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후보자는 내정 직후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변호사 시절 공정거래는 물론 기업 구조조정, 금융, 조세, 무역 등 다양한 경제 분야를 다뤘다”며 “이러한 경험이 대기업 문제를 많이 다룰 공정위에서 필요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비판에 대한 역발상이다. 로펌 재직 이력이 결격사유가 아니라 오히려 공정위원장으로서 대기업 문제를 다루는 데 자격이 되는 사항이라는 반론이다.
실제로 경제민주화는 한편으로 대기업과의 전쟁이라고 할 수 있다. 적진의 사정과 적군의 전략을 잘 알고 있는 장수라면 전쟁을 잘 치러낼 가능성도 높아질 수 있다. 한 내정자는 1984년부터 2007년까지 김앤장, 율촌 등 대형 법무법인에서 일하는 동안 의뢰인 측인 대기업 핵심 그룹과 손발을 맞춰왔다. 대기업의 수법이라면 한 후보자의 손바닥 안에 있을 수밖에 없다.
미국의 경우에도 비슷한 전례가 있다. 1934년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이 주가조작을 단속하는 증권거래위원회(SEC) 위원장에 초대 SEC 위원장에 라디오회사 RCA 주가를 조작해 큰돈을 번 조지프 케네디를 임명한 것. 한 후보자에게 제기되는 것과 유사한 비판과 질문이 쏟아졌다. 루즈벨트 대통령은 “사기꾼을 잡기 위해 사기꾼을 기용한다”고 말했다.
공정위의 주된 표적이 될 대기업으로서도 과거 한 팀이었던 인물을 공정위원장으로 맞는 것은 여간 불편한 일이 아니라는 반응이 나온다. 대기업 A사 관계자는 “법무법인과는 송사를 함께 처리하는 과정을 통해 외부에 알리기 힘든 정보를 공유할 수 밖에 없다”며 “부메랑이 될까 두렵다”고 말했다. 자신들의 생리를 훤히 꿰뚫고 있어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당혹스러운 기색이 역력했다.
특히 한 후보자는 대기업들의 일감 몰아주기나 납품단가 후려치기 등 불공정 관행에 “어떤 식으로든 정당화될 수 없다”며 공정위원장으로 취임하면 가장 먼저 해결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법률 전문가인 만큼 관련 법률도 더 견고하게 만들 수 있다. 한 후보자의 말대로라면 그의 임기는 대기업에게 ‘더 없는 악몽’이 될 가능성도 있는 셈이다.
하지만 아직은 의문의 시각이 많다. 민주통합당 김기식 의원은 “한 교수가 20년 이상 재직한 대형로펌의 인적 로비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공정위 안팎에서는 최근 ‘전관예우’가 비난을 받는 상황에서 거꾸로 로펌 출신이 공정위원장에 내정된 데 대한 당혹감도 적지 않은 상황이다. 향후 인사청문회에 각계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