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이유로 일제강점기에는 풍기지역이 ‘정감록’에 나오는 수선지로 알려져 전국 8도의 이주민이 모여들었는데, 1913년 채기중을 중심으로 전국에서 몰려든 인사들이 결성한 것이 바로 대한광복회의 전신 풍기광복단이다. 대한독립과 독립을 위해 죽음으로써 결의하였던 민족열사들의 고향이 바로 풍기인 것이다.
약 80여 개의 인삼가게가 밀집해 있는 풍기역 앞...
동시에 간도애국부인회 회장, 철혈광복단 여자단원 등으로, 1919년에는 블라디보스토크 등 연해주에 이르는 독립운동 단체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 1920년에도 북간도부인독립단을 조직하여 이의순, 채계복 등과 같이 청소년과 여성 교육에 힘쓰며, 간호부 양성 속성과를 설립하기도 하였다. 교사 시절 5년간이나 편지로 사귄 남편 기태진(奇泰鎭)과 함께 활동하던...
한훈은 8년 복역 후 만신창이가 된 몸으로 출옥했다가 1929년 다시 감옥소로 끌려가 10년 추가 징역과 5년 추가 인정재판으로 23년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그는 1941년 거의 시체가 돼 세상에 나왔다. 광복 후 광복단을 재건하고 자주적 독립국가 건설을 주장하며 신탁통치 반대운동을 벌였던 한훈은 한국전쟁 중 북한군에 납치돼 피살된 것으로 전해진다.
광복단을 결성하고 일제 독립운동 탄압의 본거지 서울 종로경찰서를 폭파한 김상옥 의사와 관련된 인물들에 대한 형사재판 변론은 유명하다.
가인 선생은 공판에서 “조선 독립을 희망하는 사상은 조선인 전체가 가진 것”이라며 “그런데 이것을 정치 변혁을 도모했다고 하여 처벌한다면 양민을 억지로 법의 그물에다가 잡아넣는 것”이라고 일갈했다.
또한 그는 광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