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원장(朱元璋)의 모사(謀士)가 되어 중국 통일에 중요하게 역할했고, 명나라 건국 후 어사중승(御史中丞)과 태사령(太史令) 등의 관직을 지냈다. 산문에 뛰어나 원나라 말기 사회의 여러 모순과 부조리를 풍자한 글을 많이 썼다. 저서로는 ‘성의백문집(誠意伯文集)’과 우언체 산문집 ‘욱리자(郁離子)’가 있다. 오늘은 그가 숨진 날. 1311~1375.
☆ 고사성어...
명 태조 주원장과의 악연
이 무렵 주원장(朱元璋)이라는 새로운 강자가 출현하여 전국적인 반란의 지도자로 부상하게 되었다. 그리고 마침내 원나라를 무너뜨리면서 명나라를 건국하였다. 그가 바로 명나라 태조 홍무제(洪武帝)다.
홍무제가 아직 천하를 석권하기 전에 장사성이 장악하고 있던 소주를 공격했다. 그때 소주는 무려 8개월이나 버티면서 주원장을 몹시...
차 부회장은 명나라를 세운 주원장을 지도력의 사례로 들며 “주원장이 강적 장사성과의 큰 전투에서 새끼를 부화하고 있는 오리 가족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 전세가 불리하게 기울어지는 상황속에서 작전을 10여 일 유보시킨 모습을 보고 적의 장수들이 자신들과 나라의 미래를 맡길 만 하다고 판단해 부하들을 거느리고 투항한 사실이 있었다”며 “눈앞의 이익이나...
조선 개국 초기는 원나라로부터 주원장이 일으킨 명나라로의 권력 이동기였다. 이성계와 정도전은 두만강과 압록강 이북의 북방 영토 회복에 대한 강한 염원을 지니고 있었으며 구체적으로 실행 계획을 갖고 있었다. 태종 이방원이 일으킨 왕자의 난이 이 계획을 무산시키고 만다. 학계의 엄밀한 고증이 필요한 주장이기는 하지만, 작가는 “정도전이 살아 있어서...
영락제(永樂帝, 재위 1402~1424)는 명나라를 창건한 홍무제 주원장의 넷째 아들입니다. 아버지의 명에 따라 변방을 지키던 그는 조카가 2대 황제(건무제)로 즉위하고 그의 세력이 자신을 압박하자, 군사를 일으켜 조카를 쫓아내고 추종자들을 모두 죽였습니다.
단 한 명이 예외였는데, 건무제의 스승이었던 대학자 방효유(方孝孺)였습니다. 영락제는 모반의 정당성을...
유기는 주원장의 책사로, 주원장을 도와 명나라를 개국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자는 백온(伯溫), 시호는 문성(文成)이다. 그가 저술한 ‘적천수(滴天髓)’는 그가 생존했던 당시에 살았던 많은 사람들의 사주팔자를 해석한 명리학의 고전으로, 현재까지 명리학 연구자들의 교재로 활용된다.
중국 3대 책사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치열한 경쟁 환경에서 직원들의 생계를...
명나라 태조 주원장은 황제가 된 후, 맨발로 함께 농사 짓고 얼굴에 진흙을 묻힌 채 장난을 치던 친구들이 그리웠다. 그리하여 친구들에게 벼슬을 주기도 했다. 한 번은 친구들을 어전 모임에 초대했는데, 대신들 앞에서 자신을 함부로 대하자, 가차없이 처단했다. 체면 손상을 떠나 법도를 어겼기 때문이었다. 공자 역시 동네의 오랜 친구 원양이 가르침을 어기자 지팡이로...
이에 위화도 회군 이후 이성계에게 불만을 품었던 윤이와 이초 등 권문세족 출신들은 명나라에 망명해 주원장에게 이성계가 이인임의 아들이므로 그를 토벌해 달라고 요청했다. 그들은 주원장이 친원파였던 이인임을 싫어하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오늘날도 그렇지만 당시에도 무슨 일이 생기면 중국에 달려가서 “저 친구를 혼내 달라”고 요청하는 사람들이...
명 태조 주원장의 사당을 찾아 절하며 한족의 민심을 얻기 위해 노력하기도 했다.
강희제의 섬김은 민생으로 승화한다. 안거낙업(安居樂業), 백성이 근심 없이 생업을 할 수 있게 하는 것. 그는 민생 안정에 전력을 다한다. 치수사업을 벌여 황하의 범람을 막고, 팔기군의 둔전(屯田)을 몰수해 소작농에게 나눠주었다. 흉년이 들었을 때는 세금을 일부 또는 전부...
명나라의 황제 주원장이 위독하다는 소식까지 전해지며 정도전의 의지는 더욱 확고해졌다. 이제 단순히 사병혁파의 문제를 넘어, 더욱 더 큰 위기가 이방원을 덮쳐올 것이 예고된 것이다. "이것이었구나. 내 떨림과 불안의 정체가"라고 읊조린 이방원의 혼잣말은 '피의 전쟁'에 대한 궁금증을 높였다.
