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식 수석대변인도 브리핑에서 “민족정신을 모욕하는 인사를 독립기념관장으로 앉히다니 윤 대통령은 제정신인가”라며 “윤 대통령이 임명을 취소하지 않고 마이웨이를 고집한다면 이번 광복절은 ’친일절‘이자 ’국치일‘로 기록될 것”이라고 비판했다.
한편, 이종찬 광복회장은 15일 열리는 광복절 경축식에 불참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이 회장은 10일...
조 후보는 2017년 8월 25일 페이스북에 올린 ‘광복절과 국치일’이라는 제목의 글에서 “백성들은 진실로 대한제국의 망국을 슬퍼했을까”라며 “망국의 주된 책임자로 이완용 등 친일파를 지목하고 그들에게 화살을 날리며 분풀이하지만 친일파가 없었으면 대한제국이 망하지 않았겠느냐. 그렇지 않다. 조선이 이미 오래 전부터 국가의 기능이 마비된 식물나라였다”고...
정의기억연대, 민족문제연구소, 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 등 611개 단체로 구성된 한일역사정의평화행동은 7일 오후 국회 앞 계단에서 긴급 시국선언을 발표하며 "2023년 3월 6일은 대한민국 헌정사상 최악의 날, 제2의 국치일로 기록될 것"이라고 주장했는데요.
이날 시국선언에는 강제징용 피해자인 양금덕, 김성주 할머니를 비롯해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마냥 국치일(國恥日)에 대한 울분을 삭이고 있을 수만은 없다. 그런데 사실, 요즈음 막무가내로 덤벼드는 일본으로부터 또 상당한 치욕을 당한 면이 없지 않다. 분통이 터지는 일이다. 왜 이런 일이 반복될까? 근본적인 원인은 일본의 후안무치(厚顔無恥)함에 있겠지만, 우리의 힘이 아직 일본을 능가하지 못하는 것도 큰 원인이다. 이제, 일본의 후안무치는 탓할 필요도...
나라가 큰 부끄러움을 당한 날이라는 뜻에서 ‘부끄러울 치(恥)’를 써서 ‘국치일(國恥日)’이라고 한다. 경술년에 당한 일이므로 ‘경술국치(庚戌國恥)’라는 말도 쓴다.
대한제국의 마지막 어전회의는 창덕궁의 흥복헌(興福軒:왕의 침실인 대조전에 붙은 대청건물)에서 1910년 8월 22일 13시에 열렸는데 이 자리에서 한·일 합병을 결정하였고, 그날 16시에...
이날은 한국 경제의 ‘국치일(國恥日)’이다. 아직도 우리 국민들은 당시 임창열 부총리 겸 재정경제원 장관이 서울 세종로 정부종합청사에서 미셸 캉드쉬 국제통화기금(IMF) 총재 옆에 앉아 침통한 표정으로 구제금융안에 서명하는 모습을 또렷이 기억한다.
그로부터 20년이 지난 2017년. 경제위기의 공포는 또다시 엄습해 오고 있다. 지난해 말 불거진 최순실...
우리가 ‘나라가 치욕을 겪은 날’, 국치일(國恥日)로 기억하는 1910년 8월 29일은 대한제국의 마지막 공식 행사인 한일합병조약 선포식이 열린 날이다. 주권이 일본인의 손으로 넘어갔다. 경제권 경찰권 군사권 등을 상실한 조선왕조는 27대 518년 만에 망했다. 1917년 순종은 강압에 못 이겨 일본을 방문해 천황을 알현했다.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기 두 해...
한 시위 참가자는 “오늘은 국경절이 아니라 ‘국치일’”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최루탄이 터졌던 지난 주말과 달리 이날 시위는 비교적 평화롭게 치러졌다. 일부 시위대는 경찰을 자극해 강경진압 사태가 일어나지 않도록 자체적으로 선을 긋는 등 평화시위를 유도했다.
이날 시위에 참가한 17세의 학생 지도자인 조슈아 웡은 “정치적 압력이 커지고 사회적인...
중국의 국치일이라는 만주사변 발발 81주년에 즈음해서 영토분쟁의 수위를 높이다니.
그렇지 않아도 반일 불씨가 살아나는 중국에 ‘땅싸움’으로 기름을 부은 셈이다.
일본은 10년은커녕 단 몇주도 내다보지 못한 외교정책을 편 것이다.
더군다나 독도를 비롯해 댜오위다오(일본명 센카쿠)에 대한 영유권 주장 논리는 앞뒤가 맞지 않을 뿐더러 편협하기 이를데 없다....
특히 이날은 국치일인 만주사변일을 맞아 오전 9시18분께 전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시위가 발생했다고 통신은 전했다.
시위대는 “만주사변을 기억하자”“댜오위다오는 중국땅”“일본은 댜오위다오 국유화 방침을 철회하라”“일제상품 불매” 등의 플래카드와 오성홍기, 마오쩌둥 초상화 등을 들고 거리를 행진했다.
베이징의 알본 대사관 앞에는 5000여 명의...
담화 발표 시기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도 나왔다.
박한용 민족문제연구소 연구실장은 "사죄 담화문은 15일이나 병합조약 체결일인 22일 등 역사적인 날 발표하는 것이 원칙"이라며 "그에 앞서 담화문 내놓은 것은 종전기념일인 15일을 한국을 배제한 자신들만의 행사로 만들고 국치일은 아예 무시하겠다는 의도로 보인다"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