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날 방송된 ‘화정’에서는 유일한 적통 왕자인 영창대군(전진서)에게 불안감을 드러내는 광해군(차승원)의 모습이 그려졌다. 성곽 위에 올라 궐밖을 구경하던 영창대군은 발을 헛디뎌 추락할 뻔했다. 이때 광해군이 영창대군의 팔을 잡아 끌었지만 영창대군은 그의 손을 뿌리쳤다. 광해군은 영창대군의 얼굴을 어루만지려 했지만 영창대군은 공포에 떨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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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일 방송된 MBC '화정'에서는 정명공주는 정월대보름을 맞아 영창대군과 함께 몰래 저자로 나섰다. 하지만 이 사실을 몰랐던 대신들은 광해군(차승원)이 임해군에 이어 정명공주와 영창대군까지 해친 것으로 오해했다. 이후 궐 밖을 나갔던 정명공주가 돌아오고 오해를 벗은 광해군은 정명공주의 처소를...
20일 MBC 54주년 월화특별기획 '화정' 측은 차승원의 흔들리는 눈빛과 행복한 한때를 보내는 정명공주와 영창대군의 대비되는 스틸을 공개했다.
공개된 사진에서 광해는 왕위에 올랐지만 여전히 강대한 서인(영창대군 세력)의 세력에 좌절하는 모습을 보인다. 상심 가득한 표정과 차가워진 눈빛은 혼돈 빠진 광해의 마음을 대변한다.
반면 정명공주(정찬비)와 영창대군...
이날 방송에서 임해군(최종환)은 선조의 장례 이후 인목대비의 아들 영창대군(전진서)의 숙소에 자객을 보냈다. 이에 광해군은 임해군에게 화를 내며 "자중하라. 아직 옥쇄가 중전에게 있다"고 말했다.
광해군은 이후 덕형(이성민)에게 "나는 16년 동안 참아왔다. 내가 왕이 되고 나면 피를 보지 않게 하는 왕이 되겠다. 용상을 넘보지 않는 한 피를 보게...
광해군은 선조의 죽음에 얽힌 비밀을 알았지만 왕위에 대한 욕망에 휩싸여 이를 묵인했다.
광해군은 선조 사망 이후 형 임해군(최종환)이 영창대군을 죽이려한 사실이 드러나자 "아무 것도 하지 말라고 하지 않았느냐"고 화를 냈고, 임해군은 "그저 저하를 위해서 그런 것"이라고 반발했다.
광해군이 국모 인목대비를 유폐하고, 어린 동생 영창대군을 살해했다는 '폐모살제(廢母殺弟)' 역시 묘호를 얻지 못하거나 인조반정을 야기한 원인이었다.
드라마 '화정'에서 이연희가 맡은 인물이 바로 유폐된 인목대비의 딸 정명공주다. 광해군이 즉위 후 영창대군을 역모 연루죄로 사사하고 인목대비를 서궁으로 폐출시킬 당시 정명공주 역시 함께 감금됐다.
조선...
인목왕후를 유폐시키고 영창대군을 살해했다는 이유로 패륜적인 인물로 일컬어지기도 했으나 최근들어 본격적으로 재조명되고 있다.
13일 첫 방송된 MBC 새 월화드라마 ‘화정’에서는 광해군(차승원)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조선시대 정치판 이야기가 그려졌다. 이날 방송 말미에는 광해군이 부친 선조(박영규)가 독살당하는 장면을 목격하는 모습이 그려졌다.
선조는...
선조는 둘째 아들이자 후궁의 소생인 광해군을 폐위하고 적자인 영창대군(전진서)을 세자로 책봉하겠다는 뜻을 드러냈다. 이에 광해군의 수하들은 반역을 제안했지만 광해군은 거절하고 선조에게 무릎을 꿇었다.
그러나 선조는 이를 무시했고, 결국 신하들에 의해 독이 든 탕약을 마시게 됐다. 고통에 몸부림치는 선조를 보며 광해군은 “제가 전하와 다른게...
