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 바트화의 급격한 평가절하로 촉발된 1997년 외환위기는 아직도 아시아에 트라우마로 남아있다.
많은 전문가가 외환위기 이후 아시아의 빠른 경제성장과 금융시스템 강화, 투명성 개선 및 막대한 외환보유고를 들어 위기 재발 가능성을 낮게 보고 있다.
그러나 윌리엄 페섹 블룸버그 칼럼리스트는 5일(현지시간) 아시아 각국의 부채가 급증하고 있어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 Fed)의 출구전략 가속화나 중국의 신용경색 등 돌발변수가 등장하면 다시 위기가 올 수 있다고 경고했다.
아시아 국가 상당수가 국내총생산(GDP) 대비 민간부채 비율이 150~200%에 달했다고 페섹은 지적했다. 여기에는 호주와 홍콩 한국 대만 등 고소득 국가는 물론 중국 말레이시아 태국 베트남 등이 포함된다고 페섹은 설명했다. 인도네시아와 필리핀은 부채 수준은 낮지만 증가속도가 빨라 우려를 자아내고 있다.
특히 가계부채 급증은 아시아 위기를 촉발할 수 있는 불안요소 중 하나다. 태국의 가계부채는 GDP 대비 80%가 넘는다. 한국 금융연구원에 따르면 2012년 기준 한국의 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86%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치 69%를 크게 웃돌았다.
프레드릭 노이만 HSBC홀딩스 아시아 경제 리서치 공동 대표는 “부채 규모 그 자체보다 더 무서운 것은 빚이 늘어나는 속도”라며 “아시아 경제상황은 표면적으로 보이는 것보다 건전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스탠더드차타드(SC)은행은 지난달 21일 보고서에서 “6월말 기준 중국의 정부와 민간부채를 합한 총부채가 GDP의 251%에 달했다”며 “불과 6개월 만에 17%포인트 높아졌으며 이는 지난해 한 해 동안 그 비율이 20%포인트 커진 것과 대조된다”고 밝혔다.
부채 급증으로 아시아 각국은 연준의 지나치게 빠른 출구전략이나 유럽 재정위기의 재발, 중국 신용경색, 유가 급등, 일본 채권시장 혼란 등 돌발변수가 일어나면 큰 충격을 받을 수 있다고 페섹 칼럼리스트는 경고했다.
노이만 대표는 “아시아가 재앙을 피하는 유일한 방법은 생산성 향상에 있다”며 “각국 정부는 국영기업 개혁과 인프라 확충, 노동시장 유연성 확대 및 무역 자유화 등으로 생산성을 향상시킬 수 있다”고 조언했다.
그러나 이런 업그레이드는 아직 아시아에서 거의 일어나지 않고 있다고 페섹은 꼬집었다. 홍콩과 말레이시아, 한국 등에서는 변화를 다짐하고 있으나 이를 실천에 옮기는 모습은 보이지 않고 있다. 중국 인민은행은 지난 1일 신용과 통화공급 증가세가 너무 빠르다고 경고했다. 이는 리커창 중국 총리가 신용팽챙을 억제하겠다고 다짐한 지 수개월도 안돼 나온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