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대 영의정을 지낸 서애 유성룡이다. 그 또한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명군 장수 이여송에게 곤장을 맞을 뻔한 일이 있다.
유성룡이 후세를 위해 남긴 임진왜란에 대한 입체적 기록이 있다. ‘징비록’이다. 유성룡은 거기서 당시 백성들이 “왜군은 얼레빗, 명군은 참빗”이라 한탄했다고 전한다. 왜군, 명군 둘 다 우리 백성과 국토를 대단히 혹독하게 수탈했다는...
임진왜란이 끝나고 당시 재상을 지냈던 유성룡이 쓴 징비록과 서애집에는 명군을 지원하는 문제, 즉 일종의 방위비 분담 이야기가 나온다. 당시 조정에서 명나라와의 일을 도맡아서 처리했던 유성룡이 명군이 조선으로 들어오기 전부터 명군에게 제공할 군량미를 어떻게 조달할지 고민하는 대목이 곳곳에 나온다. 전쟁 중에 4만 명의 군대를 먹일 식량을 조달하기란 여간...
조선 중기의 두 재상, 오리 이원익과 서애 유성룡은 사뭇 대조되는 인물이었다. 당시 사람들이 말하기를 “이원익은 속일 수는 있지만 차마 속이지 못하겠고, 유성룡은 속이고 싶어도 속일 수가 없다”고 했다. 그만큼 서애는 분명하고 정확해서 빈틈이 없고, 오리는 너그럽고 부드러워 인심을 얻었다는 뜻이다. 서애를 폄하할 생각은 없지만 불가기(不可欺)의 무서움보다...
징비록은 조선 선조 때 영의정을 지낸 서애 유성룡이 집필한 임진왜란 전란사로 1592년(선조 25)부터 1598년까지 7년에 걸친 전란의 원인, 전황 등을 기록하고 있다.
특히 징비록은 전쟁의 경위와 전황만 묘사한 것이 아니라 당시 조선과 일본, 명나라의 외교전은 물론 전란으로 인해 피폐해진 백성들의 생활과 전란 당시 활약한 주요 인물 등에 대해서도 묘사하고...
우리 군은 북한의 미사일을 탐지하기 위해 동해상에 이지스 구축함(7600톤급)인 서애유성룡함에 이어 같은 이지스함인 세종대왕함을 추가 배치했다. 공군은 탄도탄 조기경보레이더인 그린파인 레이더 2대를 가동하고 있다.
이에 앞서 북한 대남기구인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는 9일 성명에서 “남조선에 있는 모든 외국 기관과 기업들, 관광객을 포함한 외국인이...
군은 빠르면 10일 북한이 미사일을 발사할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판단하고 북한의 미사일을 탐지하기 위해 동해상에 이지스 구축함 서애유성룡함에 이어 세종대왕함을 추가로 배치했다.
정부는 또 북한의 중·장거리 미사일 발사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 위반으로 보고 대응책을 마련 중이다. 안보리는 결의 1718호 등을 통해 북한의 탄도미사일 기술의 사용을...
우리 군 당국은 북한의 미사일을 탐지하기 위해 동해상에 이지스 구축함(7천600t급)인 서애유성룡함에 이어 세종대왕함을 추가로 배치했다. 2척의 이지스 구축함에는 탐지거리 1천㎞인 SPY-1 레이더가 장착돼 있다.
공군은 탄도탄 조기경보레이더인 그린파인 레이더 2대를 가동하고 있다. 이 레이더의 탐지거리는 500㎞가 넘는다.
북한이 작년 12월 12일 평안북도...
이지스함은 북한이 미사일을 발사할 경우 궤적을 추적하게 된다.
한미 연합 훈련이 끝나고 복귀했던 서애유성룡함은 최근 동해상으로 이동했고 율곡이이함은 서해상에 배치된 것으로 알려졌다. 군 당국은 북한 미사일을 탐지할 수 있는 육상의 그린파인 레이더(탐지거리 500㎞)와 공중조기경보통제기(피스아이) 등도 가동 중이다.
42포인트(0.17%) 상승한 1968.15을 기록 중이다. 코스피지수는 별다른 동요없이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의 추가 경기부양책 단행 예상과 재정절벽 협상 진전에 대한 기대감으로 오히려 1970선에 바짝 다가서며 상승세를 지속하고 있다.
우리군은 현재 서해와 제주도 남방 해상에 세종대왕함과 서애유성룡함, 율곡이이함 등 이지스함 3척을 배치해 만일에 사태에 대비했다.
서애 유성룡이 군의 총책인 도체찰사에 재직할 당시 각 고을에 공문을 보냈다가 사흘 뒤 고쳐야 할 부분이 있다는 것을 깨닫고 회수할 것을 역리에게 지시하자 공문이 그 즉시 돌아왔다.
유성룡이 공문을 보내지 않았냐고 화를 내며 꾸짖자 역리는 “응당 고칠 줄 알고 가지고 있었습니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정부는 정권이 바뀌기 전에는 포퓰리즘 공약, 잘못된 정치...
조선 선조 때의 충신이자 학자로서의 덕망까지 갖추어 길이 추앙받는 서애 유성룡(1542~1607) 선생이 손수 지은 거처이다.
옥연정사는 집짓기를 시작한지 10년만인 1586년에 완공되었는데, 선생의 종택이 하회마을에 있는 것으로 미루어 이곳은 선생이 독서와 학문, 내방객을 맞이하며 머무르는 공간으로 쓰였음을 알 수 있다. 우리나라 명문가가 지은 가옥들에 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