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완용, 송병준, 이병무, 고영희, 조중응, 이재곤, 임선준으로 구성된 정미칠적은 대한제국에서 을사늑약 체결 2년 후인 1907년 7월에 체결된 한일신협약(제3차 한일협약 또는 정미7조약) 조인에 찬성한 내각 대신 일곱 친일파를 가리킨다.
이중 이완용은 을사오적 다섯 명의 매국노 중 한 명인 탓에 후손에 대표 친일파이자 매국노로 이름이 회자되는 것.
이날...
친일 매국노 조중응(趙重應· 1860~1919)에 관한 글에 이런 대목이 있다. ‘그는 세간에서 무사분주(無事奔走)라는 별명을 붙일 만큼 안 끼는 친일단체가 없을 정도로 광적인 친일배였다. (중략) 1916년에는 대정(大正)친목회 및 한성부민회의 회장을 맡으면서 일제 식민지 통치 기반의 구축에 누구보다 열을 올렸다. 일제의 어용 유학기관인 경학원의 설립도 동분서주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