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앙(商鞅)의 법치(法治), 신불해(申不害)의 술치(術治), 신도(愼到)의 세치(勢治)를 통합한 한비자는 발전적 변화사관을 근거로 그의 법사상을 전개한다.
각각의 시대는 시대적 상황뿐만 아니라 시대적 환경과 시대적 요청 또한 다르다는 점을 이해하고, 상고(上古)시대에는 사람이 적고 재화는 많아서 사람 사이에 다툼이 적었으나 오늘날에는 사람은 많고 재화는 적어...
상앙은 개혁안을 마련했지만 백성이 믿고 따르지 않을 것을 염려했다. 그래서 도성의 남문 앞에 길이 3장의 나무기둥을 세워두고 그것을 북문으로 옮기는 사람에게 10금을 주겠다고 공표했다. 아무도 그것을 옮기지 않자 다시 50금을 주겠다고 약속했다. 한 사람이 그것을 옮기자 바로 50금을 주었다. 원칙이 지켜진다는 믿음이 자리 잡고 10년이 지나자 길에 떨어진 남의...
전국시대 진나라의 재상이었던 상앙(商鞅)이 남긴 고사다. 그는 재상에 오른 뒤 도성 남문에 나무 기둥을 세웠다. 그러고는 “이 나무를 북문으로 옮기는 이에게 금화 50개를 주겠다”고 선포했다. 터무니없이 큰 상금에 다들 믿지 않았지만 한 사람이 나서서 나무를 옮겼다. 상앙은 약속대로 금화를 줬고 그 뒤로 백성들은 그가 만들어내는 법령을 따르기 시작했다. 이게...
그런 가운데서도 명나라의 명신 장거정(張居正·1525-1582)이 주도했던 ‘신정(新政)’의 개혁은 상앙과 진시황 및 수당 시대 이후 근대에 이르기까지 영향력이 가장 크고 가장 성공을 거둔 개혁으로 평가되고 있다. 사실 장거정의 개혁 정책에 힘입어 명나라 왕조는 그 명맥을 조금 더 연장할 수 있었다.
중국 역사에서 가장 무능했던 명나라
조선 왕조가 명나라를...
진(秦)나라 효공(孝公) 때 명재상 상앙(商鞅)이 법률을 제정해 놓고도 즉시 공표하지 않았다. 백성들이 믿어줄지 의문이었기 때문이다. 상앙은 남문에 길이 3장(三丈)에 이르는 나무를 세워 놓고 “이 나무를 북문으로 옮겨 놓는 사람에게는 십금(十金)을 주리라”고 써 붙였다. 아무도 옮기려는 사람이 없자 오십 금(五十金)을 주겠다고 써 붙였더니 이번에는 옮기는...
하지만 진나라의 강대국화 요인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상앙(商鞅)의 개혁을 먼저 말하지 않으면 안 된다.
흔히 상앙은 잔인한 정책을 추진하였고 끝내 자기가 만든 법에 자기가 걸려 자업자득으로 죽은 인물로 묘사된다. 그러나 상앙은 주나라 왕실이 급속하게 쇠퇴해가고 약육강식의 전국시대가 도래한 역사적 흐름을 정확하게 관찰하여 변법을 제기했다. 그리고...
그는 제나라를 떠난 뒤 진(秦)나라로 들어갔는데, 당시 진나라는 상앙(商鞅)의 변법을 시행하고 있었다. 백규는 상앙의 중농억상 정책에 대해 강력히 반대하는 입장이었으므로 진나라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천하를 유력(遊歷)하면서 백규는 점점 정치에 대하여 혐오감이 강해졌고, 마침내 관직을 버리고 상업에 종사하기로 결심하였다.
남들이 보석에 매달릴 때...
중국 진나라 재상 ‘상앙’ 인용)’고 한데 대해 ‘제구포신(除舊布新·옛 것은 덮고 새로운 것을 깔자(베풀자): ‘춘추좌씨전’ 인용)’고 대답했다”며 “한·중 양국이 함께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 나가자고 했다”고 말했다.
이 자리에서 강경화 외교부장관은 “부임하게 될 주재국들도 역량과 경륜을 갖춘 공관장들께서 오는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며 “재외공관은...
그러므로 윗사람의 잘못을 바로잡고 신하의 사악함을 질책하며 어지러움을 다스리고 분규를 해결하며 지나친 것을 제어하고 흐트러진 것을 가지런히 해 백성들의 행동규범을 하나로 통일하는 데는 법만 한 것이 없다.”[刑過不避大臣 賞善不遺匹夫 故 矯上之失 詰下之邪 治亂決繆 絀羨齊非 一民之軌 莫如法]
법가(法家)를 연 상앙(商鞅·?~BC 338)은 진(秦)의 재상으로...
중국 춘추전국시대 변방국이던 진(秦)나라 재상 상앙은 강력하게 추진한 법치주의를 통해 거대 제국으로 성장의 기틀을 마련했지만, 결국 자신이 세운 엄격한 법에 의해 최후를 맞이한다. 그는 수도의 남문에 나무 기둥을 세우고 북문으로 옮기면 금 100냥을 주는 독특한 퍼포먼스로 법치를 위한 ‘신뢰’의 중요성을 설파했다. 하지만 결국 자신이 만든 ‘타지역의...
중국 진(秦)나라 효공 때 명재상 ‘상앙’은 법치국가의 근간을 마련한 인물로 평가받는다. 한 번은 법률을 제정해 놓고 공포를 미루고 있었다. 백성이 믿어줄 지 의문이 들었기 때문이다. 대신 한 가지 계책을 내어 남문에 길이 3장(三丈)에 이르는 나무를 세워놓고 이렇게 써 붙였다. “이 나무를 북문으로 옮겨 놓는 사람에게는 십금(十金)을 주리라.” 그러나 아무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