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석의 원견명찰(遠見明察)] 동행

입력 2021-02-17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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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일렉트릭 사장, 전 지식경제부 차관

한때 유행했던 중국의 무협소설에 단골로 인용되는 두 개의 문구가 있다. 그리고 이 두 문구는 상반되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장강의 뒤 물결이 앞 물결을 치는 법”이라고 말하는 것은 젊은 신인이 무림의 명성 높은 고수를 상대하면서 하는 말이다. 이제 새로운 세대에 자리를 물려줄 때가 됐다는 표현을 은유적인 비유로 말하는 것이다. 이와 반대되는 “생강은 늙을수록 맵다”라는 표현은 나이든 어른의 경륜을 무시하지 말라는 의미로 사용한다. 많은 경우 젊은 주인공이 승부에서 이기기는 하지만 이런 표현을 쓰는 경력자에게서 특별한 초식을 배우게 되는 내용으로 전개된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새로운 세대와 기성세대가 어떻게 관계를 형성하는지가 그 사회의 미래를 결정한다. 대한민국은 지난 50년간의 압축 성장으로 전 세대와의 삶의 질 격차가 다른 어디보다 큰 사회이다. 세대 차이를 넘어서 더불어 같이 가는 동행이 절실한 이유이다.

가난의 질곡을 벗어나 초고속 성장의 흐름을 타고 전 국민이 하나가 되어 노력하던 시절에는 먹고사는 문제가 가장 중요했다. 문화생활이 사치라고 생각할 수도 있는 시대를 살아온 사람들에게 미국이나 일본은 경제적으로뿐만 아니라 모든 면에서 우리보다 앞선 나라였다. 그러기에 그들의 대중문화마저 따라 하고 싶어 하는 마음도 있었을 것이다. 1950년대 대작 영화인 ‘벤허’나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를 보면서 부러워했고, 비틀스의 팝송을 들으면서 영어 단어를 암기하기도 했던 시절이었다.

21세기 대한민국은 완전히 다른 모습이다. 세계 10위의 경제 대국이라는 자부심을 바탕으로 하는 젊은 세대의 자신감은 기성세대의 상상을 뛰어넘는 수준이다. 최근에 읽은 사회비평 도서 ‘추월의 시대’에는 이러한 젊은이의 생각이 잘 갈무리되어 있다. 1980년대 출생인 이 책의 저자들은 한국 사회를 “현명한 낙관론”의 시각으로 바라보면서 미래에 대한 자신감 있는 제언을 하고 있다. 산업화 세력과 민주화 세력의 대립으로 바라보던 역사관을 통합하여 그들의 공로를 모두 인정하고 자연스럽게 새로운 세대로의 진화를 그려내고 있다. 책을 읽으면서 맨 먼저는 기성세대의 일원인 나 스스로에 대한 성찰이 뒤통수를 때렸다. 나는 젊은이에게 무언가를 배우려는 생각보다는 무언가를 가르치겠다는 생각이 더 크지 않았냐는 반성도 하게 되었다. 소통한다고 하면서 이들의 생각을 알기 위한 노력을 얼마나 했는가라는 질문을 던지면서 자연스럽게 저자들이 정리한 새로운 세대의 생각들과 있는 그대로 마주하게 됐다.

새로운 세대는 성취된 산업화와 민주화의 세례를 동시에 받고 그것들이 몸에 밴 세대이다. 키와 덩치 등 외형만 커진 것이 아니고 속까지 꽉 찬 성숙한 모습이다. 이들은 이제 아무런 거리낌도 열등감도 없이 당당하게 자신을 표현한다. 쟁쟁한 영어권 영화를 추월하여 아카데미 상을 거머쥔 ‘기생충’이나, 전 세계 젊은이들의 호응과 탄성을 받는 가수 ‘방탄소년단’이 너무도 자연스러운 그들의 일상이다. 간혹 나오는 특출한 천재의 예외적인 상황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이 나라의 젊은이라면 누구라도 도전할 만한 일일 뿐이다. 몇 년 전 인기를 끌었던 드라마 ‘미스터 선샤인’에서는 기성세대가 실패한 역사로 평가하는 19세기 말 상황에서마저도 우리의 힘을 찾아내고 있다.

역사의 수레바퀴는 앞뒤 바퀴가 함께 굴러야만 앞으로 나아간다. 젊은 세대의 자부심과 당당함을 인정하는 만큼 축적의 시간을 쌓아 온 기성세대의 경륜이 필요하다. 우리가 이루어 낸 경제 발전과 민주화라는 성취는 결코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음을 우리 모두 안다. 이제는 우리의 소중한 역사를 차분하게 돌아보고 새로운 시대로 나아가야 할 때이다. 갈등을 넘어 통합의 시대로 가는 길만이 세대를 아우르는 시대 정신이다. 기성세대는 잘 익은 노련함으로 경험과 자산을 다음 세대에 이어줘야 한다. 젊은 세대는 겸손한 마음으로 과거에서 지혜를 찾는 진정한 자신감을 가져야 한다. 젊은 자신감과 익은 노련함의 행복한 동행을 준비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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