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 상황 위기, 경영에 집중"...아시아소사이어티코리아 회장직도 사임
“말레이시아의 입지적 장점을 활용해 원가 경쟁력을 더욱 높이고 세계 최고 품질의 동박을 생산할 수 있도록 노력할 필요가 있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이차전지 등 미래 신성장 사업 주도권 확보를 위해 말레이시아 동박 생산라인 임직원들을 찾았다. 신 회장은 최근 국내는 물론 해외 현지 공장을 잇달아 챙기며 현장 점검과 새 먹거리 찾기 행보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그는 그룹의 현 상황을 그 어느 때보다 위기라고 판단, 17년 간 애정을 가지고 이끌어온 ‘아시아소사이어티코리아(Asia Society Korea)’ 회장직도 최근 돌연 내려놓고 본업인 경영에 힘쓰겠다는 각오다.
18일 롯데그룹 따르면 신동빈 회장은 전날 말레이시아 사라왁주 쿠칭 소재 롯데에너지머티리얼즈 스마트팩토리를 방문해 이차전지 소재 사업을 점검하고 현지 임직원을 격려했다. 이는 지난달 롯데이노베이트 자회사인 이브이시스(EVSIS)의 청주 신공장을 방문, 전기차 충전기 사업을 챙긴 데 이은 신사업 경영행보의 일환이다. 이번 일정에는 이훈기 롯데 화학군 총괄대표와 김연섭 롯데에너지머티리얼즈 대표이사가 동행했다.
신 회장이 방문한 말레이시아 롯데에너지머티리얼즈 스마트팩토리는 2019년부터 이차전지 주재료 중 하나인 동박을 생산하고 있다. 동박은 구리를 얇게 펴 만든 막으로 이차전지 음극집전체에 사용된다. 이 곳에서 생산되는 제품은 8㎛(마이크로미터)이하의 얇은 두께가 특징이다. 롯데에너지머티리얼즈는 작년 말 말레이시아에 5공장과 6공장을 준공해 연내 본격 가동을 앞두고 있다. 이를 통해 롯데의 말레이시아 내 동박 생산 규모는 기존보다 2만 톤(t) 늘어 연간 6만 톤에 이르게 됐다. 이는 롯데그룹 전체 동박 생산량 중 75%에 달하는 규모다. 롯데는 이를 바탕으로 지속적으로 동박 생산량을 확대하는 한편 말레이시아를 향후 해외 진출 생산 거점으로 활용한다는 계획이다.
말레이시아는 낮은 전력비와 인건비를 바탕으로 원가 경쟁력 측면에서 강점이 있고 연중 기온과 습도가 일정한 지역 특성 상 품질 유지에도 유리하다. 아울러 풍부한 강우량을 기반으로 수력발전 중심 전력망이 구축돼 있어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을 강조하는 해외 고객사들로부터 호응을 얻고 있다. 롯데는 말레이시아와 전북 익산에 생산시설을 가동한 데 이어 향후 유럽ㆍ북미시장 대응을 위해 스페인과 미국에 동박공장 건설을 추진하고 있다.
신 회장이 이처럼 신산업 육성에 적극적으로 나선 배경에는 그룹의 미래 먹거리인 4대 신성장 사업에 대한 열정에서 비롯된다. 신 회장은 연초 신년사를 통해 “글로벌 불확실성 확대 속 기회를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위기를 타파하기 위해 부진한 사업을 과감하게 매각하고 4대 신성장 사업(바이오ㆍ메타버스ㆍ수소에너지ㆍ이차전지)을 중심으로 사업을 확장하는 ‘선택과 집중’ 전략 필요성을 강조했다.
신 회장의 미래 신사업에 대한 각오는 17년간 맡아왔던 아시아소사이어티코리아 회장직 사임 결정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아시아소사이어티코리아는 국제 민간외교단체 아시아소사이어티의 한국지사로, 그간 한·미 및 아시아·태평양 지역을 연결하는 교두보 역할을 맡아왔다. 신 회장은 최근까지 부산 엑스포 유치 활동에도 아시아소사이어티코리아 회장직을 전면에 내걸을 정도로 열정을 보였다. 하지만 신 회장은 최근 경영에 집중하겠다는 의사를 표시하며 회장직 사임 의사를 이 단체에 전달했고, 아시아소사이어티코리아는 이를 수용한 직후 회장 후임자를 구하지 못해 해산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