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사 출신인 강 의장은 1980년 신군부 집권 후 중령으로 예편, 민정당 조직국장으로 정치권에 발을 들였다. 이후 그는 11∼12대, 14∼16대에 국회의원을 지내다가 4·11 총선에서 대전 중구에 출마, 6선에 성공했다. 국민의 정부 초대 과학기술부 장관도 지냈다.
강 의장은 현재 새누리당 박근혜 전 비상대책위원장의 원로 자문단으로 불리는 ‘7인회’에 참여하는...
또 계엄법 위반 혐의에 대해 “광주민주화운동 전후 신군부가 행한 일련의 행위는 내란죄로 헌정질서 파괴 범죄에 해당한다.”면서 “이를 저지·반대한 것은 헌정질서 수호를 위한 정당한 행위로 범죄가 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이 전 장관 등은 지난ㄴ 1981년 전국민주학생연맹과 전국민주노동자연맹을 결성해 활동하다 국가보안법 위반 등의 혐의로 기소돼...
그는 신군부에 의해 권력형 부정축재자로 몰려 정계에서 물러났다.
중앙정보부의 마지막 수장인 김재규 8대 부장은 1979년 박 전 대통령을 암살한 뒤 이듬해 사형을 당했다.
1981년 신군부의 출현으로 안기부라는 새 이름을 단 이후에는 전두환 10대 부장, 유학성 11대 부장, 장세동 13대 부장, 안무혁 14대 부장 등 12·12쿠데타의 주역인 하나회 소속 장성들이 부장을...
장 전 사령관은 육군종합학교를 졸업했으며, 육군본부 군사연구실장, 교육참모부 차장 등을 거쳐 수도경비사령관에 올랐으나 1979년 12·12 사태 당시 수도경비사령관으로 신군부측에 반기를 들다 강제 예편됐다.
이후 1987년 민주화 투쟁 이후 12·12 사태가 재조명받고 전두환, 노태우 전 대통령 등 신군부 세력이 단죄받으면서 참군인의 표상으로 주목받았다....
중학교에 못갈 정도로 가난했던 ‘도시 빈민 박흥숙’은 이소룡 같은 액션배우를 꿈꿨다. 무등산에서 무술을 연마해 '무등산 타잔'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그는 강제 철거에 항거하는 과정에서 생긴 우발적 살인으로 ‘희대의 살인마’로 만들어졌고 수감 중 1980년 12월 신군부 정권 하에서 갑작스레 사형 당했다.
고인은 전 전 대통령 등 신군부가 만든 국가보위입법회의에서 경제부문 제1위원장을 맡아 전 전 대통령과 인연을 맺었다. 1981년에는 전 전 대통령이 총재를 지낸 민주정의당의 전국구 후보로 11대 총선에 출마해 국회의원에 당선됐다.
전 전 대통령은 고인과 한때 사돈 관계를 유지했다. 고인의 막내딸인 경아 씨는 1987년 전 전 대통령의 차남 재용씨와 결혼했으나...
박 명예회장이 정계에 본격 입문한 계기는 1980년 신군부가 주도한 국보위 입법회의에 경제분과위원장으로서 참여한 데 이어 1981년 11대 전국구 의원(민정당)으로 당선되면서부터다. 이어 13∼15대 국회의원을 거치면서 옛 민주정의당 당대표위원, 옛 민자당 최고위원, 자민련 총재에 이어 제32대 국무총리 등을 거쳤다.
포항제철 회장을 유지하면서 박...
박 명예회장이 정계에 본격 입문한 계기는 1980년 신군부가 주도한 국보위 입법회의에 경제분과위원장으로서 참여한 데 이어 1981년 11대 전국구 의원(민정당)으로당선되면서부터다.
포항제철 회장을 유지하면서 박 명예회장은 11, 13, 14대 등 3선 경력을 쌓았고, 1990년 1월 노태우 전 대통령에 의해 집권당인 민정당 대표에 오르며 정치 전면에섰다.
박 명예회장은...
지난 1979년 12월12일 전두환·노태우 등의 신군부세력이 일으킨 군사반란사건이 일어난 날이라는데 네티즌들이 분노하고 있다.
당시 보안사령관 겸 합동수사본부장을 맡고 있던 전두환은 박정희 대통령이 살해된 10·26사건을 수사하면서 군부 권력을 장악하기 위해 정승화 육군참모총장을 강제연행했다.
이는 최규하 대통령의 재가없이 벌어졌으며 사후에...
신군부 시절 언론통폐합 때 KBS로 자리를 옮긴 이후 1991년 SBS 개국 멤버로 합류, 정치부장ㆍ위싱턴지국장ㆍ회장특별보좌역ㆍLA 지사장 등을 역임했다.
2007년 3월부터 2년간 SBS 대표이사 사장을 맡아 경영능력을 발휘했고 2009년 12월 SBS그룹의 지주회사인 SBS미디어홀딩스 대표이사로 자리를 옮겼다. 이후 SBS 이사회 의장으을 거쳐 이달초 SBS 상임고문을...
2 지방선거의 패배 원인으로 이 같은 논란을 지목하기도 했다.
올해로 31돌을 맞는 5.18 민주화운동은 1980년 5월18일부터 27일까지 10일간 광주시민과 학생들이 계엄령 철폐와 신군부 퇴진 등을 요구하며 계엄군의 무력진압에 항거한 반독재민주화 투쟁이다. 1997년 5월 ‘각종 기념일 등에 관한 규정’(대통령령 제15369호)이 개정되면서 법정기념일로 지정됐다.
10.27 법난은 1980년 10월27일 신군부가 불교계 정화를 내걸고 전국 5천731개 사찰 및 암자를 수색하고 스님 및 사찰 관련 종사자 1천929명을 연행해 고문한 사건이다.
불교는 당시 사건으로 스님들이 인권침해와 가혹행위를 겪었고 잘못된 보도와 허위로 유포된 여론 등으로 신도가 감소하고 교세가 위축됐다며 사과와 피해보상, 명예회복을 위한 활동을...
박 후보는 전남 영암 출신으로 중앙일보 기자였으며 광주민주화 운동시 제작거부를 주도해 신군부에 의해 강제 해직 당한 바 있다.
2004년 제34대, 제35대 전남도지사를 지냈으며 이번에 당선돼 3선에 성공했다.
박 후보는 이날 인터뷰를 통해 "도민의 믿음이 저에게는 커다란 영광이지만 우리 전남의 현실을 생각하면 무거운 책임과 사명감을 먼저...
1976~1978년 민주구국선언사건으로 투옥되었고 1979년 10.26 사태로 박 전대통령이 서거한 이후 복권돼 정치활동을 재개했으나 이른 바 '하나회'로 일컬어지는 전두환 신군부가 이끄는 12.12 사태와 1980년 `서울의 봄'과 '광주항쟁'과정에서 내란음모 혐의로 구속돼 사형선고를 받았다.
국제사회의 탄원으로 1982년 12월 형집행정지로 석방돼 미국 망명길에 올라 1985년...
대통령은 1919년 강원도 원주 출생으로 1975년 국무총리 서리를 거쳐 이듬해부터 4년동안 국무총리를 지냈다.
1979년 10·26 사태 직후 박정희 대통령이 유명을 달리하자 대통령 권한대행을 맡은 뒤, 그해 12월 27일 제10대 대통령에 취임했다.
하지만 이듬해 5·17 비상계엄 확대로 전두환 보안사령관이 이끄는 신군부에게 밀려 취임 1년도 안돼 대통령직을 사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