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한 남자가 있다. 길거리에서 만나면 그에게 눈길을 줄 수 있는 흡인력은 찾아 볼 수 없다. 그저 스쳐 지나가는 한 사람일뿐이다. 그래도 그는 할 말이 없는 사람이다. 흔히 이웃에서 만날 수 있는 사람처럼 보이니까.
그가 화면 속으로, 스크린 속으로, 무대 속으로 들어간다. 평범함은 찾아볼 수 없다. 사람들의 마음에 강력한 파장을 일으킨다. 엄청난 흡인력으로 사람들의 시선을 빨아들인다. 아무리 벗어 나려해도 그의 비범함은 깊은 수렁이 되어 벗어나려하면 할수록 더욱 더 그에게 빠져들게 만든다. 그는 연예계에서 흔히 볼 수 없는 연기자이니까.
조재현 이다. 그는 참으로 오랫동안 길거리와 화면 속에서 그저 지나가는 사람으로, 평범함 그 자체로 살아왔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사람들은 화면 속에서 그의 비범함을 인지하지 못했다. 그는 영화에서, 드라마에서, 그리고 무대에서 놀라운 연기력으로. 대중들은 비범함을 간파하지 못한 자신들의 우둔한 시력에 놀라고 그리고 새삼스레 그의 비범함에 경이로워한다. 전문가나 대중들은 그를 가리켜 ‘과소평가 된 배우’라는 표현으로 안타까움을 표했지만 과소평가한 사람들은 바로 전문가와 대중이다. 그는 매순간 비범함을 보였기 때문이다. 그것을 간파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조재현은 드라마나 영화에서 자신이 연기하는 캐릭터로 살아가는 생생한 연기력으로 팔색조의 꿈을 실현시켰을 뿐만 아니라 이미지를 캐릭터 구성에 철저하게 활용하는 연기자다. 조재현은 자신이 갖고 있는 이미지를 캐릭터의 모든 특성들과 완벽하게 일치시킬 줄 안다.
화가가 되고 싶었던 그가 충동적으로 그림 속의 대상이 되고 싶은 욕구를 느꼈다. 그리고 그는 브라운관이라는 캔버스 속으로 들어갔다. 대부분의 연기자가 그렇듯 그도 KBS 공채 탤런트라는 길을 거쳐 화면 속으로 들어갔다. 1989년 ‘야망의 세월’로 드디어 화면 속의 대상이 됐지만 사람들은 그에게 주목하지 않았다. 스크린 속으로 들어갔다. 여전히 그는 시선을 끌지 못했다. 배우의 예술이라는 연극무대에서 그에게 환호를 보내는 사람들은 전문가와 일부 매니아 팬들뿐이었다. 드라마 ‘피아노’를 거쳐 그는 대중 속으로 들어왔다. 여전히 조재현의 강력한 무기인 연기력의 본질을 아는 이는 많지 않다.
그래도 대중들은 그의 존재의 본질을 몰랐지만 알아보는 사람도 있었다. 영화감독 김기덕은 조재현에 대해 이런 말을 한적 있다. “누구누구 감독의 틀 속에 갇힐 수 없는 배우”라고.
‘피아노’의 오종록 PD도 찬사를 보낸다. “조재현이라는 배우의 연기력의 깊이는 알지 못한다. 작품을 할때마다 깊은 연기의 울림을 느낄 수 있다”고 찬사를 보냈다.
그가 요즘 인기 상승증인 사극 ‘정도전’의 타이틀롤을 맡아 열연을 펼친다. 그리고 관객과 만나고 있는 영화‘역린’과 연극‘그와 그녀의 목요일’에서 맹활약을 펼친다. 조재현의 팔색조 연기가 빛을 발하고 있다.
그는 중고등학교 시절 반항하고 싶었다고 했다. 그래서 가출이라는 것을 했다. 어린시절 통과의례처럼 제기되는 반항과 그리고 사춘기때 보이는 그럴싸한 저항의 표시가 가출이었으니까. 하지만 어린 그에 대해 늘 따스한 시선으로 지켜주는 이가 있었다. 바로 누나였다. 그 누나는 가출을 한 뒤 집으로 돌아온 거친 남성성이 최고라고 생각한 남동생에게 한권의 책 선물을 했다.
여성 심리를 잘 묘사한다는 투르게네프의 ‘첫사랑’을 읽고 난 뒤 거친 남성성만이 최고라는 생각을 한 소년은 변하게 됐다. 그리고 ‘첫사랑’에서 드러난 인물들간의 심리나 감성, 그리고 행동들은 그 소년의 감성과 정서체계에 큰 소용돌이를 일으켰다. 훗날 그가 연극무대로 연기자의 길에 들어섰을 때 사람들의 마음을 부여잡는 연기의 흡인력의 원동력인 감성의 촉진제가 됐다.
‘첫사랑’을 읽었던 어린 시절 조재현은 이제 연기자 조재현으로 우뚝 서면서 ‘첫사랑’의 주인공 열여섯살 블라디미르가 연상의 여인 지나이다를 사랑하고 그리고 그 여인이 자신의 아버지를 사랑한다는 사실을 알면서 사랑의 시각을 넓혀갔듯 그는 드라마, 영화, 연극에서 캐릭터들을 사랑하고 연기에 대한 시선을 넓혀간다. 그 연기의 사랑과 넓혀감의 지난한 작업들이 평범함으로 묻힐 수 있는 조재현을 늘 비범함으로 빛나게 만드는 것이다.
부산의 한 식당에서 소주잔을 기울이며, 그리고 여의도 식당에서 맥주를 마시며 연기와 연기자로서의 삶을 조재현과 이야기한 적이 있다. 그는 “좋은 연기란 스스로 만족할 수 있는 연기”라며 “베니스영화제에서 최연소 여우주연상을 받은 영화 ‘뽀네트’의 네 살 짜리 주인공 티비졸의 연기처럼 계산도 의도도 없고 철저하게 삶을 보여주는 연기를 지향한다”고 말했다. “죽을 때까지 연기 할 생각은 없다. 나는 여기까지다 싶으면 미련 없이 떠나겠다”라는 결연한 의지를 덧붙이면서. 하지만 조재현이 보여줄 것은 아직 많이 남아 있다. 그것을 지켜보는 것은 대중의 큰 즐거움이다. (스쿠프에 기고한 글을 일부 수정했음을 알려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