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正論]황제노역, 규정집의 두께와 제도의 딜레마

입력 2014-03-27 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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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찬 가톨릭대 대학발전추진단장ㆍ아시아중소기업학회 회장

일은 규정이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하는 것이다, 우리는 너무 규정에 얽매여가고 있다.

일이 주어지면 ‘내가 다 해야지’ 하는 나홀로(stand alone) 생각에 빠진 사람이 가장 어리석은 것이다. 내가 잘 하는 것 말고는 전문가에게 맡기고 그런 부하를 키워가는 것이 경영이다. 임원은 단기적 성과보다 부하를 잘 육성했느냐에 따라 경영능력의 평가를 받는다. 우리나라도 이제 제도경영에서 벗어나야 한다. 사람을 키우는 경영, 사람을 중시하는 경영의 시대를 열어가야 한다.

경영학이나 행정학, 그리고 지금의 정치에서 너무 제도를 강조하고 있다. 규칙에 얽매이다 보면 규칙에는 허점이 있기 마련이고, 조직원들이 규칙만을 따르다 보면 경직되기 마련이다.

일당 5억원의 ‘황제노역’ 논란도 규정의 기계적 적용과 도덕적 해이에 의해 만들어진 우리사회의 일그러진 모습이다. 지하철에서 준법운행을 시작하면 기계적 준법만 있고 주인의식이 없어 준법의 이름으로 기회주의적으로 고객을 골탕먹이게 된다. ‘준법의 역설(Paradox of Compliance)’이다. 준법이라는 이름으로 도덕적 판단력을 퇴화시키고 또 다른 도덕적 해이와 기회주의 가능성을 만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마케팅 이론의 핵심인 4P(Product, Price, Place, Promotion)에도 ‘People(사람)’은 없다. 엄격한 규칙과 인센티브로 무장된 미국의 엔론, 리만 브라더스 등은 비윤리와 도덕적 해이로 파산하고 말았다. 이것이 제도의 딜레마이다.

우리나라 조직들의 규정집은 나날이 육법전서만큼 두꺼워지고 있다. 그러나 우리 사회의 윤리경영은 악화되고 있다. 국제투명성기구(TI)의 부패인식지수는 100점 만점에 55점을 받아 2013년 46위에 머무르고 있다. 규정이 얇을수록 경영은 가볍워질 텐데 규칙과 규정만 많아지고 있는 것이다.

제도경영은 규정과 인센티브(rules & incentives)라는 2가지 수단을 활용하는 것이다. 끊임없이 더 많은 규칙을 만들어 비윤리적 행위를 규제하려고 하고, 더 많은 인센티브를 만들어 열심히 조직을 위해 봉사하게 한다. 제도는 단기적으로 가장 효과가 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구성원들은 규정과 인센티브에 무감각해지게 마련이다. 더 많은 규칙은 관료화를 낳고 더 많은 인센티브는 비도덕을 낳는다. 이기적 구성원들은 제도의 허점을 찾아 합법적 비윤리의 그늘을 만들고, 기회주의 행동을 시도한다. 규정에 의존한 윤리경영의 한계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이제 우리 사회에 생각을 가진 사람, 철학을 가진 사람을 키워내는 노력이 필요하다. 우리 사회는 청지기 정신을 가진 더 많은 도덕적 생각을 가진 사람을 필요로 한다. 특히 최고경영자의 관심 없이는 규정이 제대로 작동하기도 어렵다. 규정만 만들 것이 아니라 주인의식을 가진 청렴의식으로 무장한 리더를 육성하는 것이 급선무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실천적 지혜(Practical Wisdom)를 갖춘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했다. 지성(Veritas), 인성(Virtue), 영성(Venerability)을 갖춘 사람을 만들어가야 한다. 제도를 넘어 생각을 가진 사람을 통해 영혼이 있는 사회, 철학이 있는 사회로 만들어가야 한다.

생각은 우리를 흥분시키고 우리를 살아있게 한다. 두꺼워지고 있는 규정집과 일당 5억원의 ‘황제노역’을 보면서 제도가 아닌 생각으로 세상을 바꾸어가야 함을 절실히 느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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