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에 따르면 모하메드 바르킨도 OPEC 사무총장은 이날 “석유시장의 안정과 질서를 목표로 역할을 확대해왔다”며, 1960년 OPEC 창설 이후의 발자취를 높게 평가했다. 맹주인 사우디아라비아(이하 사우디)를 주축으로 공급량을 조절, 세계 원유시장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해왔던 점은 분명하다. 하지만 최근 지각변동으로 인해 그 위상과 역할아 예전 같지 않다는 점 또한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다.
먼저 비회원 국가의 위상이 커졌다. 특히 미국은 셰일이라고 불리는 혈암층에서 원유를 추출하는 기술을 통해 2000년대부터 증산을 시작하더니, 2018년에는 러시아와 사우디를 웃도는 최대 산유국으로 자리매김했다. 이어 지난해에는 순수출국으로 돌아섰다. 공급과잉은 가격 침체를 불렀고, OPEC이 감산을 통해 가격을 지지하려고 해도 미국 셰일 업체가 자유롭게 증산해 이를 억제하는 구도가 형성됐다. 캐나다와 브라질도 증산하면서 OPEC의 생산점유율은 현재 40%를 밑돈다. 이미 2017년부터 협조 감산에 비회원국인 러시아에 협력을 구할수밖에 없었던 것은 카르텔의 한계를 드러낸 셈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아울러 석유의 지위 자체가 재생에너지 보급으로 흔들리고 있다. 태양광, 풍력의 발전 비용은 갈수록 줄어들고 있으며, 전 세계에서 기후변화 대응에 대한 의식은 높아지고 있다. OPEC은 2017년 전 세계 석유 수요가 2030년대에 최고점을 찍는 시나리오를 내놨다. 정점이 이보다 더 이르다는 예측도 있다.
게다가 올해에는 코로나19에 따른 수요 급감으로 상황이 더욱 어렵게 됐다. 각국에서 감염 확산을 막기 위해 도시 봉쇄 등 각종 제한 조치를 꺼내든 탓이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원유 수요가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상황 속에서 25년 만에 최저 수준으로 급감할 것으로 분석한 바 있다.
국제유가 벤치마크인 브렌트유 선물 가격은 배럴당 40달러 안팎으로 연초 대비 40% 저렴하다. 회원국 대부분이 재정 적자가 되는 수준이지만, 공급국 카르텔이 수요 부족에 대응할 수 있는 수단은 제한된다. 시장에서는 가까운 미래에 OPEC이 석유 가격을 크게 좌우한다고 생각하기는 어려우며, 시장이 주목하는 것은 중국과 미국의 수요라는 견해가 나온다.
다만 길게 보면 뜻밖의 시기에 분쟁 및 공급 중단으로 가격이 상승해 소비국에 혼란을 불러온 것이 석유의 역사이기도 하다. UBS의 지오반니 스타우노보 애널리스트는 “노후 유전의 생산이 둔화하고 신규 공급이 줄어드는 이상 과잉 재고가 해소되면 시장은 OPEC의 생산 여력에 의존하게 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