이런 상황에서 공개된 사진은 피의 전쟁의 서막을 예고하는...
'육룡이나르샤' 유아인과 김명민의 갈등이 전쟁으로 이어질지 관심이 쏠린다.
1일 방송된 SBS 월화드라마 '육룡이 나르샤'에서는 사병혁파를 위해 요동정벌을 하려는 정도전(김명민 분)과 이를 알게된 이방원(유아인 분)의 모습이 그려졌다.
정도전이 사직한 후 이방원은 정도전이 사병 혁파를 위해 요동을 치리라 추측했다. 이방원이 "고려에서는 전쟁이...
제안을 받아들인 이방원은 곧 요동성으로 출발했다. 명나라로 향하던 이방원은 군에게 포위됐고, 주원장의 아들인 3대 황제 영락제 주체와 맞닥뜨린다.
영락제는 이방원에게 “조선에서 여진족들을 받아들이기로 한 것을 알고 있다. 똑같이 미개한 놈들”이라고 비난의 수위를 높였다.
이에 이방원은 “잘 들어, 너 죽고 싶냐”고 응수해 첨예하게 대립했다.
원나라를 몰아내는데 가장 큰 공을 세웠지만 조카 주윤문에 밀려 부황 주원장의 감시 속에 세월을 보내야 했다. 1394년 이방원이 명나라 사신으로 가는 길에 북경의 연왕부에서 두 사람이 만나 의기투합했다. 아직은 임금이 되지 못한 이방원과 주체지만 훗날 조선과 명나라의 임금이 되며 남다른 인연을 쌓았다.
한편 '육룡이 나르샤'는 매주 월, 화 밤 11시에...
한나라를 개국한 유방, 후한의 광무제 유수, 위나라의 무제 조조, 촉한의 소열제 유비, 명나라의 태조 주원장 등은 중국 역사를 장식한 인물들이다. 이들이 나라를 건국하는 과정에 등장하는 인물들 또한 훌륭한 인재들이다.
이들 중 유수(훗날의 광무제)의 밑으로 들어가 후한을 일으킨 경엄도 그렇다. 그로 인해 ‘유지경성(有志竟成)’이란 말이 생겨났으니 말이다....
특히 고려시대 폭군 충혜왕을 영웅적 인물로 미화했다는 비난의 여론이 거세자 고려왕 왕유로 캐릭터를 교체하기도 했다.
또한 제작진은 자막을 통해 ‘기황후의 삶을 드라마로 재구성했다. 1368년 기황후는 주원장에게 대도를 정복당하고 북쪽 초원지대로 물러나 북원을 건국했다. 기황후의 아들 아유시리다라는 북원의 황제가 되었다’고 고지해 화제가 됐다.
정도전은 이방원을 점점 견제하고 이성계에게 자신 혹은 이방원 둘 중에 한 명을 선택할 것을 요구한다. 조선경국전은 조선왕조의 헌법이라 할 수 있는 책으로 개국 초 정도전이 지었다.
주원장은 왕자 한명을 명나라로 보내라고 하고, 이에 정도전은 정안군과 이방원을 보낼 것을 주청한다.
한편 7일 방송된 ‘정도전’은 17.4%(닐슨코리아)의 시청률을 기록했다.
이어 '기황후' 마지막 장면에는 '1368년, 기황후는 주원장에게 대도를 정복당하고 북쪽 초원지대로 물러나 북원을 건국했다. 기황후의 아들 아유시리다라는 북원의 황제가 되었다'라는 자막이 흘렀다.
북원은 '북쪽 원나라'라는 의미로 명나라에 의해 중국 본토에서 몽골 지방으로 쫓겨간 원나라의 잔존세력을 일컫는다.
기록에 의하면 1368년 원나라 마지막 황제인...
'기황후' 주원장 북원 탈탈 지창욱 하지원
'기황후' 지창욱이 하지원의 품에서 숨을 거뒀다. 이날 마지막회는' 하지원만 남은 채 모두 최후를 맞이한 황실의 비극이 그려졌다.
29일 방송된 MBC 월화드라마 '기황후'(극본 장영철 정경순/연출 한희 이성준)에서는 반란군과의 전쟁에서 대승상 탈탈(진이한 분)의 패배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기승냥(하지원 분)...
궁중에는 명태조 주원장 제사를 위하여 대보단을 만들었다. 명나라가 멸망함에 따라 중화의 전통을 조선이 잇는다는 ‘소중화(小中華)’의식을 가져왔다. 청나라에 대해서는 오랑캐라 부르며 낮추어 보았다. 군신관계를 맺고 조공을 바치면서도 마음은 이미 망해 없어진 명(明)에 가 있는 것이었다. 일부 학자를 중심으로 기존의 성리학적 질서를 극복하자는 실학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