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청이는 티메프를 인수하려는 투자자가 나타날 가능성이 있다.”
최효종 법무법인 린 변호사는 23일 본지와 만나 대규모 미정산 사태로 회생절차에 들어간 티몬·위메프(티메프)의 상황에 대해 “망해가는 회사를 누가 사겠느냐는 회의론에도 이스타항공, 쌍용자동차 역시 건실한 자본에 인수돼 신뢰를 회복했다”며 이같이 관측했다.
최 변호사는 과거 기업회생을 거친 이스타항공과 쌍용자동차, 메쉬코리아 사건 등을 자문했던 20년 경력의 기업도산 사건 전문가로, 이번 티메프의 자율적 구조조정 지원(ARS) 과정에서 채권자 측 유일한 변호사로 지난 1·2차 회생절차 협의회에 참석한 바 있다.
핵심은 법원이 최종 결정할 ‘변제율’이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티메프의 채무는 1조3000억 원이다. 법원이 통상적인 유통업계 회생 사건에 준해 30~40% 선의 변제율을 확정한다면 티메프 인수 자금은 3900억~5200억 원 사이로 결정될 수 있다. 이커머스 플랫폼에 대한 사업 구상을 품은 투자자로서는 모종의 가능성을 점쳐볼 수 있는 ‘할인가’를 제안받는 셈이다.
다만 이 과정에서 정부의 적극적인 대응이 필수적이라고 당부했다. 최 변호사는 “티메프는 유통업계의 ‘회생 1번 타자’이고 동종업계에는 회생을 기다리는 2번, 3번, 4번 타자가 줄줄이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라는 점을 짚으면서 “최근 건설사가 PF 문제로 대규모 파산 우려를 겪을 때 정부에서 적극적으로 개입해 공매 자제 대책을 세우고 금융 지원을 해준 것처럼, 티메프 사건 역시 한국 이커머스 산업 전체로 퍼질 수 있는 큰 연쇄 위기의 시발점이라는 인식을 갖고 적극적인 지원 대책을 마련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티메프는 본격적인 회생 절차 돌입에 앞서 채권자와 약 1개월 간 직접 협의하는 ARS 프로그램을 거쳤지만, 의미 있는 결론을 도출하지는 못했다. 법원은 회생 개시 결정을 내렸고 티메프는 다음 달 10일까지 약 10만 명의 채권자에게 갚아야 할 채무가 얼마인지 구체적으로 밝히는 ‘채권 목록’을 법원에 제출해야 한다. 채권자는 이 목록이 자신들이 지급받아야 할 금액과 일치하는지를 확인하고, 사실과 다른 경우 10월 24일까지 정확한 채권액을 법원에 신고해야 한다.
최 변호사는 “경험에 의하면 회생 신청 기업이 제출한 채권 목록과 채권자가 주장하는 금액은 맞지 않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기업은 가급적 금액을 적게 주장하고 채권자는 많게 이야기하는 것이 통상적인 상황”이라는 것이다. 때문에 법원에서는 필수적으로 신뢰할 수 있는 관리인을 선임해 조사 과정을 거친다. 티메프와 채권자의 주장을 모두 확인한 관리인은 11월 14일까지 정확한 채권액을 파악하는 채권조사 절차를 진행할 예정이다.
문제는 이 과정 끝에도 채권자가 주장하는 금액이 제대로 반영되지 않을 경우다. 이 경우 12월 14일까지 재판을 제기해 바로잡아야 한다. 최 변호사는 “채권이 10억 원인데 관리인이 인정한 채권이 5억 원에 불과하다면 나머지 5억 원에 대해서는 ‘회생채권 조사 확정 재판’을 제기하고 법원을 통해 채권액을 가려야 한다”면서 “수 천, 수 만 명이 이 재판을 걸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시간이 많이 소요될 것”이라고 했다.
