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탐구] 50년 업력 이수페타시스, 비껴간 유상증자 공시…“밸류업 기업인데”

입력 2024-11-12 0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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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립 50년이 넘은 이수페타시스가 창사 이래 최대 위기를 맞았다. 최근 고려아연 사태를 겪으면서 국내 시장에서 유상증자 여론이 악화한 가운데 5000억 원이 넘는 대규모 유상증자 계획을 발표하면서다. 특히 투자자들의 관심이 비교적 줄어든 장 마감 이후에 공시가 올라온 점도 여론을 악화시키는 중이다.

이수페타시스는 글로벌 점유율 3위이자 국내 유일의 PCB(인쇄 회로 기판, Printed Circuit Board) 업체로 인공지능(AI) 서버에 핵심 부품을 공급 중이다. 글로벌 AI 시장 성장에 따른 고성능 네트워크 장비에 대한 수요가 증가하면서 올해도 높은 실적 성장이 전망되고 있다. 시장의 우려를 불식시키고 다시 투자자들의 신뢰를 얻을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린다.

1972년 설립된 이수페타시스는 이수그룹의 정보기술(IT) 소재 디스플레이 계열사다. 1989년부터 PCB(인쇄 회로 기판, Printed Circuit Board)를 전문적으로 생산 및 공급했으며, 지난 1995년 11월 이수그룹에 편입됐다. PCB란 가전제품부터 스마트폰까지 널리 이용되는 부품이다. 반도체, 전자기기에서 전기적 신호를 전달하는 필수적 기능을 한다.

IT 열풍이 한창이던 2000년 8월 코스닥 시장에 상장하면서 증시에 첫발을 들였다. 2003년에는 유가증권시장으로 이전 상장했다. PCB는 구리배선이 가늘게 인쇄된 판 위에 미세한 전기배선과 구멍을 효율적으로 형성해 전자기기의 크기를 줄이고 성능은 높이는 역할을 한다. 네트워크용 MLB(Multi-Layer Boards, 고다층기판)과 데이터센터용 MLB를 제조해 판매하고 있다.

네트워크용에서 데이터센터용 PCB로 체제 변환을 하면서 생산능력 향상과 규모의 경제를 통한 비용 절감, 고객사 다변화를 이뤘다. 구글, 엔비디아, 마이크로소프트(MS), 인텔 등 다수의 글로벌 IT 기업들을 고객사로 보유하고 있다. 특히 주요 고객사인 구글에 대한 매출이 전체 매출액의 약 20% 수준을 차지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에는 AI 시장 성장에 따라 엔비디아와의 협력 관계도 강조되고 있다.

국내 본사는 대구광역시에 위치했으며, 해외 미국과 중국에도 생산시설을 갖추고 있다. 국외 법인으로 이수페타시스 아메리카와 이수페타시스 후난을 보유 중이다. 18층 이상의 고다층 MLB와 RFPCB는 국내 대구 공장에서 전문적으로 생산하고 있으며, 미국과 중국 생산시설에서는 각각 초고다층 MLB와 4층 이상 18층 이하의 중다층 PCB를 생산한다.

▲▲ SK하이닉스의 PC OEM향 PCIe 5세대 SSD ‘PCB01’ (사진제공=SK하이닉스)
▲▲ SK하이닉스의 PC OEM향 PCIe 5세대 SSD ‘PCB01’ (사진제공=SK하이닉스)

주요 투자포인트는 시설설비(CAPA) 증설에 따른 생산량 확대와 네트워크용 MLB의 점진적 회복세다. 지난 7월 4공장 증설을 완료하고 하반기부터 가동 중이다. AI 가속기 수요가 급증하면서 6개월가량 완공이 앞당겨졌다. 이를 통해 월간 MLB 생산 Capa는 기존 1만5000㎡에서 약 50% 증가한 2만2000㎡ 규모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30층 이상의 초고다층 MLB인 네트워크용 MLB의 회복도 긍정적이다. 최준원 신영증권 연구원은 “글로벌 IT 업체들의 활동이 증가하면서 데이터 처리 속도에 대한 수요는 물론 고대역폭과 고속 이더넷에 대한 수요 또한 증가할 것”이라며 “이더넷 스위치 업체인 Arista의 지난해 400GbE 스위치 고객은 약 800곳으로 2022년 대비 200곳 증가했다”고 설명했다.

