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대영의 경제 바로보기] ‘착한 금융’은 불가능할까

입력 2014-04-08 1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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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대영 송현경제연구소장

금융과 금융인에 대한 세상 사람의 인식은 아주 좋지 않다. 금융 사고와 위기 등을 초래해 많은 사람들에게 엄청난 피해를 주고, 자신들은 고액 연봉을 챙기는 탐욕스러운 금융인이 많기 때문이다. 2008년 세계 금융위기 사태 이후 여러 나라에서 이 같은 금융인을 쉽게 볼 수 있고, 한국도 비슷하다.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금융위기와 2002년 신용카드 사태에 이어 2010년 저축은행 사태, 2013년 동양 사태, 2014년 개인정보 유출 사태 등은 국민에게 많은 피해를 주었다. 여기에다 한국에서는 영세 사업자, 창업자, 저신용자 등은 담보나 보증 없이 금융기관으로부터 대출받는 것도 거의 불가능하다. 반면 얼마 전 KT 계열사의 어이없는 사기대출 사례에서 보듯 외형적으로 신용이 괜찮아 보이는 재벌 계열 기업이나 좋은 직장을 가진 사람은 돈을 빌리기가 너무도 쉽다.

금융이 원래 이렇게 나쁘고, 가진 계층의 전유물이기만 한 것일까? 한 번 깊이 생각해 보고 대안을 찾아볼 필요가 있다. 금융은 자금 융통의 줄인 말로 자금을 여유가 있는 곳에서 부족한 곳으로 흐르게 하는 것이 일차적 역할이다. 돈이 없고, 자금 지원이 절실히 필요한 사람은 영세사업자, 창업자, 저신용자들이다. 금융이 제 역할을 한다면 돈이 없거나 부족한 사람도 좋은 기술과 아이디어만 갖고 성공해 경제력을 가질 수 있다. 즉, 금융이 이미 성공한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과의 격차를 줄여 자본주의 모순을 조금은 시정할 수도 있는 것이다.

금융이 이렇게 긍정적 기능을 수행하게 하는 것이 쉽진 않지만 불가능하지도 않다. 독일, 덴마크 등 유럽 여러 나라에서는 협동조합은행을 중심으로 이러한 역할이 어느 정도 이뤄지고 있다. 그러나 한국은 협동조합 기본법상 금융·보험업을 하는 협동조합이 허용되지 않아 시민이 자조적 금융기관을 만들 수 없다. 이 때문에 기존 서민 금융기관인 신협, 새마을금고, 상호저축은행 등이 제 역할을 해야 하나 그렇지 못하다. 신협과 새마을금고도 은행과 비슷하게 담보대출 중심이고 신용대출은 아주 소액이나 직장 등이 확실한 사람에게만 해 주고 있다. 규모가 상대적으로 큰 농·수협의 단위조합도 정부 정책자금의 공급 역할을 제외하고는 별 차이가 없다. 여기에다 상호저축은행은 정책당국이 서민금융과 거리가 먼 거액의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대출을 조장해 부실화시켰다.

이렇게 된 데에는 우리 사회 전반의 정직성과 신뢰성 부족, 서민금융기관 직원의 노력 부족 탓이 크겠지만 정책당국의 무관심과 정책 실패가 보다 현실적 원인이다. 정책당국은 서민 금융기관을 문제만 일으키지 않으면 되는 기관으로 보고 오히려 역차별하고 있는 상황이다. 신협, 새마을금고는 예금 등에 일부 세제 혜택이 있지만, 취급 업무의 제한과 지점 설치 제약 등으로 은행과 경쟁하기 어렵다. 또한 신협과 새마을금고는 중앙회와 연합회의 금융 기능이 없어 거래기업이 커지면 계속 거래할 수 없다. 서민금융기관이 발전 가능성이 있는 영세 기업이나 신설기업을 발굴해 장기 지원 하는 것이 어려운 이유 중 하나다.

한국에서도 신협, 새마을금고 등 서민금융기관이 제 역할을 할 수 있을까? 물론 어렵지만 방법은 있다. 첫째, 정책당국이 서민금융 활성화에 관심을 갖고 독일 협동조합은행 등의 사례를 통해 발전모델을 찾아야 한다. 둘째, 서민금융기관에 대한 역차별적 업무제약을 줄이는 한편, 거액대출 제한 등 건전성 규제를 강화해 서민금융기관의 부실화 가능성을 줄여야 한다. 셋째, 서민금융기관의 영세사업자 등에 대한 신용대출, 즉 관계금융을 늘릴 수 있는 제도적 유인을 만들어야 한다.

첫째와 둘째의 제도 개선은 정부의 의지만 있다면 상대적으로 쉽지만, 셋째 관계금융의 확대는 제도적 보완만으로는 한계가 있고 신협 등 서민금융기관 경영자의 많은 노력이 필요한 부분이다. 관계금융은 오랜 접촉과 관찰 등을 통해 담보 등이 부족한 사람 중에서 빌린 돈을 잘 갚을 사람을 찾아 대출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기존 서민금융기관이 서민금융을 활성화할 수 없다면 협동조합에 대한 금융·보험업 금지 규제를 풀어 시민의 자조적 금융활동이라도 가능하게 해야 한다. 진입 규제를 통해 제 역할을 못하는 금융기관을 계속 보호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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