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멋쟁이들이 유행을 선도했던 종로, 광장주식회사의 설립과 함께 시작한 동대문 상권, 임오군란 이후 일본인이 새로운 상권을 개발하여 쇼핑의 중심지가 된 명동, 서울의 어떤 지역보다 더 다양하고 복합적인 사회문화적 층위가 존재하는 이태원까지. 이 책의 저자는 패션을 통해 굴곡진 서울의 문화사를 살핀다.
소설가의 영화 감상법…'영화 보고 오는 길에 글을...
1991년 문화일보 창간호에 연재를 시작한 '국수'(國手)는 27년 만인 2018년 6권으로 끝맺었다. 1880~1890년대 임오군란, 갑신정변, 동학농민운동 등 격변을 배경으로 조선 예인과 민중의 삶을 다뤘다.
고인은 신동엽창작기금상(1985), 현대불교문학상(1998·2002), 이태준문학상(2016) 등을 수상했다.
빈소는 건국대충주병원 장례식장 5호실, 발인은 27일이다.
그는 “1882년 임오군란 때부터 일본군의 공관 수비대가 용산에 주둔한 것을 시작으로 조선군 주차사령부, 일본군 전시사령부, 일본군 사령부 등 용산 일대는 정말 대통령이 가면 안 될 자리다”라며 “개인 살림집 옮기는 게 아닌데, 대통령 집무실을 꼭 무슨 풍수지리설 따라가듯이 그렇게 하면 안 된다”고 꼬집었다.
이어 “왜 광화문에서 용산으로 (간다고 하는지)...
청와대는 2일 일본의 화이트리스트(수출 심사 우대국 명단·백색국가) 한국 배제와 관련해 ‘임오군란’, ‘갑신정변’, ‘청일전쟁’, ‘아관파천’, ‘카쓰라-태프트 밀약’, ‘을사늑약’, ‘한일강제병합’ 등을 언급하며 맞대응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나타냈다. 또 사실상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폐기하겠다는 뜻도 보였다.
김현종 청와대...
중화요리의 다른 이름은 청요리였고, 그 시작은 1882년의 임오군란이다. 청이 일본을 견제할 목적으로 산둥 주둔군을 제물포에 배치하고, 제물포는 청의 조계지가 됐다. 이때부터 부두 노역자들이 먹기 시작한 음식이 짜장면이다. 한국에 진출한 화교가 대부분 산둥성 출신인 이유도 여기에 있다. 요리사 이연복도 산둥 출신 화교의 후예가 아닐까 싶다.
중국 중심의...
임오군란(1882), 갑신정변(1884), 청일전쟁(1894), 을미사변(민비 시해, 1895) 등 말도 안 되는 기막힌 사건들의 내막이 고종 민비·이하응(대원군)·김병덕·김홍집·김옥균 ·김윤식·홍영식 등등 당시 인물들의 언행, 처신과 함께 ‘회상록’ 형식으로 소개되는데, ‘운미(芸楣)’는 민비의 친정에 양자로 들어가는 바람에 ‘원하지 않은 권좌에 어쩔 수 없이 앉은’ 척신(戚臣)...
호떡은 1880년대 말 임오군란으로 들어온 청나라 상인들에 의해서 시작됐다거나혹은 1920년대 말 중국인 노동자들이 한국에서 장사하며 시작됐다는 설로 나뉩니다.
중국에는 호떡의 원조격으로 반죽 안에 고기나 해산물, 야채 등을 두툼하게 넣어 지져낸 음식이 다양합니다.
호빵
호빵의 호는 호떡과는 전혀 다릅니다. 1971년 삼립식품에서 출시한 호빵은...
김 본부장은 "해양세력과 대륙세력의 교차로에 위치한 우리 민족은 지도자들의 통찰력과 안목 부족으로 임오군란, 갑신정변, 청일전쟁, 아관파천, 러일전쟁, 가츠라태프트 밀약, 을사늑약, 한일합방의 뼈아픈 경험을 했다"고 이야기했다.
그는 "지정학적 속성은 예나 지금이나 달라진 것이 없다. 이런 환경에서 우리 통상 협상가들은 주인의식을...
건축물이 들어서기 전의 역사로 거슬러 올라가면 4대문 시장 상권이 생성된 곳이자, 임오군란(1882년)과 관련한 터이기도 하다.
해방 후 경성운동장은 서울운동장으로 이름을 바꿨고, 고교야구 등 크고 작은 경기와 행사를 치르며 전성기를 누렸다. 1985년에 동대문운동장으로 다시 한번 개칭이 이뤄진 이 곳은 잠실운동장이 건립되면서 그 기능이 점차...
1892년 임오군란 때 청나라 병력 3000명이 주둔한 데 이어, 러ㆍ일전쟁을 앞둔 1904년 일본은 용산 일대에 수만명의 일본군이 주둔할 수 있는 병참기지를 지었다.
당시 일본은 한일의정서를 내세워 용산지역의 부지 300만평을 헐값에 강제수용했다가 이 가운데 115만평만 군용지로 사용했다. 조선을 집어삼킨 일본은 이후 이곳에 조선주둔일본군사령부와 조선총독부...
임오군란 이후 온건 개화파가 조선 정부를 주도하며 청나라의 양무 운동식 개혁을 추진하고 있는 가운데 청이 조선에 파견한 군대의 절반을 베트남과 프랑스 전쟁으로 보내는 상황이 발생한다.
이에 일본의 도움으로 적극적인 개화 정책을 추진하려 했던 급진 개화파는 일본 공사로부터 정변에 필요한 재정적, 군사적 지원을 약속 받은 뒤 우정국 개국...
임오군란임오군란에 시청자들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임오군란은 1882년(고종 19) 6월 일본식 군제 도입과 민씨정권에 대한 반항으로 일어난 구식군대의 군변이다.
신식군대를 양성하는 별기군이 급료와 보급에서 좋은 대우를 받는 반면 구식군대 무위영·장어영 군졸들은 13달 동안 봉급미를 받지 못해 불만이 고조된 상태였다.
그러던 중 구식군대가...
1882년 임오군란을 계기로 우리나라에 이주하기 시작한 화교들은 다양한 직업에 종사했지만 초창기에 가장 많이 종사했던 업종은 요식업이었다. 자본을 모아 대규모로 고급음식점을 여는 화교들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당시 보편적인 형태는 규모가 작은 호떡집을 여는 것이었다. 화교들의 호떡집은 가격이 저렴하고 한국인들의 입맛에도 맞아 특히 서민들에게 인기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