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서 재판부는 지난달 30일 이 전 대통령을 증인으로 소환했으나, 이 전 대통령이 불출석 사유서를 제출하면서 증언이 무산된 바 있다.
한편, 전직 대통령이 다른 사람의 형사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하는 것은 이번이 두 번째다. 고(故) 최규하 전 대통령이 1996년 11월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의 항소심에 증인으로 출석한 것이 첫 사례다.
1980년 전두환 정권 시절 외무부 장관에 발탁됐고 국가안전기획부장, 국무총리 등을 지냈다.
1987년 박종철 군 고문치사 사건이 발생하자 “정치적, 도의적 책임을 지겠다”며 32년간의 공직생활을 마감하는 결단력을 보였다. 이후 당시 여당이었던 민정당 고문을 지냈고 1994년~2012년까지 롯데복지재단 이사장을 역임했다.
노신영 전 총리는 2년 3개월간...
문 대통령은 부마민주항쟁 관련 군 수사 자료에 대한 설명도 들었다.
자료에는 1979년 10월 18일 낮 12시 20분경 전두환 당시 보안사령관이 부산에 내려와 진압작전 회의에 참석해 ‘초기 진압작전이 중요하며 군이 개입한 이상 강력한 수단으로 데모 확산을 방지해야 한다’고 강조한 내용이 있다고 청와대는 전했다.
8시 30분께 무대에 오른 김포에서 온 한 시민은 “박정희와 전두환이 망가뜨린 민주주의를 되찾기 위해 선배들이 거리로 나왔던 것처럼 우리는 박근혜를 탄핵하고 벌벌 떨게 했다”며 “그러나 지금 적폐들이 대통령 발목을 잡고 흔들고 있는데 우리는 그때에서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해 우리가 거리로 나온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어 전북에서 온 고등학생 김모 군은...
아울러 조진태 상임이사는 "노태우 전 대통령이 5·18 당시 저지른 일에 대한 다양한 기록물 혹은 연관된 자료가 있을 것"이라며 "이런 역사적 사건과 연관된 부분에서는 한점도 숨김없이 노태우 전 대통령 본인의 행적은 물론, 같이 주도해서 만행을 저지른 전두환 전 대통령 일당에 대한 그런 다양한 행적에 대해서도 국민에게 공개해서 5·18...
이로써 재헌 씨는 5·18 피고인으로 처벌받은 전두환, 노태우 전 대통령의 직계가족 중 처음으로 사죄를 한 셈이 됐다.
재헌 씨와 동행한 한 인사에 따르면 노태우 전 대통령이 평소 5·18민주묘지에 방문해 사죄할 것을 여러차례 얘기했으나 병세의 악화로 아들이 대신 온 것으로 확인됐다.
이와 관련해 지난 2011년 노태우 전 대통령이 발간한 회고록에는...
5·18의 가해자인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의 직계가족 중 광주를 찾아 희생자들에게 사죄한 사람은 노 씨가 처음이다.
노 씨는 관리소 관계자들의 안내를 받아 묘지 곳곳을 둘러봤다. 윤상원·박관현 열사의 묘지와 당시 11세의 나이로 희생된 고 전재수 유공자 묘지를 차례로 찾아 헌화, 분향했다. 노 씨는 행방불명자 묘역과 추모관, 유영봉안소, 인근...
쉽지 않았을 그의 결정을 두고 전두환 전 대통령 가족들과 비교하는 반응도 나오고 있다.
26일 국립 5.18 민주묘지 관리소는 "노태우 전 대통령의 아들이 3일 전 묘지를 방문했다"라고 밝혔다. 노태우 전 대통령의 장남 노재헌 씨는 미국변호사로 지난 1991년 국회의장실 국제담당비서관을 지내기도 했다.
노재헌 씨의 묘지 방문 소식이 전해지면서 전두환 전...
이 같은 논란과 관련해 안유 본인은 한 매체와의 인터뷰를 통해 "나는 의인이 아니다"라고 인정했다. 이어 그는 "당시 대학생들은 나를 전두환의 사냥개라고 불렀다"라며 "학생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든다"라고 밝혔다.
한편 영화 '1987'은 국내에서 총 723만 2387명이 극장을 방문해 관람했다.
일제가 남기고 간 ‘식민의 역사’를 청산하지 못하여 고질(痼疾)이 되었고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로 이어진 군사정권의 독재와 거짓을 털어내지 못하여 적폐로 남게 된 것도 많다.
최근 자행되고 있는 일본의 경제보복은 1965년 6월 22일 박정희 정권이 일본과의 국교정상화를 위해 한·일 기본조약을 맺으면서 분명히 해결했어야 할 문제를 해결하기는커녕 오히려...
