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감 후] 한국은행의 소수의견

입력 2024-09-09 06:00 수정 2024-09-09 1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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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리를 내려야 한다’고 옆에서 얘기하는 건 쉽겠죠, 그 결정을 내리는 사람들은 고민이 많을 겁니다.”

한국은행 직원과 8월 기준금리 동결 결정을 곱씹던 중 한은 직원이 한 말이다. ‘기준금리에 대한 관심이 이렇게 높았던 때가 있었나 싶다’는 게 대화의 시작이었다.

지난달 22일 한은 금융통화위원회에서는 기준금리 3.50%를 ‘전원일치’로 동결했다. 시장의 예상이 빗나간 부분은 소수의견이 없었다는 것이다. 한은 직원도 소수의견 1~2명은 나올 거라고 예상했었다고 했다. 하반기로 접어들면서 물가도 2%대(7월 소비자물가 상승률 2.6%)로 떨어진 만큼 이창용 총재가 언급했던 ‘라스트마일(last mile)’ 구간을 넘었다는 인식이 생겼기 때문이다. 8월 금통위가 끝난 이후 발표된 ‘8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한은의 물가안정 목표 수준인 2.0%도 달성했다.

금통위의 금리 동결 결정 이후 금리 인하를 하지 않은 것에 대한 아쉬움의 목소리가 지금까지도 나온다. ‘내수가 어려운데 금리를 내렸어야 했다’는 게 이유다. 대통령실에서도 “금리 결정은 금통위의 고유권한이지만 내수 진작 측면에서 보면 아쉬움이 있다”고 언급했다. 민간 경제연구원에서도 금리를 내려야 한다는 분석을 담은 보고서를 내놓고 있다.

현대경제연구원은 통화정책에 대해 “경기 하방 압력을 완화하는 역할도 필요하다”고 했고, 한국경제인협회 산하 한국경제연구원(한경원)은 “고금리 유지의 적절성을 합리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8월 기준금리 동결이 ‘옳았다’는 분석은 찾기 힘들다. 어느새 한은이 ‘소수의견’ 입장에 놓인 것이다. 지난달 기준금리를 동결한 금통위원들의 견해는 10일 공개될 의사록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차선을 바꾸려는 한은 금통위의 운전대를 꽉 붙잡은 것은 가계부채였다. 당초 7월부터 시행하기로 했던 2단계 스트레스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규제를 9월로 연기하면서 그 두 달 사이에 주택담보대출이 급증한 것이다. 한은에서 집계한 7월 주담대는 5조6000억 원, 은행권에서 집계한 8월 주담대는 8조 원대로 나타났다.

이창용 총재는 기준금리를 동결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에 대해 이례적으로 언급했다. 모교인 서울대에서 개최한 교육개혁 심포지엄에서 “구조적인 제약을 개선하려고 하지 않고 단기적으로 고통을 줄이는 방향으로 통화·재정정책을 수행한다면 부동산과 가계부채 문제는 지난 20년과 같이 나빠지는 악순환이 계속될 것”이라며 “이번 금통위 결정은 한 번쯤은 이러한 악순환의 고리가 바람직하지 않다는 사실에 대한 경각심을 주고, 이번 정부가 지난 20년의 추세를 처음으로 바꿔주는 정부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담겨 있다”고 말했다. 금리 동결에 대해 비난하는 여론을 향해 총재이자 금통위 의장으로서 작심발언을 던진 것이다.

이 총재는 8월 금통위 이후 열린 기자간담회에서도 정부와 견해가 다르다는 의견을 내비쳤다. 당시 “당연히 금리인하가 소비에 긍정적인 효과를 주겠지만 그 양은, 지금 정치권이라든지 다른 여러 기관에서 금리를 낮춰야 소비가 많이 회복된다고 하는 것은 저는 시간이 좀 더 걸릴 것 같다”고 말했다. 정부와 한은의 시선이 다름을 일문일답에서 드러낸 것이다.

‘한은 독립성’에 대한 인식이 변하고 있다. 과거에는 정부나 민간에서 금리에 대해 언급만 해도 ‘신성불가침’ 영역을 건드는 것 같은 반응이 일었다. 그러나 최근에는 ‘금리에 대해서 누구나 언급은 할 수 있다’는 생각 속에 ‘기준금리는 금통위가 독립적으로 결정한다’는 인식이 커지고 있다.

한은법에는 ‘한국은행의 자주성은 존중되어야 한다’고 명시돼 있다. 어느새 소수의견이 돼버린 한은의 정책방향과 법에 명시된 한은의 독립성이 동시에 주목받고 있다. 정부와 민간, 유주택자와 무주택자, 기업과 근로자 등 여러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있는 요즘이다. 올해 기준금리를 결정하는 금통위 회의는 10월과 11월 단 두 번 남았다. 남은 두 번의 금통위를 통해 한은의 의견과 자주성이 비판이 아닌 존중받을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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