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12일)로 12.12 사태가 일어난 지 38년이다. 12.12 사태는 전두환 당시 보안사령관을 중심으로 신군부가 하극상에 의한 군사 쿠데타를 일으켜 군권을 장악한 사건이다. 위 사진들은 1979년 12월 12일 중앙청(서울 세종로 정부청사 건물) 몰려든 군인들 모습.
(7차) △신군부 집권에 따른 전두환 정권으로의 전환(8차) △대통령 직선제(9차) 등이다.
◇시대적 요구에 따른 대한민국 10차 개헌 시도 = 지금의 대통령 직선제는 민주화 시대를 열었던 1987년 6월 항쟁의 6·29선언으로 인해 나온 제도다. 현행 헌법은 대통령을 직선제로 선출하고 임기를 5년 단임으로 한다. 헌법은 전문(前文)을 비롯해 총강(總綱), 국민의 권리와 의무...
경찰청에 따르면 안 경무관은 전남도경찰국장(현 전남지방경찰청장)으로 재직하던 1980년 5·18 당시 시위대에 발포하라는 전두환 신군부 명령을 거부했다.
뿐만 아니라 경찰이 소지한 무기를 회수하는 한편 시위대에 부상자 치료와 음식 등 편의를 제공했다.
그는 해당 건으로 인해 직위해제된 후 보안사령부에 끌려가 혹독한 고문을 받았고, 후유증에...
그는 “5·18 민주화 운동은 앞서 이어져온 민주화 운동의 연장선상에서 자연적으로 발생한 것”이라며 “12·12 사태로 집권한 신군부가 ‘서울의 봄’의 민주화 열기를 폭압적으로 억누른 데 따른 저항이 바로 광주 민주화 운동이었다”라고 밝혔다.
한편, 박형준 교수는 전두환 전 대통령 측의 '택시운전사' 날조 주장에 대해 "국민이 지금 원하는 것은...
이번 사진전은 광주시와 광주전남기자협회 주최되며, 5·18 광주의 진실을 세계에 알린 힌츠페터 기자의 활동을 소개하고, 군부 폭압에 맞서 싸운 언론인들의 위업을 기리기 위해 마련됐다.
힌츠페터 기자는 독일 제1공영방송 일본 특파원으로 1980년 5월20일 신군부의 허락없이 광주에 들어와 당시의 실상을 영상으로 담아 전세계에 알렸다.
이번 사진전에서는...
게다가 1980년 집권한 신군부는 당시 ‘불법과외’를 망국병(亡國病)이라고 규정하고 과외교습을 일절 금지하는 서슬퍼런 조치를 내린다. 그 결과는 어떻게 되었는가? 과외 금지 조치는 그 뒤 유명무실해졌을 뿐 아니라 오히려 명문 과외학원에 대한 수요를 폭발시켜 사람들은 대치동 소재 학원에 자녀를 보내기 위해 위장전입까지 서슴지 않게 되고, 대입 학원이...
'5·18민주화운동'은 계엄령 철폐와 전두환 보안사령관을 비롯한 신군부 인사들의 퇴진 등을 요구하며 전개한 민주화 운동으로, 1980년 5월 18일부터 27일까지 광주시민과 전남 도민이 중심이 돼 펼쳐졌다.
정부는 5월 18일 공수부대원을 보내 시내에서 무차별 시위진압작전을 펼쳤으며, 군인들이 학생으로 보이는 청년이나 여성들을 마구 구타하고 짓밟으며 찌르는 등...
‘그것이 알고 싶다’ 제작진에 따르면 전두환은 신군부의 핵심인물인물이다. 그는 12.12 군사반란을 주도하며 시민들의 민주화 요구를 탄압했다. 이후 권좌에 오른 뒤 7년의 재임기간 동안 반대자들을억압했다. 그는 결국 법적 처벌을 피할 수는 없었다.
전두환은 1996년 1심에서 사형을 선고받았다. 군사 반란과 5.18 광주민주화운동 유혈 진압, 그리고 권력형 비리에...
이어 “해방 후에는 이승만의 친일매국세력이 그러했고 419후에는 박정희 군사정권이, 518후에는 전두환의 신군부가, 87년 민중항쟁 후에는 노태우가 그랬다”며 “희생과 혁명이 있었지만 해방후 70여년의 역사는 권력자의 교체에 그쳤을 뿐 우리의 삶은 변하지 않았고 혁명은 미완이었다”고 말했다.
이 시장은 또 “한 달에 200만원을 못 버는 노동자가 900만 명이나...
제작진을 만난 유족들과 최종대씨는 신군부가 '미인도'를 천경자 화백의 작품이라고 단정한 이유가 김재규 전 중정부장을 부정축재자로 몰아야 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김재규 전 중정부장과 연관 된 '미인도'는 최근 국내외에서 진위 여부를 가리기 위해 과학 감정을 진행했다.
그러나 국내 검찰과 국과수는 '진작'으로, 프랑스 감정기관 뤼미에르 테크놀로지는...
