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가항공 시장을 둘러싼 항공사간의 경쟁이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다.
지난해 대한항공의 저가항공법인 설립추진을 계기로 촉발된 항공사간의 경쟁은 최근 싱가포르 타이거항공이 국내 저가 항공 시장 진출을 추진하는 것으로 밝혀지면서 더욱 뜨거워졌다. 따라서 지난해까지 국내 저가항공시장이 '선발 중소항공사 vs 후발 대형항공사'간의 구도였다면 올해부터는 '국내항공사 vs 외국항공사'의 구도로 재편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2005년 한성항공이 충청권을 겨냥하며 저가항공시장을 열어젖힐 때만해도 업계에서는 저가항공회사의 성공가능성에 대해 반신반의 했으나 불과 2년 남짓동안 여러 항공사들이 앞다투어 진출하는 틈새시장이 되버린 것이다.
◇ '우후죽순' 저가항공사
현재까지 운영되고 있는 저가항공사는 제주항공과 한성항공 두 곳 뿐이다. 하지만 오는 3월 취항을 앞두고 있는 영남에어를 시작으로 이후 에어코리아(6월), 대양항공(6월), 이스타항공(8월), 퍼플젯 항공(9월), 타이거항공(11월) 등이 줄줄이 취항을 시작한다.
항공사들이 앞다투어 국내 저가항공 시장에 뛰어드는 가장 큰 이유는 국내노선보다는 중국, 일본 등 동북아 노선을 겨냥해서다. 사실 국내의 저가항공시장은 국내노선 자체가 많지 않았기 때문에 시장 자체가 매우 작았다. 기존의 항공사들도 국내선에서는 적자를 면치 못했다. 게다가 KTX 개통 이후에는 시장이 더욱 작아졌다. 미국이나 EU처럼 많은 노선을 가지고 있는 나라들의 저가항공시장이 전체항공시장의 20%를 전후한 수준이었다면 국내 시장은 5%를 넘지못했다.
하지만 우리나라가 중국, 일본과 맺은 항공자유협정이 단계적으로 시행되면서 상황은 달라졌다. 그동안에는 양국 정부가 운항횟수를 합의하고, 운항가능한 항공사를 선정했지만 항공자유협정 이후에는 운항횟수 제한이 완전히 없어진다. 결국 본국에서 국제선 허가가 난 항공사는 자유롭게 세 나라를 운항할 수 있게 된다.
대신증권의 양지환 연구원은 "이미 단계적으로 시행중인 한-중, 한-일 간의 항공자유화 협정이 오는 2011년쯤 완전 시행된다면 저가항공시장의 수요는 폭발적으로 증가할 것"이라며 "이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국내 항공사들이 앞다투어 뛰어드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저가항공사들이 국제선 허가를 받기 위한 자격조건을 갖추려는 것도 국내노선보다는 향후 증가하게 될 한-중, 한-일 노선을 목표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를 노리고 저가항공시장에 한 발 앞서 뛰어든 한성항공과 제주항공은 오는 6월과 7월 일본 노선을 시작으로 국제선을 취항한다.
◇ 대형항공사들의 발빠른 진입
저가항공시장이 확대되면 가장 큰 타격을 입게되는 곳은 역시 대한항공이나 아시아나항공과 같은 대형항공사다. 중국이나 일본 항공사들과 함께 3개국 노선을 나눠먹었던 이들 대형항공사들는 저가항공사라는 새로운 경쟁자를 맞게 된 셈이다.
저가항공사들이 처음 시장에 발을 들여놓았을 때만해도 대형항공사는 자신만만하게 '고급화 전략'을 내세웠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시장잠식'의 위기에 놓이자 이를 수수방관할 수만은 없는 입장에 놓이게 된 것.
두 항공사 중 먼저 움직인 곳은 대한항공. 대한항공의 조양호 회장은 지난 2005년 3월 "국내에는 솔직히 저가항공이 필요 없다고 본다"는 안일한 자세를 취하면서도 "중단거리 항공시장 상황이 급변하는 등 저가항공산업 진출이 필요하다면 별도의 법인을 설립해 진출하는 방안을 검토해볼 것"이라고 여운을 남긴 바 있다. 실제로 시장이 급변하면서 대한항공은 '에어코리아'라는 저가항공사를 부랴부랴 출범시켰다. 대한항공측은 기존 모기업의 기술력 등을 바탕으로 곧바로 국제선 취항을 추진하려는 '꼼수'를 썼으나 건교부는 별도 법인이란 이유로 이를 허가하지 않았다. 결국 에어코리아는 국제선 운항 기준에 따라 국내선을 2년 운항한 후에 국제선을 취항하게 됐다.
아시아나항공은 아직까지 구체적인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지만 최근들어서 저가항공진출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지난해 항공업계에 나돌았던 대형항공사들의 저가항공사 인수설도 결국은 대형항공사들의 이같은 고민이 반영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 항공주권 논란
국내 업계들간의 선점경쟁으로 치열했던 국내선 시장은 최근 싱가포르 국적의 타이거항공이 뛰어들면서 다시 한 번 변화를 맞이했다. 타이거 항공이 인천시와 공동으로 법인설립을 하자 국내 항공사들은 "항공주권을 포기하는 것"이라며 한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것이다. 외국항공사에 국내노선을 내줄 수 없다는 이유다. 국내항공사들은 "타이거항공과 인천시가 지분 49%씩을 갖고 인천교통공사가 2%의 지분을 보유해 외국자본이 지분의 절반 이상을 보유할 수 없다는 관련법 위반은 아니지만 인천시가 노하우가 없는 이상 타이거항공이 경영 및 운영권을 쥐고 있어 사실상 항공법에 위배된다"고 반발하고 있다. 세 나라간에 맺어진 협정으로 인해 전혀 관련 없는 나라의 자본만 배를 불려준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자본의 국적이 불분명해진 시대에 항공업계에만 더 높은 잣대를 요구한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국내 노선은 국내 기업이 운영하는 것이 세계적인 추세인 것은 맞지만 현행법에 저촉되지 않는다면 허가를 내줘야 한다는 입장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업계 관계자는 "처음부터 운영노하우를 가지고 출발하는 회사가 어디있냐"며 "지분문제가 아닌 노하우 문제로 신설 항공사의 운항을 제한한다면 후발주자들에게 공정한 기회를 주지 못하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이 관계자는 "이용자들에게 얼마나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지로 접근해야지 이를 무조건 항공주권수호라는 식으로 접근해서는 안된다"라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건설교통부 항공정책과 담당자는 "아직까지 면허 접수가 들어오지 않아 뭐라고 말할 단계는 아니지만 접수가 되면 구체적으로 논의해 볼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