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기 제품이나 콘셉트를 그대로 모방해 선보이는 베끼기 경쟁이 유통업계에 만연하고 있다. 경기 불황기를 맞아 새로운 시도보다는 검증된 사례를 차용하려는 심리가 크게 작용하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8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일본 투데이스 스페셜이 내놓은 리버스 보틀 ‘마이보틀’이 인기를 끌면서 최근 다수의 국내 업체들이 앞다퉈 비슷한 제품을 출시했다.
포화 폴리에스테르 수지로 만든 플라스틱 물병인 마이보틀은 500㎖ 용량으로, 투명한 소재와 심플한 디자인으로 유명하다. 과일부터 음료까지, 여러 내용물을 예쁘게 보여주는 특징 덕에 인스타그램에서 특히 화제가 됐다. 일본 정가는 1512엔(약 1만5000원)이지만, 품절 사태 후 국내에서는 개인 간 거래를 통해 무려 6만원대 전후로 거래될 정도다.
그러자 락앤락, 망고식스, 에뛰드하우스, NHN 라인, 세븐일레븐 등이 줄줄이 보틀 제품을 내놓았다. 용량과 소재는 동일하며 디자인 역시 투명한 몸체에 검정색 뚜껑으로 같다.
차이점은 문구뿐이다. 마이보틀 ‘MY BOTTLE’ 대신 락앤락 ‘IT BOTTLE’, 망고식스 ‘6’, 에뛰드하우스 ‘SWEET BOTTLE’, 세븐일레븐 ‘LUCKY SEVEN’을 각각 기입했다. 이에 대해 한 국내업체 관계자는 “트렌드를 따라가는 측면으로 이해해 달라”며 “소비자들은 구하기 힘든 제품을 저렴하게 살 수 있다는 면에서 만족감을 표시하기도 한다”고 옹색하게 변명했다.
백화점 업계에서도 이같은 ‘베끼기’는 논란이 되고 있다. 신세계백화점은 지난달 본점 델리존을 ‘고메 스트리트’로 새단장해 선보이며 “최신 트렌드 프리미엄 식문화를 소개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그러나 막상 고메 스트리트를 찾은 고객들은 고개를 갸우뚱했다. 2012년 9월 문을 연 갤러리아명품관 ‘고메이494’와 흡사한 부분이 곳곳에서 눈에 띄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인터넷 블로그 등에서는 고메 스트리트와 고메이494를 비교하며 “신세계 본점 고메스트리트, 마치 갤러리아 같다”, “(신세계 고메 스트리트는) 갤러리아 고메이494를 벤치마킹한 스타일”이라는 평가를 쉽게 찾을 수 있다.
서비스도 유사하다. 신세계백화점 센텀시티점은 지난달 ‘푸드마켓’을 열며 ‘컷앤베이크(CUT&BAKE)’ 서비스를 도입했다. 매장에서 구입한 모든 야채를 무료로 손질해주는 서비스로, 고구마나 옥수수 등을 구워주기도 해 호응이 크다.
그러나 ‘컷앤베이크’ 역시 갤러리아가 고메이494에서 국내 최초로 선보인 서비스다. 내용은 물론 이름까지 동일하다. 업계 관계자는 “좋은 서비스가 있다면 내용을 참고할 수는 있지만, 브랜드 명칭까지 그대로 베끼는 것은 드문 일”이라고 말했다.
본점 식품관 슈퍼마켓에서 운영 중인 제품 주문카드 서비스 역시 고메이494가 먼저 시작했다. 고메이494에서는 ‘바이빅(Buy Big)’이라는 이름으로 생수, 휴지 등 부피가 큰 물건을 직접 카트에 담는 대신 계산대에서 바코드로 결제하고 상품을 받을 수 있다.
신세계백화점 관계자는 “보는 사람에 따라 다를 수 있는 문제”라고 말을 아꼈다.
한편, 이같은 베끼기 논란과 관련, 갤러리아백화점은 특별한 대응을 하지 않고 있다. 신세계백화점 외에도 분당 레스토랑 ‘온더테이블’ 역시 갤러리아가 운영하는 곳으로 오해를 받을 만큼 고메이494와 거의 똑같은 시스템으로 운영되고 있지만, 갤러리아 측은 일절 대응하지 않았다. 온더테이블은 고메이494와 셀렉 다이닝 콘셉트부터 인테리어 색조, 블랙 트레이 등 소품까지 판박이다.
갤러리아 관계자는 “고메이494가 맛집을 모은 프리미엄 푸드 편집샵 시초로서 업계에서 맛집 유치 벤치마킹 대상이 된다는 점에 대해서는 자부심을 느끼고 있다”며 “앞으로 더욱 차별화된 콘텐츠로 고메이494만의 강점을 강화할 계획”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