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기업 투자심리 회복속도가 더딜 것으로 전망했다. 또 엔저로 기업의 대외 경쟁력이 약화될 가능성도 높다고 봤다. 이에 따라 이 총재가 기업 부문에 상당한 우려를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반면 최근 급증하는 가계부채에 대해서는 특이요인에 의한 것으로 더 지켜봐야 한다고 판단했다.
이 총재는 12일 금융통화위원회에서 기준금리를 연 2.25%로 동결한 직후 가진 기자설명회에서 기업 부문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를 높였다.
이 총재는 “지난달 기준금리를 0.25% 인하한 후 경제상황을 보면 소비자들의 심리는 소폭 개선됐지만 기업들은 투자심리가 좀처럼 살아나지 못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실제로 8월 소비자심리지수는 107로 한 달 새 2포인트 상승했다. 그러나 제조업 체감경기는 세월호 사고 이후 넉 달 연속 악화됐다. 8월 제조업의 업황 기업경기실사지수(BSI)는 72로 13개월 만에 최저 수준을 기록한 것이다.
그는 특히 “경기회복이 가시화되고 정부의 (경기부양)정책이 구체화되면 기업의 투자심리가 나아질 것”이라면서도 “대외 불확실성 등으로 회복속도는 빠르지 못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세월호 사태 등으로 인한 경제주체들의 심리 위축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전달에 금리를 0.25% 인하했으나 그 효과가 기업에 미치기 위해서는 정부의 정책 노력이 뒷받침돼야 하는 것은 물론 시간도 상당히 소요될 것으로 본 것이다.
한은은 이날 ‘최근 경제동향 자료’를 통해서도 “앞으로 국내경기는 선진국 경기회복 등으로 점차 개선되겠으나 투자심리 회복 지연 등이 불안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또 최근의 엔저 흐름이 기업 부분에 악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내다봤다. 이 총재는 “원·엔 환율이 한국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과거보다는 줄었다는 분석이 있지만, 최근 (원·엔 환율) 상황을 주의 깊게 보고 있다”며 “엔화 약세가 1년이상 장기 지속됐는데 추가 약세가 이뤄지면 한국경제에 상당한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는 이어 “지금까지는 일본 기업들이 엔화약세를 (제품) 가격에 본격적으로 반영하지는 않았다”며 “그러나 지금까지의 수익성을 바탕으로 공격적인 마케팅이나 가격경쟁에 나서면 한국수출에 부정적 영향이 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지난 8월 중 급증한 가계대출에 대해서는 당장 우려할 상황은 아니라고 진단했다. 이 총재는 “8월 가계대출이 크게 늘어난 것은 사실이나 대부분 은행 대출이고, 이중 주택금융공사 모기지론이라는 특이요인이 대부분을 차지했다”며 “앞으로 가계대출 흐름은 좀 더 지켜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총재는 한국 경제가 일부 우려와는 달리 디플레이션 국면에 진입하지 않았다는 의견을 재표명했다. 그는 “물가가 1%대로 낮은 현상이 2년여 지속됐으나 이는 농산물과 국제 에너지 가격 하락 등 공급측 요인에 기인한 것”이라며 “이를 제외한 근원인플레이션은 여전히 2%대 초반이고 기대 인플레이션도 2% 후반”이라고 설명했다.
이 총재는 또 오는 10월 양적완화를 종료할 전망인 미 연방준비제도(Fed)의 출구전략 계획에 대해 국내 금융시장이 과잉반응하면 대응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이 총재는 “미 연준이 통화정책 정상화 계획을 발표할 텐데 그 내용에 따라서 시장이 선반응할 수도 있다고 본다”며 “국내 시장금리의 오름세가 과도하다고 판단하면 공개시장 조작 등 시장안정화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은은 과거 글로벌 금융위기 때 국채를 대량으로 사면서 자금을 푸는 공개시장 조작 방식으로 금융시장 불안에 대응한 적이 있다. 다만, 그는 “미 연준이 (통화정책의 정상화를) 예측 가능하고 점진적인 수준으로 펼치면서 급격한 변화가 있을 것으로 생각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이 총재는 “지난달 기준금리를 낮췄는데 미국이 금리를 올리면 내외금리차가 줄어 자본유출 가능성이 있다는 우려가 나오기도 하나 현재의 내외금리차는 우려할 수준이 아니다”라고 진단했다.
한편 이 총재는 국내경제 전반에 대해서는 “수출이 양호한 모습을 보인 가운데 세월호 사고의 영향 등으로 위축됐던 내수가 소비를 중심으로 다소 개선됐으나 경제 주체들의 부진한 심리는 뚜렷이 회복되지 못했다”고 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