전반적인 회생 절차가 장기화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최 변호사는 티메프가 12월 27일까지 회생계획안을 제출하는 것도 쉽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전체 회생 절차로 보면 현재 티메프 상황은 ‘극초기’로 회생계획안 제출 역시 내년으로 연기될 수 있다”면서 “과거 500명 넘던 티메프 직원이 지금은 대부분 퇴사한데다 전산망 시스템도 부실화된 상황에서 채권자별 채권액을 확인하고 회생계획안을 작성하는 데 어려움이 상당히 많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때문에 “정부가 그 기간 동안 채권자에게 저금리 대출을 해주거나 세금을 유예해 주는 등 살길을 열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법조계에서는 티메프 회생 성공이 ‘건실한 인수자의 등장’ 여부에 달려있다고 본다. 최 변호사는 인수자가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는 시점은 적어도 조사보고서가 나오는 11월 24일 이후일 것으로 예측했다. 그는 “1~2년 전 나온 감사보고서는 이미 과거의 얘기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최 변호사는 “기업의 자산, 부채, 계속기업가치와 청산가치 등 전반적인 상태를 가장 객관적이고 적확하게 파악할 수 있는 조사보고서가 나와봐야 인수인도 회사를 인수할지, 인수금액을 얼마로 정할지 등의 의사결정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그런다고 누가 망한 기업을 인수하겠느냐’는 회의적인 시각도 나오지만, 과거 이스타항공과 쌍용자동차의 회생 사례를 든 최 변호사는 “기적적으로 인수자가 나타날 가능성도 있다”고 했다. 그는 “특히 이스타항공의 경우 비행기도 전부 리스였던 데다가 아무런 재산도 없는 ‘깡통 회사’로 불리면서 티메프보다 인식이 더 안 좋았음에도 나중에는 인수자가 두 군데나 나타나 성공리에 인수합병이 마무리됐다”는 점을 들었다.
국면 전환은 ‘변제율’에 달렸다. 자율 구조조정 절차 당시에는 인수자가 티메프 채권 1조3000억 원 전액을 변제해야 했지만, 회생 절차에 돌입하면 법원의 계획에 따라 그 금액이 반 이상 줄어들 수 있기 때문이다. 최 변호사는 “1조3000억 원이 5000억 원으로 준다면 인수자에게는 매력지점이 생기는 것”이라면서 “다들 ‘저 망한 회사를 누가 사느냐’라고 얘기하지만 그런 위기에서 오히려 역설적인 투자 기회를 보는 기업가는 언제나 있었다”고 말했다. “한국 이커머스 시장의 향후 성장 가능성을 주목하는 국외 투자자도 있을 수 있다”는 점도 짚었다.
최 변호사 역시 “소액 채권자로서는 아예 포기하기엔 너무 아까운 돈이라 문의를 해오시지만 자세한 설명을 들은 뒤에는 ‘변호사를 선임하기엔 너무 적은 금액인 것 같다’며 수임을 포기하는 경우도 많다”고 했다. 적어도 피해 금액이 ‘억 대’는 돼야 법률서비스 이용을 고려하게 되면서 ‘없는 사람은 지레 마음을 접는’ 상황이 발생하는 셈이다. 기업의 관리 부실로 인한 무거운 책임을 무고한 영세 자영업자가 나눠지는 부당한 상황에 대해 근본적인 비판이 나오는 배경이기도 하다.
최 변호사 역시 “저런 회사는 망하게 내버려두는 게 가장 바람직하고 정의로운 것 아니냐는 말을 자주 듣는다”고 했다. 다만 그는 “트럼프 전 대통령도 미국에서 4번 파산했다”면서 “세계 최고의 자본주의 국가인 미국이 사회주의적 제도에 가까운 회생·파산이 가장 발달한 나라라는 사실은 얼핏 모순적으로 보이지만, 장기적인 자본주의 발전을 위해서는 그 편이 더 낫다는 사회적 합의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미국의 뒤를 이어 한국이 기업 회생·파산 제도가 가장 발달한 것 역시 “이 같은 가치관을 받아들이는 과정일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