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제가 미처 몰랐던, 정확하게 말하자면 깨닫지 못한 것이 있었습니다. 사진 속 다비드는 실재하지 않았습니다. 정면 모습만 머릿속에 간직했다가 옆과 뒷모습을 보게 된 순간, 그리고 5m가 넘는 거구라는 것을 확인하는 순간, 머리를 세게 얻어맞는 기분이었습니다. 그렇게 한참을 바라보다 ‘주어진 이미지, 각인된 이미지가 전부는 아니구나. 미처 몰랐던 또 다른 측면이 있었구나’ 하고 깨닫게 되었습니다. 14년이 지난 지금도 그 순간의 기억이 이토록 생생한 것은 그만큼 제 마음속 울림이 컸기 때문이겠지요.
사람은 저마다의 프레임을 통해 세상과 만나고 있습니다. 프레임은 세상을 보는 창입니다. 어디를 향하는지, 무엇을 갈망하는지, 각자의 프레임에 따라 세상은 다르게 보이고 또 그만큼만 이해되는 법입니다. 사람의 눈으로는 밤하늘의 은하수를 모두 볼 수 없습니다. 그렇지만 보이는 것만이 전부라고, 진실이라고 주장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 너머를 우리는 이미 이해하고 있습니다. 다만 열린 마음이 있다면 말이지요.
얼어붙은 땅속에서 꽃망울을 준비하고, 얼음을 녹이는 물망울이 흘러가고, 시린 바람도 시나브로 무뎌져 가는 계절입니다. 망원경처럼 넓게 보고, 현미경처럼 깊게 보고, 사진기처럼 뒤집어 보고, 천리안처럼 내다보면 좋겠습니다. 나무처럼 강물처럼 바람처럼 우리도 스스로를 옭아매는 갇힌 프레임을 열어젖히고, 조용히 다가오는 눈부신 새봄을 마중하는 것은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