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正論]여론이 민심이고, 시대정신이다 - 김창남 경희대학교 언론정보대학원 교수

입력 2013-02-25 1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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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남 경희대학교 언론정보대학원 교수
근대적 의미의 여론은 서구의 개인주의적 시민사회에서 비롯되었으나 고대사회나 중세사회에서도 여론은 존재했다고 볼 수 있다. 전근대사회에서 여론은 절대 권력에 억눌려 현대사회에 비해 영향력이 약했으나 왕이나 귀족들도 여론을 의식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로마시대에 여론은 “백성의 소리”로 인식되었고 서양의 절대주의 시대에도 “인민의 소리는 신의 소리”라고 하였다.

우리나라를 비롯한 동양에서는 ‘민심’이라고 했으며, 민심은 곧 천심(天心)으로 받아들여졌다. 민심을 파악하기 위해 왕은 시정(市井)의 밤거리를 야행하기도 하였다. 18세기 계몽주의 사상가인 루소는 여론을??한 사회의 구성원 모두가 합의하고 동의하는 것??곧 ‘일반의지’(general will)로 표현하였다. 율곡선생이 ‘공론’이라 일컬은 것도 현대적 의미의 여론이었다. 율곡 이이는 공론이란 “백성이 모두 그렇다고 생각하는 것”이며 이론투쟁을 통해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고 하였다.

동서고금을 통해 수많은 사람들이 여론에 대한 의견을 제시했지만 모든 사람들에게 공통적으로 인정되는 개념적 정의는 없다. 그 이유는 여론 형성의 주체, 지향 대상, 사용 의도 등이 보는 시각에 따라 많은 차이를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대적 견해들은 대체로 여론을 정부·정치와의 연관 속에서 파악하는 경향이 있다. 여론학자인 에릭슨(R. S. Erikson)은 여론에 대한 방대한 견해를 살펴보고 “정치 또는 정부와 관련된 이슈에 대해 성인(成人)들이 가지는 개인적 의견의 결집체”로 정의하였다.

여론 형성의 주체인 일반국민의 입장에서 볼 때 여론은 세상사에 대한 일반국민 들의 개인적 의견이 단순하게 산술적으로 합쳐진 것이 아니다. 비록 어떤 계획에 의해 의도적으로 형성된 것은 아니지만 여론이란 “일반 국민들이 구체적으로 바라는 바”또는 “세상 일이 지향해 주기를 바라는 방향”이 그 바탕을 이루고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여론은 일반국민들이 여론의 지향 대상으로부터 어떤 원하는 의견, 태도, 행동을 이끌어내기 위한 설득커뮤니케이션이라고 할 수 있다.

현대 자유민주주의 사회에서 여론은 가공(可恐)할 위력을 발휘한다. 설득 커뮤니케이션으로서의 여론이 주는 메시지를 민감하게 파악하지 못하고 경거망동하면 정치권력도 아침햇살 앞의 이슬과 같이 무너져 내린다. 대기업 왕회장님의 기업경영방식이 나라의 경제발전을 견인한 경영철학으로 평가되느냐, 사익 추구에 혈안이 된 하류 장사꾼의 기교로 치부되느냐 하는 것도 여론의 영향을 받는다.

유권자의 표가 필요할 때 권력은 마지못해 여론을 두려워하는 시늉을 짓지만 사정이 바뀌면 태도를 표변하기 일쑤다. 국민의 목소리를 부담스럽게 생각하고 귀를 닫는다. 여론은 비전문적이고 비효율적이며 과도하다고 생각한다. 이와 같이 여론을 경시하고 멀리하는 권력에게 국민은 일방적으로 사랑을 베풀지 않는다. 국민은 여론을 거스르며 독선과 아집으로 밀어붙이는 권력으로부터 냉정하게 돌아선다.

애당초 국민은 권력의 경쟁 상대가 아니다. 국민은 권력의 섬김을 받아야 할 나라의 주인이다. 그래서 자유민주주의 사회에서 권력이 여론을 두려워하고 따르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능력과 자존심에 상처를 받을 일도 아니다. 당연히 따라야할 도리이며, 의무이다. 혹 국민을 우매하다고 생각하며 여론으로부터 귀를 닫거나 여론의 흐름을 자의적으로 예단하고 거스르는 자는 도도한 역사의 흐름 속에서 몰락을 면치 못할 것이다.

역사는 여론을 무시하고, 회피하고, 거스르는 권력이 존립할 수 없다는 것을 분명하게 증거하고 있다. 권력 추구의 목적이 생명공동체의 번영과 국민의 행복이라면 여론을 두려워해야 한다. 여론에 귀 기울이고 전력을 다해 부응해야 한다. 여론은 민심이요, 시대정신이요, 천심이라는 것을 권력은 엄중하게 각성하고 국정에 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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