400GbE 제품에 대한 수요가 회복되고 있는 가운데 800GbE로의 전환도 빠르게 이뤄진다는 관측이다. AI 확대로 늘어나는 데이터를 더 빠르게 처리하기 위한 수요가 확산하고 있기 때문이다. 주요 고객사들이 800GbE 신제품 출시와 양산 계획을 잇달아 발표하면서 이수페타시스도 800GbE로의 전환을 시도 중이다. 이수페타시스는 이미 800GbE에 대한 수주잔고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올해 연간 매출액과 영업이익은 전년 대비 각각 20%, 50% 증가한 8101억 원과 974억 원을 기록할 전망이다. 영업이익률은 12%를 달성할 것으로 예상됐다. 최 연구원은 “고다층 MLB를 생산하는 페타시스 매출액이 전년 대비 22% 증가한 7083억 원으로 성장한 데 더해 4공장 증설 효과로 본격적인 매출 성장과 수익성 개선을 기대해볼만 하다”고 했다.

탄탄대로를 달리던 이수페타시스에 찬물이 끼얹어진 것은 지난 8일이었다. 이수페타시스는 8일 오후 4시 55분 대구시와 지난 8월 맺은 신규 시설 투자 관련 확정 공시를 했다. 시간외 단일가 거래가 이뤄지던 시점이었다. 약 1시간 뒤에는 코스닥 상장사인 제이오 최대주주가 약 75만 주를 이수페타시스에 양도하는 최대주주 변경 수반 양수도 계약 체결 공시가 올라왔다.

통상 신규 시설 확장과 최대주주 변경은 주식시장에서 호재로 통해 주가 부양을 가져온다. 신사업 추진, 기업의 체질 개선 등 새로운 경영 체제에 대한 기대감이 주가에 반영되기 때문이다. 새로운 최대주주 체제가 경영권을 확보할 수 있는 주식 지분을 인수할 때 시장가보다 높게 금액을 책정하는 경영권 프리미엄이 반영될 수 있다는 기대감도 있다.

이후 주가는 오후 4시 50분 3만1650원에서 오후 5시 3만3000원까지 뛰었다. 결국, 이날 시간외 단일가 매매가 종료되는 시점인 오후 6시 기준 이수페타시스 주가는 전날 정규장 종가보다 약 5% 오른 3만2000원에 거래를 마쳤다. 반면 악재성 공시인 대규모 유상증자는 같은날 오후 6시 44분에 나왔다.

이수페타시스는 시설 자금과 타법인 증권 취득을 위해 5500억 원의 주주배정 유상증자를 진행한다고 공시했다. 시가총액인 2조80억 원의 27.3%에 달하는 수준이다. 유상증자를 실시한 후 이중 2998억 원은 이차전지 소재 기업 제이오의 지분 인수 자금으로 활용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의혹이 커지는 대목은 이같은 유상증자와 시설 투자 관련 안건을 결정했던 이사회가 8일 오전 9시에 이미 진행됐었다는 점이다. 이미 기업 내부적으로 확정됐던 사안을 같은날 3차례에 걸쳐 시차를 두고 호재성 정보와 악재성 정보를 구분해 투자자들에게 공개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나오는 이유다.

이에 대해 메리츠증권은 “이수페타시스의 주주는 AI 기반 MLB 기판의 고성장을 공유하기 위한 투자자이지 이차전지 투자자가 아니다. 주주배정 유상증자를 통해 진행하는 만큼 투자자들의 공감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최근 전기차 캐즘으로 성장성이 둔화되고 있는 시점에서 제이오를 인수하는 것에 대해서도 “이해할 수 없는 결정”이라며 보수적 투자가 요구된다고 판단했다.

이수그룹은 이미 계열사 중 이차전지 소재사인 이수스페셜티케미컬을 보유하고 있다. 이수페타시스의 제이오 인수를 납득하기 더욱 어려운 부분이다. 투자자들의 분노는 이처럼 주주가치를 전면으로 대치하는 이수페타시스가 코리아 밸류업 지수 포함 종목이라는 점에 대해서도 커지고 있다. 이날 코스피 시장에서 이수페타시스 주가는 전장보다 22% 넘게 하락한 2만4550원에 거래를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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