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외된 이들의 역습]"그래! 나 네가지다" 편견과 싸우는 소수

입력 2012-04-12 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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흡연자·비혼자·소주종교인 등 크고 작은 사회적 차별 시달려

# 빨간 넥타이에 검은색 정장을 말끔히 차려입은 네 명의 남자가 차례대로 연단에 선다. 이들은 세상으로부터 오해를 받으며 살아가는 우리 사회의 20~30대 평범남들이다. 공통점은 세상 모든 여자들이 싫어하는 조건을 한가지씩 도합 ‘네 가지’를 가지고 있다는 것. 하지만 속내를 들어보면 각각의 사정은 ‘4인 4색’이다.

네 명의 남자는 소위 사회가 인정한 ‘인기없는 남자’‘촌스런 남자’‘키작은 남자’‘뚱뚱한 남자’다. 이들은 ‘보이는 게 다가 아니다’라고 자신의 입장을 항변한다. ‘촌스런 남자’는 아직도 자신의 고향을 7080년대 시골쯤으로 이해하고 있는 여자친구에게 현실은 그렇지 않음을 강조한다. ‘키 작은게 내 탓은 아니다’라는 남자는 “이 정도 생겼으면 용서해줘야지”라고 받아친다. 100kg가 훨씬 넘어 보이는 뚱뚱한 남자는 친구가 추가로 시킨 공기밥을 자신의 앞에 놓아주는 식당 아줌마를 향해 소리친다. “마음만은 홀쭉하다!”

▲세상을 이끌어가는 주류(主流)는 누구인가. 학벌이 빵빵한 사람, 돈이 많은 사람, 정치인, 기업가, 주류종교인…. 틀린말은 아니다. 눈에 보이는 세상은 이들에 의해 굴러가는 듯하다. 하지만 조금 눈을 돌려보면 세상을 구성하고 굴러가게 하는 다른 바퀴가 있음을 쉽게 알 수 있다. 주류에 편입되지 못했다고 무시당하는 이들. KBS 2TV 간판 개그프로그램인 '개그콘서트-네가지'는 주류가 아니라는 이유로 무시당하는 이들의 이야기를 직설화법으로 들려준다. "무시하지마라. 언젠간 우리가 주류가 될 수 있다" KBS 2TV 개그콘서트 인기코너 '네가지' 사진제공=KBS
이들 네 남자의 웃지 못할 사연은 KBS 개그콘서트의 최고 인기코너 ‘네가지’의 레퍼토리다. “그래 나 000다”라는 말로 운을 떼는 4명의 개그맨이 콤플렉스에 얽힌 일화를 반말로 툭툭 내뱉는 게 웃음 포인트다.

순간순간 ‘빵’ 터지게 하는 개그에 관객들은 아무 생각없이 웃음을 쏟아내지만 뭔가 마음 한켠에선 ‘안쓰럽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이들의 울분은 결코 남의 일이 아닌 현실 속 우리네 형제나 친구, 동료의 모습이다. 이 코너가 많은 이들의 공감을 이끌어내며 최고의 인기주가를 올리고 있는 이유도 여기서 찾을 수 있다.

우리 사회에도 이들 네 남자와 마찬가지로 있는 그대로 자신들을 바라봐 주길 원하는 사회적 소수자들이 있다. 비혼자, 흡연자, 소수종교인, 2G폰 사용자 등이 그들이다. 결혼, 금연, 주류 종교, 스마트화를 강요하고 있는 현실에서 이들을 바라보는 사회적 시선은 불편하기만 하다.

대한민국 헌법 제11조 1항에는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고 돼 있다. 누구든지 성별·종교 또는 사회적 신분에 의해 정치적·경제적·사회적·문화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서 차별을 받지 아니한다는 것이다.

결혼을 하지 않는 비혼자라는 이유로 임대주택이나 장기전세 등의 우선순위에서도 밀린다. 담배는 분명 기호식품인데도 흡연자들은 점점 설 자리를 잃는다. 남들이 다 쓰는 스마트폰을 쓰지 않는다고 해서 직장과 친구들 사이에서 디지털 지체자 취급을 받는다. 또 법적으로 종교의 자유가 보장돼 있음에도 소수종교인들은 주류가 아니라는 이유로 차별과 박해에 시달린다.

◇소수자 인권시계 거꾸로…“틀림과 다름 인정해야” = 사회적 소수자들의 인권 침해 현실은 비참하기만 하다. 특히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표현과 집회·결사의 자유, 노동권과 소수자의 인권 등이 크게 위축됐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사회적 약자의 인권을 옹호해야 할 국가인권위원회가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하면서 우리나라의 인권 상황은 전반적으로 역행하고 있다는 평가다. 지난해 영화 ‘도가니’ 열풍은 장애인과 소수자 인권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환기시켰지만 사회복지법 개정 등 갈길은 멀기만 하다.

전문가들은 이 소수자들에 대한 사회적 편견은 사회적 갈등으로 말미암은 사회 통합의 저해, 인권 침해에 따른 반한 기류의 확산 등을 부추길 수 있다고 지적한다. 문화상대주의적 입장에서 ‘틀림’과 ‘다름’을 인정해야 진정한 선진 사회로 나갈 수 있다는 것이다.

장미혜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앞으로의 다문화정책은 소수자를 ‘배려’하는 관점에서 나아가 소수자의 차이가 새로운 자원이 될 수 있고 사회적 관용이 창조적인 문화 생산의 원동력이 될 수 있음을 인식해야 한다”며 “나와 다르다는 사실을 차별이 아닌 다양성으로 인정하는 것이 성공적인 다문화사회로 나가는 첫걸음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개봉한 메튜본 감독의‘엑스맨:퍼스트 클래스’ 라는 영화에선 이런 대사가 나온다. “사회가 널 받아주기 원하면서 왜 너 자신은 받아들이지 않는 거지?”. 차별받는 돌연변이들이 인간사회에 맞서며 스스로에게 되묻는 질문이다. 현실 사회에서도 이런 변화의 움직임은 감지되고 있다.

사회적 소수자들이 부딪혀야 하는 편견의 벽은 두껍지만 그렇다고 결코 여기에 굴복하지 않는다. 보수 기득권층이 만든 사회적 굴레를 벗어던지고 “나도 할 말 있다”고 항변한다. 우리 사회에서 설 곳 잃은 소수집단들의 역습은 지금부터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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