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수록 아기 울음소리가 줄어들고 있다. 정부가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최근 10여 년간 126조 원 규모의 재정을 투입했지만, 출생아 수는 매년 최저치를 경신하고 있다.
정부는 그동안 출산·양육에 관련되는 제도를 개선하고 저출산에 대한 문제의식을 각계로 확산하는 등의 노력을 했지만 출산 기피 현상은 갈수록 심각해지는 양상이다. 출산은 인간이 태어나 성장하고 죽음에 이르기까지 생애 전 과정과 관계된 복합적인 문제다. 전문가들은 경제적인 측면뿐 아니라 교육과 보육 등 사회·문화의 모든 역량을 총동원해야 저출산의 근본적인 문제가 해소될 수 있다고 지적한다.
◇126조 원 썼지만 떨어지는 출생아 수 = 통계청 ‘2017년 출생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나라 출생아 숫자는 35만7771명으로 1970년 관련 통계가 작성된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다. 특히 2002년부터 2016년까지 유지됐던 40만 명 선이 급격하게 무너지면서 전년 대비 감소폭은 11.9%를 기록했다. 합계출산율은 2016년 1.17명에서 지난해 1.05명으로 10.2% 줄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6개 회원국 가운데서도 우리나라는 꼴찌다. 합계출산율 감소는 가임여성이 임신과 출산을 하지 않는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인구 1000명당 출생아 숫자를 나타내는 조(粗)출생률은 7.0명으로 전년 대비 0.9명 감소했다.
저출산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 정부는 지난 10년 동안 저출산·고령사회 기본계획 1차(2006~2010년)와 2차(2011~2015년), 3차(2016~2020년) 계획을 통해 126조4720억 원을 투입해 왔다. 제도적으로 일과 가정생활의 양립을 지원하는 기반은 과거보다 확대됐다. 출산휴가급여 지원 기간은 늘었고, 육아휴직 대상이 확대됐고 육아휴직 급여도 인상됐다.
◇구조적 문제 해결 못한 단기 처방 한계 = 과거 10여 년간 재원의 대부분은 보육비와 육아휴직 지원 등에 쓰였다. 기혼자 중 아이를 이미 낳은 가정을 대상으로 한 것이다. 낮은 취업률과 고용 불안 등으로 경제적으로 불안한 청년들이 피부로 느낄 만한 대책은 없었다. 우리나라에서 출산율은 결혼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다. 육아정책연구소의 ‘청년층의 비혼에 대한 인식과 저출산 대응 방안’ 보고서에 따르면, 20대의 51.8%, 30대의 48.2%가 미혼 상태인 것으로 조사됐다. 이 중 74.2%가 결혼 의향이 있지만 결혼을 미룬 상태로, 결혼할 만한 조건으로 39.7%가 ‘경제적으로 안정된 때’라고 응답했다. 이어 ‘결혼할 만큼 좋은 사람을 만날 때(33%)’, ‘안정적 일자리에 취업했을 때(15.3%)’ 등의 순이었다. 상당수의 청년들이 문자 그대로 경제적인 문제로 인해 결혼과 출산을 못하고 있다는 의미다.
육아로 인한 퇴사 문제도 여전히 심각하다. 지난해 11월 통계청이 발표한 ‘상반기 지역별 고용조사 경력단절여성 및 사회보험 가입현황’에 따르면, 경력단절 여성은 기혼여성 905만3000명 중 20%인 181만2000명을 기록했다. 특히 이 중 현재 결혼 적령기인 30~39세인 여성이 50%를 넘었다.
전문가들은 취업난, 저임금, 고용 불안, 주거 불안정 등 청년들이 가정을 꾸리기 어려운 환경과 출산·양육에 대한 엄청난 부담이 해소되지 않는 한 출산과 양육 지원에 집중하는 단기적인 대책으로는 저출산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은 지난달 제3차 저출산·고령사회 기본계획 재구조화 방안에 대해 “저출산 대책의 큰 틀은 주거와 직장 안정, 일·가정의 밸런스를 맞추는 방향으로 정책을 재수정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오건호 내가만드는복지국가 운영위원장은 “전반적으로 대한민국의 미래가 좋아질 것이라는 희망이 있어야 2세를 낳는다”며 “중기적으로 출산율이 높아질 것 같지는 않다”고 꼬집었다. 오 위원장은 “노동시장 개혁을 통해 일자리 나누기, 임금격차 줄이기, 주거안정 강화 등의 정책으로 우리 사회가 저출산에 맞춰 순응해 나가는 방향의 논의도 필요해 보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