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10월, 제2의 인생을 위해 서울행을 선택한 그는 한국 프로야구 원년 홈런왕 김봉연(63)이다. 그의 야구 인생은 그렇게 씁쓸한 마침표를 찍었다.
1963년의 어느 날이다. 소년 김봉연(당시 10세)은 두 살 터울 형 김봉구에 의해 야구부 훈련 장면을 지켜보게 됐다. 형 김봉구는 김봉연보다 먼저 야구를 시작했다. 그땐 야구가 무엇인지도 몰랐고, 관심도 없었다....
김봉연 전 해태 타이거즈 선수이자 극동대학교 사회체육학과 교수는 그의 조기 은퇴는 선수 체벌과 무관하지 않다고 귀띔했다. 당시는 체벌을 견디다 못해 은퇴를 결심한 선수들이 많았단다.
이미 오래 전 얘기다. 요즘은 누가 맞아가며 운동하겠냐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운동선수들의 체벌문화는 세월이 흘러도 크게 변하지 않은 듯하다. 잊을 만하면 터져 나오는...
이런 환경에서 운동 못하면 말이 안 되지.”
프로야구 원년 홈런왕 김봉연(63) 극동대학교 사회체육학과 교수의 말이다. 그가 회상하는 프로야구는 해태 타이거즈가 천하를 호령하던 1980년대다. 김성한·김봉연·김준환·김종모로 이어진 ‘KㆍKㆍKㆍK포’를 장전했던 바로 그때다. 거기에 ‘무등산 폭격기’ 선동열이 가세한 해태는 세상천하 무서울 것이 없었다....
김봉연입니다. 시간이 흘렀지만 아직도 1980년대 타석에 섰던 기억이 생생하네요.
저는 1982년부터 2000년까지 해태(현 KIA) 타이거즈 선수와 코치 생활을 했습니다. 이후 2002년부터 극동대 사회체육학과에서 강의와 연구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우연찮게 친구들의 권유로 교편을 잡게 됐는데 그게 지금까지 이어졌습니다.
그라운드를 떠난 뒤에도 운동은 놓지 않았습니다....
경남고는 故 최동원이 경기에 나서진 못했지만 김용희 차동열 윤형배 우경하 김한조 이종운 등이 출전했고 군산상고는 김봉연 김성한 김준환 김일권 조계현 정명원 이광우 김평호 등이 출전했다. 35년 전 결승에서는 최동원을 앞세운 경남고가 5-0의 승리를 거뒀지만 2011년 대결의 승자는 ‘역전의 명수’ 군상상고였다.
1700년대 중후반 아일랜드 출신의 극작가이자...
김봉연 극동대 교수, 박노준 우석대 교수 등 야구인 출신 교수들도 참여했다. 경기도 수원시에 비해 팬들의 호응이 상대적으로 적을 것이라는 우려를 의식한 듯 연고지 내 팬들과 소통할 수 있는 다양한 사업 계획도 밝혔다.
부영그룹 이중근 회장은 “프로야구가 또 하나의 사회공헌활동인 만큼 10구단 창단을 결심했고 눈 앞의 이익보다는 전 국민에게 즐거움을...
특히 선수시절 당시 경쟁자 김봉연(前 해태 타이거즈)과의 치열한 경쟁 끝에 100호 홈런을 먼저 달성한 감격적인 순간을 구수한 경상도 사투리로 묘사해 눈길을 끌었다는 후문.
한편 '최초의 사나이' 이만수의 구수한 입담과 1호 기록에 얽힌 에피소드는 30일 밤 10시 KBS N Sports '한국프로야구 레전드 10人'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