무엇보다 유명한 얘기는 전두환 전 대통령의 대격노 설이다. 당시 밥솥을 굴려 가며 가져올 만큼, 주부들의 일제 밥솥을 선호한다는 이야기가 대통령의 귀에까지 들어갔단다. 대통령은 곧 실무진을 불러놓고 “야이 밥통 하나도 제대로 못 만드는 밥통들아! 6개월 줄 테니까 우리도 이거 만들어!”라고 했다는 이야기다.
가뜩이나 권위주의적이고 경직적인 공직사회....
박정희 독재정권이 무너진 후, 1979년 12월 12일에 정변을 일으켜 정권을 잡은 전두환 신군부세력의 장기집권을 저지하기 위해 일어난 범국민적 민주화운동을 기념하는 날이다. 1987년 1월, 당시 서울대학교 박종철 학생이 조사를 받다가 경찰의 고문으로 사망한 사건이 발생하였는데 그해 5월,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에 의해 이 사건이 은폐·축소된 것이...
1980년 5월 18일을 전후하여 광주(光州)와 전라남도 일원에서 전두환·노태우가 중심이 된 신군부의 집권 음모를 규탄하고 민주주의의 실현을 요구하며 전개한 민중항쟁을 기념하는 날인 ‘5·18민주화운동기념일’이 올해로 39회를 맞았다. 1981년 5월 18일, 피해자들과 시민, 학생 등이 광주의 망월동에 조성된 희생자 묘역에서 추모행사를 가진 후로 범국민적인 추모의...
리얼미터는 "주중집계가 시작된 13일 나경원 한국당 원내대표의 문재인 대통령 지지자 혐오표현 논란 확대, 황교안 한국당 대표의 장외투쟁 지속 등이 있었다"며 "14일 황교안 대표의 '5·18 기념식' 참석 및 부처님오신날 봉축식 예법 논란, 전두환 '5·18광주 사살명령 의혹' 보도 확대, 지역별 버스 파업 철회·유예 등 소식이 있었다"고...
심 의원은 최근 유시민 이사장과 1980년 당시 전두환의 신군부 세력에 저항하며 학생운동을 하던 시절 합동수사본부에서 작성한 진술서를 놓고 진위를 다투고 있다.
서울대 81학번인 윤 의원은 이날 자신의 페이스북에서 1980년 서울대 총학생회장이었던 심 의원을 'S형'이라고 칭하며 말문을 열었다. 그는 “오늘 내가 하고자하는 이야기는 형 스스로 깨달을 때까지...
전두환 시절에 황토재 일대를 성역화하면서 함께 지어진 기념관을 문화유산으로 남겨둔 대신 새롭게 기념관을 세웠기 때문이다. 조병갑의 학정과 수탈에 불만이 팽배해 있던 농민 500여 명이 1894년 1월 10일 봉기했던 말목장터의 감나무는 2003년 태풍에 쓰러져 기념관으로 옮겨졌다.
정읍은 선비문화유적도 곳곳에 간직하고 있었다. 사학기관 '무성서원', 호남제일정...
전두환 정권이 1987년 11월 29일 발생한 대한항공(KAL) 858기 폭파사건을 그해 대통령선거에 정략적으로 활용하려고 했다는 정황이 담긴 외교문서가 공개됐다. 또 1988년 서울올림픽 북한과 분리개최 추진 비화, 중국 88서울올림픽 선수단 열차로 서울 보내려다 북한 반발로 무산됐다는 증언도 나왔다.
외교부는 31일 이 같은 내용을 담긴 30년 경과 1987∼88년 외교문서...
무임손실도 따라서 늘고 있다.'
무임승차 대부분이 노인 인구 증가인 것으로 나타났다. 2017년 기준 서울시의 65세 이상 노인 인구는 전년보다 4.9% 늘어난 136만5000명이었다. 노인 인구 비중은 2010년 9.5%에서 2017년 13.5%로 늘었다.
무임승차는 1984년 5월 당시 전두환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65세 이상 노인을 시작으로 장애인, 유공자로 확대됐다.
5.18은 몇몇 의원들의 '망언'논란으로 정치권 내에서 혼란이 이어졌고, 최근 전두환 전 대통령을 광주법원으로 발걸음 하게 한 사안이었기에 시청자들의 이목은 설민석을 향했다.
설민석은 '임을 위한 행진곡'이 이미 고인이 된 이들을 위해 만들어진 곡일 뿐 어떤 목적이나 집단 혹은 권력을 위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고 말했다. 이와 더불어 설민석은 여전히 뜨거운...
전두환(88) 전 대통령 측이 미납된 추징금을 환수하기 위해 제3자 명의의 서울 연희동 사저를 추징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주장했다.
서울고법 형사1부(재판장 정준영 부장판사)는 13일 전 씨의 부인 이순자(80) 씨가 낸 재판 집행에 관한 이의 신청 사건의 심문 기일을 열었다. 법정에는 이 씨와 전 씨 대신 변호인이 자리했다.
이날 변호인은 “공무원몰수추징법을 보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