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시각] 트럼프 당선에 떠올린 아베의 골프장 ‘벌러덩’

입력 2024-11-11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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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준호 국제경제부장

골프장서 트럼프 뒤쫓다 데구르르
일본 정치인들, 모욕 개의치 않고 외교 정성
본받친 못해도 발목잡는 일 피해야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지난주 치러진 대통령선거에서 압승을 거두면서 132년 만에 역대 두 번째로 징검다리 재선에 성공한 대통령이 되자 문득 스치는 장면이 있었다.

바로 2017년 11월 일본을 방문한 트럼프 당선인과 함께 골프를 치던 중 벙커에서 나오려다 중심을 잃고 벌러덩 넘어졌던 고(故)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의 모습이다. 당시 그런 우스꽝스러운 모습은 전 세계적으로 조롱거리가 됐다.

골프 실력에서 트럼프보다는 아래였던 아베가 황급히 게임 페이스를 따라가려다 이런 ‘몸개그’를 연출한 것이다. 일본에서는 굴욕외교라는 비판이 빗발쳤고 워싱턴포스트(WP)는 이런 골프 접대에 “아베는 트럼프의 ‘충실한 조수’에 불과하다”는 혹평을 내렸다.

당시 아베의 모습에 폭소를 터뜨리기는 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한 나라의 수장이 웃음거리가 되는 것을 개의치 않고 온갖 정성을 들여 미국 대통령을 구워삶는 모습에 깊은 인상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트럼프를 둘러싼 일본 정치인들의 밀착 마크가 아베에서 끝나지 않았다는 점도 주목해야 한다.

일본 총리를 지냈으며 아베 전 총리 시절 부총리였던 아소 다로가 올해 4월 뉴욕의 트럼프타워를 직접 방문해 트럼프를 만난 것이다. 이는 단순한 회동이 아니다. 둘의 회동이 있기 약 2주 전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미국을 방문해 조 바이든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했다. 뒤이어 거물 정치인을 보내 트럼프에게 ‘우리는 당신을 절대 잊지 않고 있다’는 성의 표시를 한 것이다.

사실 트럼프 당선인은 한국 못지않게 일본을 싫어하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일찌감치 1980년대 일본이 막대한 무역흑자와 더불어 미국의 부동산을 싹쓸이한 것을 지적하면서 강하게 비판해 왔다.

대선 유세 과정에서도 일본은 항상 비판의 대상이었다. 심지어 아베에게도 2018년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에서 “멕시코 이민자 2500만 명을 일본에 보낸다면 당신은 퇴임하게 될 것”이라고 막말을 퍼붓기도 했다. 그러나 일본 정치인들은 트럼프와의 돈독한 관계 구축에 온갖 정성을 쏟았다.

반면 우리는 ‘정(情)의 민족’이라면서 트럼프처럼 유력한 해외 인사와의 교류나 인간적 관계 구축은 오히려 일본보다도 약하다는 느낌을 줘 아쉽기 그지 없다.

이를 상징하는 것이 문재인 전 대통령의 발언이다. 문 전 대통령은 트럼프의 당선이 확정됐던 6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미국 제47대 대통령으로 당선된 트럼프 전 대통령에게 축하를 보낸다”며 “트럼프 대통령은 적대적인 상대와도 평화를 협상할 수 있는 용기 있는 지도자”라는 글을 올렸다.

문제는 문 전 대통령이 2021년 4월 뉴욕타임스(NYT)와의 인터뷰에서는 지금처럼 덕담이 아니라 트럼프의 대북 정책에 대해 “변죽만 올렸을 뿐 성과를 거두지는 못했다”고 비판했다는 점이다. 트럼프는 문 전 대통령의 발언에 격분해 뉴욕포스트에 이메일 성명을 보내 “문 (당시) 대통령은 지도자이자 협상가로서 약했다”고 반박했다. 일본 총리는 트럼프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자 골프장에서 데굴데굴 구르기도 하거나 현직 미 대통령과 만난 뒤 다른 거물 정치인을 보내 트럼프의 체면을 살려줬는데 우리는 오히려 원한만 산 것이다.

만일 문 전 대통령이 3년 전 NYT와의 인터뷰에서 트럼프를 비판하는 대신 6일 페북에 올린 글처럼 칭찬했다면, 또 2022년 5월 퇴임하고 나서 개인 자격이라도 뉴욕 트럼프타워를 찾아 트럼프와 악수하고 서로 덕담하는 모습을 연출했다면 어땠을까. 하다못해 우리나라 외교관들이 트럼프 측에 할 말이 더 생겼을 것이고 트럼프의 한국에 대한 혐오도 조금이나마 약해졌을 것이다.

우리나라 정치인들이 일본의 지극정성을 본받지는 못하더라도 외교 발목을 잡는 일은 피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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