“1979년 10월 26일을 계기로 유신독재가 끝나고 억눌렸던 국민들은 민주화의 ‘봄’이 올 것을 열망하였으나, 신군부 세력은 12·12 쿠데타를 통해 권력을 장악한다.”
그러나 조만간 개봉할 ‘택시운전사’는 조금 더 세련된 화법으로, 그러나 보다 더 감동적으로 우리의 마음을 파고들 것 같다. 만섭(송강호)은 서울에서 택시를 모는 운전사다. 하필 1980년 5월 어느 날...
4·19혁명의 위대한 빛 뒤에 군사독재의 어둠이 바로 따라왔고, 1980년 ‘서울의 봄’이 잠시 뿌렸던 빛을 신군부의 더 큰 어둠이 바로 삼켜버렸고, 1987년 6월항쟁의 빛 뒤로 다시 허망한 군사독재 연장이라는 어둠이 이어졌으니, 이번 광화문 광장의 빛 뒤로 다시 또 어떤 어둠이 따라올지 모른다.
만약 이번에도 어둠이 옷만 갈아입고 다시 권력을 쥔다면, 한국...
그러면서 “오늘은 12·12 군사 반란의 날”이라며 “37년 전 오늘 전두환 노태우 신군부 세력 정권 찬탈 12·12 구테타, 10·26 이후 유신독재 종말과 민주정부 수립, 국민 염원을 무시한 반동의 역사였다”고 설명했다.
이어 “우리는 37년 전 오늘을 교훈삼아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역사의 명령을 분명히 완수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과 관련해서는...
일제 시대에서부터 이승만, 박정희 정권을 거쳐 신군부에 이르기까지 그는 관료로서 소신을 저버리는 일을 결코 하지 않았다.
그는 1942년 22세 때 고등문관시험에 합격, 한국인 최초로 일본 정부 통상산업성으로 발령을 받는다. 그곳에서 그는 시골선비라는 별명을 얻는다. 옳다고 믿는 일은 눈치 보지 않고 주장한다고 해서 붙여진 것이었다.
해방 후 이승만...
고인은 1989년 열린 5·18 진상규명 국회 청문회에서 "신부인 나조차도 손에 총이 있으면 쏘고 싶었다"며 신군부의 잔학한 학살행위를 생생하게 증언했다.
2006년 8월 31일 38년간의 사목 생활을 퇴직하고 나서 소화자매원 이사장을 맡아 여생을 봉사활동으로 보냈다. 교구청에서 제공하는 사제관을 거부하고 소화자매원 인근 아파트에서 홀로 살며 청빈의...
1980년대 신군부 일원이었던 박준병 전 민주정의당 사무총장이 3일 오전 숙환으로 세상을 떠났다. 향년 83세.
충북 옥천 출신인 박 전 사무총장은 육군사관학교 12기로 제20사단장과 보안사령관 등을 지냈다. 육군 대장으로 예편한 이듬해인 1985년 제12대 총선(충북 보은ㆍ옥천ㆍ영동)에서 민정당 의원으로 당선돼 14대까지 내리 3선을 했다. 특히 민정당과...
김 대표는 1979년 12·12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신군부가 만든 초헌법적 반민주기관인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국보위)에 재무 분과위원으로 참여했다. 당시 국보위는 신군부 반대세력들을 처단하는 일들을 추진했다. 정치활동 규제, 삼청교육대 발족 등이 대표적이다.
그는 유신정권에서 경제개발계획을 수립하는데 큰 역할을 했다. 재벌개혁론자로서 1987년 헌법 개정...
국회 부의장을 거쳐 1976년엔 신민당 대표 최고위원을 지냈고 1980년 신군부 집권 이후 정치쇄신법에 의해 정치규제를 당하기도 했다.
1985년 12대 총선 때 신민당을 창당하고 전주·완산에서 당선돼 7선 의원이 됐다. 건국50주년기념사업회 회장(1998년), 대한민국 헌정회 회장(2007~2009년) 등을 지냈다.
유족으로는 부인 김창희 여사와 아들 이동우 전 호남대...
1980년 신군부의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국보위) 참여 전력에 대해 “광주 분들께 굉장히 죄송하다”며 27일 공개 사과했습니다. 김 위원장은 “국보위가 성립된 과정에서 나타난 제반 상황에 대해서는 저 자신도 철저하게 그런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이라고 말했습니다. 이어 “제가 국보위에 참여했던 전력이 광주 여러분들에게 참 정서적인 문제를 야기...
전두환 군사정권 아래에서도 신군부에 납치돼 고문을 당해 그 후유증으로 파킨슨병을 앓게 된다. 그는 김 전 대통령 장례 때 파킨슨병 투병중에도 안장된 관 위에 삽으로 흙을 덮는 허토 의식까지 참여해 많은 사람들로 뭉클하게 했다.
삼남 김홍걸은 고려대학교 입학 당시 정부가 고려대 학장에게 김홍걸씨의 입학을 취소하라는 압박을 내린 것은 나중에 이희호 여자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