을 맡은 김용진 교수(영문학과)는 “평양 숭실대학의 역사가 평면적으로 쉽게 해석되기보다는 그 당시의 시대상황과 현재와 미래의 시대 상황이...
1955년 미 국무부 초청으로 도미 시찰을 하며 소설가 펄 벅을 만나기도 했다. 1957년 대한민국 예술원 회원에 당선되었고, 기독교 장로교회에서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장로가 되었다. 1961년 폐암 합병증으로 사망했다.
공동기획: 이투데이, (사)역사 여성 미래, 여성사박물관건립추진협의회
김형두 씨는 숭실전문대 1학년에 재학 중이던 1930년 광주학생운동에 동조하는 평양 지역 학생시위에 참여하는 등 반일 활동을 벌였다.
황민호 숭실대 한국기독교박물관장은 “일제의 국권침탈에 항거해 민족자존의 기치를 세운 선배들의 희생정신과 애국심을 기리는 계기로 삼고 앞으로도 숭실 출신의 독립운동가들을 발굴해 나갈 예정”이라고 전했다.
미국 체재 중 한국전쟁이 나자 구호품을 마련해 보내기도 했다. 1952년 귀국해서는 전쟁 중 남편을 잃은 여성들과 고아들을 위해 ‘한미기술학교’를 설립, 이들에게 기술교육을 했다. 1971년 8월 24일, 78세를 일기로 타계하였다.
공동기획: 이투데이, (사)역사 여성 미래, 여성사박물관건립추진협의회
그녀의 학교는 식민지 당국의 압력 속에 무궁화를 상징하던 ‘근화’라는 이름과 결별, 1938년 10월 ‘덕성여자실업학교’로 이름을 바꾸었다. 그녀는 결국 1940년 8월 교장 직위에서 물러나 교육 일선에서 손을 떼었다. 재단 이사장으로서 학교를 지키다 1955년 6월 1일 77세로 생을 마감하였다.
공동기획: 이투데이, (사)역사 여성 미래, 여성사박물관건립추진협의회
교회 내의 소수자로서 항상 주의를 기울이며 ‘조용한 설교’를 통해 많은 사람들에게 큰 울림을 주었다. 교회의 성차별과 편견을 깨뜨리고 기독교의 평등사상을 설파하는 데 큰 역할을 했던 전밀라 목사는 1985년 10월 30일 눈을 감았다.
공동기획: 이투데이, (사)역사 여성 미래, 여성사박물관건립추진협의회
김명순(金明淳)은 나혜석·김일엽과 함께 근대문학 초기 한국의 문단을 이끌었던 여성 문인이자 번역가이다. 김명순은 1896년 평양에서 갑부 김가산 소실의 딸로 태어나 기독교 계통인 사찰골학교를 졸업한 뒤 서울 진명여학교, 이화학당을 거쳐 동경여자전문학교에서 수학한다.
1917년 당대 문학청년들의 로망이었던 잡지 ‘청춘’(12호, 최남선 주재)의 현상...
유언에 따라 화장하여 대동강에 뿌려졌다. 일생을 공부와 항일 민족운동에 헌신한 그의 정신은 시·공간을 초월하여 지금까지 빛을 발한다. 열정적인 꿈을 당당하게 실현하는 데 한 점 부끄러움이 없었기 때문이다.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
공동기획: 이투데이, (사)역사 여성 미래, 여성사박물관건립추진협의회
드러내지도 뽐내지도 않으며, 묵묵히 역할을 다한 그의 모습은 진정 자신을 아름답게 하였을 뿐 아니라 동료를 더욱 돋보이게 하였다. 기독교에서 불교로, 사회주의로 자신의 뜻에 따라 거침없이, 그러나 중심을 잡아 일말의 흐트러짐 없이 일생을 살아냈다 해도 과언이 아닌 것 같다.
공동기획: 이투데이, (사)역사 여성 미래, 여성사박물관건립추진협의회
회장을 맡았으며, 1976년에는 ‘3·1사건 가족대책협의회’ 회장으로 남편의 석방운동을 했다. 1977년에는 한국교회여성연합회 회장이 되어 여성노동자들의 생존권 투쟁을 지원하는 데 혼신의 힘을 다했다. 한국 민주화 운동 역사의 한가운데 있었던 공덕귀는 1997년 안국동 자택에서 눈을 감았다.
공동기획: 이투데이, (사)역사 여성 미래, 여성사박물관건립추진협의회
집안은 기독교 가정이었고 어머니는 정신여학교(貞信女學校) 교감, 연동교회 최초의 집사, 초대 여전도회 회장으로 활동했다. 한국 최초의 여의사 박에스터(김점동)는 신의경의 큰이모, 세브란스병원 부속 간호학교 1회 졸업생인 김베세가 작은이모이다.
신의경은 선교사가 세운 정신여학교를 졸업하였다. 졸업 후 이 학교의 교원으로 있으면서 1919년 김마리아와...
최초의 거대한 전국적 여성조직이 탄생하였던 것이다. 사업으로 의식주 생활개선 사업, 문맹 퇴치, 사상 및 예의범절교육을 실시했다.
1949년 11월 창덕여중·고 교장으로 발령 받아 부녀국장에서 퇴임하였고, 교장 재임 중 6·25전쟁이 발발하여 납북되었다.
공동기획: 이투데이, (사)역사 여성 미래, 여성사박물관건립추진협의회
국회의원 활동 중 내내 여권 신장과 민권 수호에 앞장섰다.
정계 은퇴 후에는 1972년 경기도 안양 근명여자상업학교의 이사장으로 여성교육에 여생을 바치면서, 국토통일원 고문, 육영수여사추모기념사업회 이사장, 국정자문위원 등을 역임하였다.
공동기획: 이투데이, (사)역사 여성 미래, 여성사박물관건립추진협의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