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일본이 위험하다. 지난해 3월 대지진 이후 회복에 안간힘을 쓰고 있지만 상황은 녹록지 않다. 특히 제조업을 중심으로 ‘주식회사 일본’의 위기는 현재진행형이다. 워크맨 신화의 주역인 가전은 물론 자동차, 반도체 등 일본을 대표하는 기업들이 휘청거리고 있다. 성장률이 마이너스로 추락하는 등 전반적인 경제 상황마저 기업에 도움이 되지 못하고 있다. 3회에 걸쳐 일본의 제조업을 긴급 진단한다)
<글 싣는 순서>
① 흔들리는 가전왕국…TV가 족쇄
② 기로에 선 자동차산업
③ 벼랑 위의 반도체산업
“바보는 경험에서 배우고 현자는 역사에서 배운다”
독일 ‘철혈 재상’ 오토 비스마르크가 남긴 명언이다.
이는 위기에 대응하는 다양한 태도를 빗댄 말이지만 현재 위기의 늪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일본 반도체 업계의 정곡을 찌르는 표현이기도 하다.
1980~1990년대 히타치제작소와 도시바의 ‘쌍두마차’가 이끄는 일본 반도체 산업은 세계 시장을 좌우할만큼 기세등등했다.
고도의 품질과 성능을 갖춘 D램 제조와 이에 걸맞는 최적의 장치 및 프로세스를 개발해 최강의 지위를 구축했다.
전문가들은 그러나 이들이 극복할 수 있는 위기도 큰 고민없이 분리와 통합 등 재편으로 맞서면서 오합지졸식 군대로 전락했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오랜 세월에 걸쳐 형성된 기술력과 설비를 검토하지 않은 채 이뤄진 재편은 잇단 악재를 만나면서 취약성을 여실히 드러냈다.
D램 시장 흥망을 기점으로 1999년 12월 NEC와 히타치가 D램 부문을 분사 통합해 엘피다메모리를 설립했다.
2002년 5월에는 NEC가 LSI 사업을 떼어내 NEC일렉트로닉스를 설립했다.
2003년 4월에는 미국 AMD와 후지쯔가 NOR형 플래시메모리 업체인 스팬션을 설립했다.
안일한 재편은 사태를 한층 악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했다.
엘피다는 설립 후 2년간 D램 점유율이 계속 곤두박질쳤고, NEC일렉트로닉스는 설립과 동시에 적자로 전락, 스팬션은 2009년 2월 파산했다.
이후 2008년 본격화한 미국발 금융위기 여파로 일본 반도체 업계는 제2의 재편에 내몰렸다.
엘피다는 자금난에 시달리다 정부로부터 공적자금을 지원받았으나 현재 채무 이행이 불가능해지면서 파산설이 불거지고 있다.
2010년 4월에는 르네사스테크놀로지와 NEC일렉트로닉스가 경영을 통합, 4만7000명의 인력을 거느린 르네사스일렉트로닉스로 거듭났다.
그러나 제2의 재편 역시 장담할 수 없다.
체력이 약해진 상태에서의 재편으로 기술 인력은 넘쳐났고 생산과 품질 모두 과잉인 상태에서 고비용 체질로 변질했다.
불황을 만나자 대규모 적자를 피하지 못했다.
결정타는 2011년 3월11일 동일본 지역을 강타한 대지진과 쓰나미였다.
대재앙으로 휴대전화 PC 디지털가전 자동차 핵심부품 등 서플라이체인도 마비됐다.
일본 온라인 종합 정보지 니혼비즈니스프레스는 “반도체 산업은 오랜 세월에 걸쳐 숙성돼온 하나의 ‘문화’로 봐야 한다”며 “일부를 떼어내 단순 비교해 재편하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라고 일본 반도체 업계에 일침을 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