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수위, 중대재해법 처벌 완화 검토…하위법령 수정
노동계 “빠져나갈 여지 만들어 주는 것”
중대한 산업재해가 발생하면 경영책임자까지도 처벌할 수 있게 한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된 지 100일을 맞았다. 효과는 있었을까. 1분기 산업재해로 숨진 노동자는 157명,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8명 감소하는데 그쳤다. 산재를 막기 위해선 사업주와 경영자를 처벌하면 된다는 고용노동부의 ‘특단의 대책’으로 불렸지만, 100일간의 성적표를 보면 실효성은 크지 않았다.
시행 이후 재계의 현장은 혼란의 연속이었다. 특히 중소기업들은 모호한 법령과 대응 여력이 부족해 제대로 된 대응을 하기 힘들었다. 중소기업 10곳 중 8곳은 중대재해법으로 경영상 부담으로 느끼고 있었고, 중대재해법 의무사항을 모른다고 응답한 비율도 절반에 달했다.
이러한 배경에는 법의 모호성이 있다. 중대재해법의 의무사항과 면책조건이 불명확하다고 경영계는 입을 모은다. 구체적으로 법에서 명시한 경영책임자 개념과 범위가 불명확하다. ‘이에 준하여’의 의미와 ‘안전보건에 관한 업무를 담당하는 사람’이란 모호한 표현으로 경영책임자가 기업의 누구를 지칭하는 것인지 알 수 없다. 중대재해법의 재해 범위를 구체적으로 규정하지 않았다. 경영책임자가 준수해야 할 ‘관계 법령’과 ‘범위’가 어디까지인지 파악할 수 없다.
경영계 등은 법의 ‘불명확성’이 기업활동을 옥죌 수 있다며 법의 보완을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에게 직접 요청했다. 중소기업들은 △사업주 의무 내용 명확화(60.8%) △면책규정 마련(43.1%) △처벌 수준 완화(34.0%) 순으로 중대재해법 보완이 시급하다고 꼽았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도 선거 운동 당시 중대재해법의 문제점을 지적하며 보완의 필요성을 시사했다.
오는 10일 출범을 앞둔 윤석열 정부는 중대재해법을 개선·보완한다고 밝혔다. 대통령직 인수위원회는 3일 중대재해법의 불확실성을 해소하기 위해 산업안전보건 관계 법령 수정이 담긴 ‘윤석열 정부 110대 국정과제’를 발표했다.
인수위는 중대재해법 개선을 위해 하위법령인 산업안전보건법의 보완 검토를 하겠다는 방침이다. 중대재해법은 상당수의 개념을 산업안전보건법에서 인용하기에 이를 수정한다는 것이다. 인수위는 이를 수정할 시 중대재해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경영책임자의 의무인 ‘안전 및 보건확보 의무’가 명확해질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인수위는 “산업안전보건 관계 법령을 정비해서 현장 불확실성을 해소하고, 지침·매뉴얼을 통해 경영자의 안전 및 보건확보 의무 명확히 하겠다”라고 밝혔다.
이러한 법 개정을 기반으로 윤 정부는 중대재해 감축 목표를 수립하고 세부 추진과제를 마련한다. 인수위는 각기 다른 지역·업종의 맞춤형 산재예방 및 안전관리 지원, 고위험 공정 등 소규모 사업장 지원사업 개편안도 국정과제에 담았다. 산재 예방 인프라 확충을 위해 웨어러블 로봇 등 스마트 안전장치·설비 개발 및 발굴하겠다는 내용도 담겼다. 고위험사업장을 예측하고, 맞춤형 예방대책을 추천하는 등의 산재예방 종합포털도 마련할 방침이다.
문제는 중대재해법 개편에 대해 야당과 노동계 등의 반대를 어떻게 넘길 것인가다. 경영계는 구체적인 지침이 나오지 않았고, 나오더라도 불투명해 추이를 지켜봐야 한다는 목소리도 냈다. 재계 한 관계자는 “현재까지 나온 내용을 보면 중대재해법의 전면 개정은 아니고 시행령 보완 수준 정도로 볼 수 있다”며 “3개월여밖에 되지 않은 법안을 개정하려 해도 국회에 절반을 넘는 의석을 가진 민주당의 문턱을 넘기는 것이 난관”이라고 지적했다.
노동계는 중대재해법령 개정이 사실상 면책 조항을 만드는 것이라고 우려를 나타냈다. 한국노총은 국정과제가 발표된 후 성명서를 내고 “중대재해처벌법의 안전·보건 확보의무를 산업안전보건법의 안전보건 조치의무와 유사하게 만들어 경영책임자와 법인이 수사와 재판에서 빠져나갈 수 있는 여지를 만들어 주는 것이다”며 “지침·매뉴얼을 통한 방식은 안전보건규제를 형해화하는 대표적 방법”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