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시에 나머지 반쪽의 부탁에 응답하도록 힘을 기울여야 한다. 이는 우리 사회에 정신건강 제도와 인프라를 구축하는 더 어려운 일이다. 우리의 현실은 어떠한가? 우리나라의 정신건강 인력 수가 경제협력개발기구 국가의 최하위 수준이라는 성적표는 우리의 노력이 얼마나 턱없이 부족한지를 압축적으로 입증한다. 우리나라 정신건강 분야 인력은 인구 10만 명당 30.6명으로, 핀란드의 187.8명에 비하면 6분의 1,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의 평균 수치(97.1명)와 비교해도 3분의 1 수준에도 미치지 못한다. 정신건강 수준도 마찬가지다. 9월 통계청은 2018년 사망 원인 통계를 발표하면서, 지난 몇 년 동안 꾸준히 줄어들던 자살률이 큰 폭의 증가세로 돌아서, OECD 회원국 가운데 2위로 떨어졌던 자살률이 다시 1위로 올라설 것으로 전망했다. 특히 자살률은 10대 등 젊은 연령층에서 크게 늘었다. 지난 3일 발표된 2018 국제학업성취도평가(PISA)에서 우리나라 학생들이 성적은 국제적으로 최상위권이지만 삶에 대한 만족도는 최하위권으로 나타난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사실 그뿐인가. 학교폭력으로 학교 가는 것이 두렵고 힘든 아이들, 손목에 면도칼을 그으며 자해하는 청소년들, 우울증으로 고통당하면서 조용히 마음이 죽어가는 이들, 혐오와 차별 속에 방치된 조현병 환자들, 불의의 사고나 자살로 가족을 떠나보내고 외상 후 스트레스 속에 살아가는 남은 유족들. 국민들에게 약속하는 제반 수당과 현금 복지를 위한 재정 지출이 늘어가지만, 여전히 마음이 아픈 수많은 이들은 정작 우리 가까이에서 내 가족, 이웃, 친구로 외롭고 위태하게 방치되어 살아가고 있다.
지금은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국가’인 핀란드조차도 한때 높은 복지 수준에도 불구하고 높은 자살률이라는 치명적인 문제를 안고 있던 시절이 있었다. 1990년대 초 인구 10만 명당 30명에 달했던 자살률은, 국가가 나서서 우울증 조기 발견과 치료 등의 전방위적 대책을 시행하면서 비로소 절반 이하로 떨어질 수 있었다.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등 많은 복지국가들이 국민의 정신건강을 중요한 어젠다로 다루면서 예방, 조기진단, 치료, 체계적인 보호와 관리를 위한 전문적인 사회서비스를 제공하는 데 투자하고 있다. 물질적인 보장이 정신건강을 담보하는 충분 조건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면 우리는 이제 무엇을 해야 할까. 아직 이뤄지지 않은 반쪽의 부탁의 첫 번째는 마음이 아픈 사람들을 편견과 차별 없이 바라봐 달라는 것이었다. 이는 정신건강이 여느 신체건강의 문제와 다를 바 없다는 것, 즉 감기나 암, 고혈압처럼 누구라도 걸릴 수 있다는 것, 조기에 문제를 발견하고 치료하여 체계적으로 관리될 수 있다면 이 사회 안에서 함께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음을 아는 것에서 출발한다. 이들이 언제든 쉽게 도움받을 수 있는 사회를 위해서는 정신보건 분야의 간호사, 임상심리사, 사회복지사와 같은 전문인력을 충분히 확충하고 사례 관리를 통해 맞춤형 체계적 서비스를 강화해야 한다. 정신건강 전문가들은 입원치료와 적절한 약물치료, 지역사회 돌봄의 적절한 균형을 통해 조현병 같은 정신질환자들도 이 사회에서 충분히 안전하며 생산적인 삶을 살아갈 수 있다고 말한다. 충분한 보호와 서비스를 받지 못하고 방치될 때 그들은 더 깊은 늪으로 빠져들고 범죄와 자살로 내몰리게 된다.
‘내 아들은 조현병입니다’의 저자 론 파워스는 그의 경험을 통해 한 걸음 나아간 깨달음을 공유해준다. 그는 마음이 아픈 이들도 존재 자체로 우리에게 값진 존재라고 선언한다. 그들을 보살피고 도움을 주고받으며 함께 살아갈 때, 우리는 비로소 고립, 사회적 분투, 소비에의 집착에서 벗어나 누군가에게 ‘쓸모 있는 존재’가 되는 것이 진정한 행복의 원천임을 알게 되기 때문이다. 그렇다. 오늘도 일상에 분주하게 묻혀 쉽게 잊고 살아가지만, 우리는 서로 돌보고 도우며 함께 살아가는, 서로 연결된 소중한 존재들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