이어 그는 왕손들에게 줄지어 하례를 받고 있는 영창대군(전진서 분)과 정명공주(허정은 분)를 바라보며 "여기 모인 스물다섯의 군과 옹주 모두가 전하의 자식이래도 우린 저 둘과는 급이 다르지요. 적통이 아닌 곁가지들. 형님의 아우인 세자저하도 마찬가지고요"라는 말로 임해군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들었다.
또한 정원군은 양 손을 모아 머리를 조아리는...
한편 광해군을 버리고 영창대군을 세우겠다는 뜻의 시제에 중신들은 경악했고, 광해군 지지세력 대북파는 동요했다. 이를 알게된 선조는 격노했고, 선조를 타이르기 위해 광해는 직접 무릎을 꿇기도 했다. 그러나 선조가 직접 나서 세자를 바꾸려는 움직임을 보이자 상궁 김개시(김여진)은 선조의 약에 독을 타 그를 독살하기에 이르렀다.
마침내 광해는 독이 퍼져 죽고...
정명공주는 1603년 조선 선조 첫째 공주이자 영창대군의 누나로 태어난 인물. 광해군이 즉위 후 영창대군을 역모죄로 사사하고 정명공주의 어머니인 인목대비를 서궁으로 폐출시킬 때 함께 감금됐다.
이후 정명공주는 인조반정 후 공주로 복권, 중추부동지사 아들 주원에게 시집을 갔다. 인목대비가 사망한 후 정명공주는 궁중에서 무도한 백서가 나와 한때 의심을...
세자가 되고도 끊임없이 지위가 흔들렸던 광해군이 정명공주와 정명공주의 동복동생 영창대군을 끊임없이 핍박했기 때문이다.
광해군이 즉위한 뒤에는 정명공주의 외할아버지 김제남과 동생 영창대군이 계축옥사에 연루되어 사사되고 정명공주와 인목대비는 같이 서궁에 유폐되고 이후 폐서인이 되어 공주의 신분마저 잃게 된다.
이후 인조반정이 일어나면서...
1603년 조선 선조 첫째 공주이자 영창대군의 누나로 태어나 1685년 숙종 11년에 83세를 일기로 생을 마감했다. 정명공주는 아버지 선조를 비롯해 광해군, 인조, 숙종까지 4명의 왕을 거쳤다.
긴 세월만큼 정명공주는 조선 중기의 모진 풍파를 다 겪었다. 임진왜란 직후 태어나 병자호란, 인조반정 등 굵직한 사건을 겪으며 권력 암투의 회오리에 휘말렸다.
특히...
계축옥사는 소북세력이 영창대군(선조의 13남)을 옹립하려 한다고 대북 일파가 무고해 벌어진 정변(政變)이었다. 감지와의 ‘감지’는 물이 구덩이를 만나 멈춘 곳이다. ‘와’는 움집, 굴이라는 뜻이니 볼품없는 집을 말한다.
처음부터 구덩이에 빠지지 말아야 했지만 이미 빠졌으니 발버둥치고 허우적거려 봐야 소용없다. 그는 집을 짓고 감지와명(坎止窩銘)도 썼다....
서인이 주도한 인조반정으로 1623년 폐위, 복귀를 위해 형과 동생인 임해군과 영창대군을 제거하고 어머니인 인목대비를 유폐시켰다. 광해군 시절의 궁중비사를 기록한 '계축일기'는 광해군에 의해 아들 영창 대군을 잃은 인목대비의 궁녀가 쓴 책이다. 여기서 광해군은 부도덕하고 패륜적인 인물로 묘사됐다.
소식을 들은 네티즌은 "왕의 얼굴 광해군, 솔직히...
‘조선조 광해군 때 왕으로 등극하려는 광해군과 이를 말리려는 나이 어린 영창대군의 모친 인목대비의 비화다. 둘은 심한 알력으로 영창대군은 광해군이 보낸 밀사로 인해 죽는다. 인목대비는 제주도로 귀양을 갔고. 제주도에 귀양 간 인목대비는 갖은 고초를 겪었을 것은 뻔한 일. 문제는 끼니였다. 초근목피로 겨우 연명해 나갔다. 그러던 어느 날 인목대비는 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