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객석] 아버지의 카메라

입력 2017-02-02 10:35 수정 2017-02-02 10:44
  • 가장작게

  • 작게

  • 기본

  • 크게

  • 가장크게

이현석 사진작가

가난했던 어린 시절, 장롱 깊숙한 곳에서는 아버지만 만질 수 있는 우리 집 보물 카메라가 숨겨져 있었다.

내가 대학교에 진학하자 ‘아버지의 카메라’는 내 카메라가 됐다. 아버지의 카메라가 장롱에서 나와 내 책상으로 자리를 옮기자 나는 어른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건 그냥 카메라가 아니라 내가 선택할 수 있는 나만의 ‘특별한 세상’이었기 때문이다.

대학을 다니던 어느 날 아버지의 직업을 사진으로 남겨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가족이 피사체가 되면 좀 더 좋은 사진이 나올 거라는 믿음이 있었다.

아버지의 사무실은 명동 한복판에 있는 큰 건물 지하에 있었다. 퀴퀴한 습기와 오래된 책상, 연장들 그리고 공장의 한 단면을 보는 것 같은 대형 장비들과 쇠붙이들이 그곳을 꽉 채우고 있었다.

아버지는 건물을 관리하는 기술자였다. 익히 알고 있었지만 직접 본 적 없는 아버지의 직업을 눈으로 확인하고 카메라에 담았다. 기분이 이상했다. 그곳에서 이루어지는 것들은 그 자체로 ‘체험 삶의 현장’이었다. 땀 흘리는 노동의 현장을 바라보는 일은 감동적이면서도 애잔하다.

대상이 가족일 때는 더욱 그렇다. 그날 이후 나는 노동의 현장이야말로 삶 그 자체라고 확신하게 됐다. 그리고 카메라는 ‘세상을 보는 눈’이라고 입버릇처럼 말하고 다녔다. 그건 그 자체로 내 일에 대한 자부심 같은 것이었다.

나는 최근 ‘내 아버지들의 자서전’이라는 책의 사진 작업을 하면서 다시 한 번 아버지들의 삶과 노동을 느꼈다. 이발사, 시계 수리 전문가, 세탁소 주인, 양복점 재단사 등 대부분 한두 평의 작은 공간에서 쉼 없이 반복작업을 하는 모습을 보는 동안 돌아가신 아버지가 떠올랐다.

가족을 위해 힘들고 지루한 노동도 마다 않고 땀 흘리고 애쓰던 사진 속 아버지가 한없이 그리워진다.

  • 좋아요0
  • 화나요0
  • 슬퍼요0
  • 추가취재 원해요0

주요 뉴스

  • 제도 시행 1년 가까워져 오는데…복수의결권 도입 기업 2곳뿐 [복수의결권 300일]
  • 불륜 고백→친권 포기서 작성까지…'이혼 예능' 범람의 진짜 문제 [이슈크래커]
  • 전기차 화재 후…75.6% "전기차 구매 망설여진다" [데이터클립]
  • ‘아시아 증시 블랙 먼데이’…살아나는 ‘홍콩 ELS’ 악몽
  • “고금리 탓에 경기회복 지연”…전방위 압박받는 한은
  • 단독 ‘과징금 1628억’ 쿠팡, 공정위 상대 불복 소송 제기
  • 이강인, 두산家 5세와 열애설…파리 데이트 모습까지 포착
  • 뉴진스 뮤비 감독 "어도어, 뒤로 연락해 회유…오늘까지 사과문 올려라"
  • 오늘의 상승종목

  • 09.09 장종료

실시간 암호화폐 시세

  • 종목
  • 현재가(원)
  • 변동률
    • 비트코인
    • 75,059,000
    • +1.36%
    • 이더리움
    • 3,154,000
    • +1.02%
    • 비트코인 캐시
    • 422,200
    • +2.01%
    • 리플
    • 722
    • +0.28%
    • 솔라나
    • 176,400
    • -0.34%
    • 에이다
    • 463
    • +1.54%
    • 이오스
    • 658
    • +3.62%
    • 트론
    • 208
    • +1.46%
    • 스텔라루멘
    • 124
    • +2.48%
    • 비트코인에스브이
    • 60,750
    • +1.25%
    • 체인링크
    • 14,600
    • +4.29%
    • 샌드박스
    • 339
    • +1.5%
* 24시간 변동률 기준