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반도체·전지 산업이 올해 기저효과에 힘입어 호황을 맞이할 전망이지만, 미래 10년을 위한 투자환경은 오히려 악화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각 산업별 경쟁이 거세지는 추세인 데다, 최근 투자 리스크를 증가시키는 각종 규제가 추가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자동차산업협회, 한국기계산업진흥회, 한국섬유산업연합회, 한국철강협회, 한국전지산업협회 등 국내 산업협회가 모여 발족한 한국산업연합포럼은 22일 제7회 산업발전포럼을 열고 이같이 밝혔다.
정보통신(IT) 산업 부문에선 안기현 한국반도체산업협회 상무, 하몽열 한국전자정보통신산업진흥회 실장, 김대기 SNE리서치 부사장, 남상욱 산업연구원 부연구위원 등이 주제 발표를 진행했다.
내년 반도체 산업의 경우 수요처 영업 개선세와 제한적 공급 증가로 올해와 비교해 업황 개선이 예상된다. 전체 시장 규모는 8%, 국내 반도체 수출은 10% 성장이 점쳐진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인해 올해 성장치가 예상한 것에 미치지 못했고, 이에 따른 기저효과가 내년에 나타날 것이라는 분석이다.
안기현 상무는 “5G 단말기의 본격적인 확산, 데이터센터 투자 재개를 통한 메모리·시스템반도체 동반 성장이 예상된다”며 “메모리 반도체에선 시장 지배력을 유지하면서 안정적 공급전략을 추진하는 방향으로, 시스템 반도체는 파운드리 고객을 확보하기 위한 경쟁력을 높이는 방향으로 시장이 전개될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투자에는 고삐를 늦출 수 없는 상황이다. 반도체 산업 주도권을 잡고 있는 미국, 유럽, 소부장(소재·부품·장비) 강국인 일본, 공격적인 투자를 이어가고 있는 중국 등 쟁쟁한 경쟁자들에 맞서야 하기 때문이다.
특히 중국의 경우 2025년 자립화 70%를 목표로 대규모 투자를 멈추지 않고 있다. 일례로 시스템 반도체 설계 산업의 경우 중국 업체 2000개, 한국 150개 수준으로 이미 중국에 추월당한 상태다. 제조 분야는 아직 한국이 앞서 있지만, 안심할 수 없다.
대표적인 국내 반도체 미래 투자계획은 평택 삼성 반도체 클러스터(133조 원), 용인 SK하이닉스 반도체 클러스터(120조 원) 등이 꼽힌다.
다만 안 상무는 투자 환경이 이전보다 악화했다고 짚었다. 도로, 전기, 용수 등 허가에 인허가 기간만 1년 이상 소요되고, 민원에 따라 일정이 지연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또 최근 도입된 한국형 증거수집제도, 중대재해기업처벌법으로 기업들의 투자 리스크가 증가한 상황이라고 봤다.
안 상무는 "지금 반도체 산업 투자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양사 중심으로 진행되는 면이 있는데 반도체 강국이 되려면 다른 회사들의 투자도 필요하다"라며 "반도체 시설 투자에 큰돈이 들어가고, 회수하는 데 시간이 많이 드는 리스크가 있는 만큼 이를 상쇄하기 위해 정부의 과감한 인센티브 정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전지 시장은 올해 4분기를 기점으로 대폭 성장이 기대된다. 반도체 산업과 마찬가지로 올해 코로나19로 인한 기저효과가 나타날 전망이다. 김대기 SNE리서치 부사장은 "올해 4분기 글로벌 전기차 판매량은 전 분기 대비 54% 성장할 전망이며, 이에 따라 내년 전기차 배터리 시장은 올해 대비 65% 성장할 것"이라고 말했다.
글로벌 전기차 시장이 2030년까지 연평균 21% 높은 성장률을 지속할 것으로 예측되는 만큼, 주요 배터리 회사들은 지속적인 생산능력(CAPA) 증설을 진행 중이다.
한국 배터리 3사 역시 시장 성장에 대응하기 위한 적극적인 투자를 진행 중이다. 일례로 LG에너지솔루션의 경우 2025년까지 13조 원 이상 지속적인 투자가 예상된다.
다만 김 부사장은 "양극재·음극재를 비롯한 4대 핵심소재에 대한 동반 투자는 부족한 상황"이라며 "양극재를 제외한 모든 핵심 소재에서 중국 의존도가 커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한 "전기차 산업에서 배터리 성장세가 가파르긴 하지만, 배터리 팩 조립, 모터, 인버터 등 전체 서플라이 체인이 골고루 발전하지 못하고 있는 점은 아쉽다. 이에 대한 투자 전략을 보완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디스플레이 업계에선 투자 위험 요인으로 중국의 대규모 투자에 따른 수익성 하락을 꼽았다.
남상욱 산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올해 디스플레이 산업 국가별 점유율에서 한국이 37.3%를 기록하면서 중국(36.3%)을 소폭 앞섰지만, 기술 추격 속도가 더 빨라지면 점유율 1위를 차지하는 마지막 해가 될 수도 있다"라며 "단기적, 일시적 지원보다는 중대재해법, 화관법(화학물질관리법)과 같은 규제들을 완화하는 조치가 필요하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