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달러화의 지배력이 강해지면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한 세계 경제의 충격이 더 가중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국제통화기금(IMF)은 20일(현지시간) 내놓은 ‘지배적 통화들과 외부 조정(Dominant Currencies and External Adjustment)’이라는 제목의 내부 토론 문건에서 “국제 무역과 금융을 지배하는 미국 달러의 지위가 글로벌 경제에서 코로나19 충격을 더 악화시킬 여지가 있다고 진단했다.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세계 경제가 침체에 빠지면서 신흥국 통화 가치는 달러 대비 급락했다. 이는 신흥국 사이에서 통화 약세를 통해 수출 경쟁력을 높이고,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경제를 자극할 것이라는 기대감을 불러일으켰다.
그러나 IMF는 주요 결제통화인 달러의 지배력이 커지면서 미국 이외 국가의 ‘통화 약세’가 과거만큼의 충격 흡수제 역할을 하지 못하게 됐다고 지적했다. 기업들이 수출 시 가격을 대부분 달러로 책정하기 때문에 자국 통화 가치가 약세여도 수요가 늘지 않는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달러의 지배력이 워낙 강해져 미국 달러 이외 통화의 가치 변동은 그다지 영향이 없다는 의미다. IMF에 따르면 전 세계 수출의 약 23%가 달러로 대금을 치르고 있다.
IMF는 무역에서 이처럼 엄청난 달러 의존이 미국 통화 가치를 글로벌 경제 성장의 핵심 동력이 되게 만들었다고 지적했다. 기타 고피너스 IMF 수석 이코노미스트와 구스타보 애들러 선임 이코노미스트 등 이번 내부 토론 문건 작성자들은 “무역과 금융에 있어 미국 달러화의 지배력이 코로나19 충격을 증폭시킬 여지가 있다”고 입을 모았다.
올 3월, 코로나19의 팬데믹 선언과 함께 바이러스 공포에 사로잡힌 투자자들이 투매에 나서면서 글로벌 주식시장은 폭락했고, 이는 세계적인 ‘달러 쟁탈전’으로 이어졌다. 이에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 연준)는 12개 이상의 중앙은행들과 긴급 통화 스와프 계약을 체결하기에 이르렀다.
5월 말 이후 달러는 약세를 보였고, 연준에 대한 통화 스와프 수요도 누그러졌다. 하지만 신흥국 통화들은 여전히 코로나19 팬데믹 이전보다 달러 대비 가치가 크게 떨어진 상태다. 달러 대비 브라질 헤알화 가치는 올해 들어 약 30%, 멕시코 페소화는 약 20% 떨어졌다. 현지 환율 변동에 민감한 관광업 같은 분야는 코로나19 확산에 따라 계속해서 심한 제약을 받고 있어 우려를 더하고 있다.
IMF 내부 문건은 “여전히 진행 중인 코로나19 위기 속에서 미국 달러화의 지배는 신흥국과 개발도상국의 통화 약세가 단기적으로 이들 국가 경제에 물리적인 부양책을 제공할 가능성이 낮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평가했다. 시장과 글로벌 경기 회복에 대한 낙관론이 싹트기 시작했지만, 달러 가치의 추가적인 상승은 경제 활동에 리스크를 남긴다는 것이다.
IMF 이코노미스트들은 “코로나19의 재확산과 안전자산 수요가 다시 달러 강세를 부추길 수 있다”며 “‘강달러’가 글로벌 무역과 경제 활동을 단기적으로 위축시킬 수 있다”고 결론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